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대남(對南) 메시지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두 사업의 재개를 위해선 국제적 대북 제재 예외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미국에 요구해 온 '비핵화 상응조치'를 구체화 한 것이다. 아울러 우리 정부엔 사업 재개를 위해 독자적·국제적 역할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미가 동시에 얽힌 두 사업은 신년초 한반도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는 지난해 9월19일 발표된 남북 평양공동선언문에도 '남과 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라고 언급돼 있다. 당시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라는 전제가 붙은 이유는 대북 제재 때문이다. 사업 재개 과정에서 우리 물자와 자금이 반입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위반 논란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조건·대가 없는 사업 재개'를 언급한 김 위원장의 이번 메시지는 미국 등 국제사회를 향한 제재 예외 조치 요구로 읽힌다. 김 위원장은 해당 언급과 함께 우리 정부를 향해선 "북남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전면적으로 확대발전시켜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공고히 하며 온 겨레가 북남관계개선의 덕을 실지로 볼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전략연)은 "북한은 모든 준비가 돼 있으니 남측이 UN과 미국을 상대로 제재완화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하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비핵화 단계에서의 상응조치를 원하는 북한이 한미 양국 모두에 공을 넘길 수 있는 의제를 전략적으로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전략연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가) 올해 남북관계의 주요 의제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덧붙였다.
"(남북) 협력과 교류의 전면적 확대 발전"이라는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5.24 조치나 남북 경협 사업과 연계된 우리 정부의 대북 독자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우리 스스로 내린 대북 제재 조치에 대한 이완 작업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뜻도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앞서 익명을 요구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고위관계자가 한 언론을 통해 "미국이 유엔제재를 제외한 독자적 대북제제를 해제하고 한국, 일본도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대북 독자제재 해제 조치를 통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이런 만큼 우리 정부로선 새해부터 북한과 미국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건 나의 확고한 의지"라며 북한 주민들에게 육성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처음으로 언급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추가 비핵화 조치는 이번에 언급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부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에 조응하는 구체적인 가능 조치 내용을, 미국엔 제재 예외 조치 의사를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에선 여행 목적의 북한 방문과 경비 지출은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도 있어 국제제재에 저촉되지 않은 선에서의 금강산관광 재개 방안 등도 모색되는 기류다.
다만 금강산관광 중단과 개성공단 폐쇄 조치는 각각 우리 관광객 피살사건, 북한의 핵 실험에 따른 후속조치였다는 점에서 정부의 역할엔 부담이 뒤따른다. 당장 보수진영에선 김 위원장의 '조건없는 사업재개' 언급에 대해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의 핵 위기가 직접 원인이었고, 금강산관광 중단 또한 북한의 도발로 인한 것임을 철저히 도외시하는 발언"(자유한국당)이라는 반발이 터져나왔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앞서 김 위원장이 보내온 연말 친서에 대한 답장도 아직 보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도 일단 적극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숨고르기를 하는 분위기다.
김의겸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신년사엔 남북관계의 발전과 북미관계의 진전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본다"며 "김 위원장의 확고한 의지는 새해에 한반도 문제가 순조롭게 풀리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기대한다"는 짧은 논평만 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 발표보다는 기자회견 등의 방식을 통해 새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구체적 구상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