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소송에서 미성년자가 입을 '미래의 손해'를 따질 때 예전처럼 무조건 도시일용노임을 적용하지 않고 '학력별 평균소득' 개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급심 단계에서 확정돼 대법원 판단으로는 이어지지 않게 됐지만, 관련 소송과 보험업계 등에 영향이 큰 판례인 만큼 향후 이 기준의 적합성과 정교화 방법 등을 둘러싸고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부(김은성 부장판사)는 대학생 한모(20·여)씨가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한씨에게 3천2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씨는 2010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위반하고 돌진한 택시에 부딪혀 얼굴 등을 다쳤다.
1·2심은 모두 이 사고에 대한 택시운송조합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배상액을 2천900여만원으로 정한 1심과 달리 2심은 더 많은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배상액의 차이는 한씨가 사고에 따른 신체 장애로 얻을 수 없게 된 미래의 소득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에서 나왔다.
1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대로 한씨의 일실수입(사고가 없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수입)을 계산할 때 도시일용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삼았다.
도시일용노임을 적용하면 월수입이 약 235만원으로 계산되는데, 여기에 한씨의 노동능력 상실률과 노동 가능 기간 등을 반영해 총 2천400여만원의 손해가 인정된다고 봤다.
이렇게 미성년자의 일실수입을 계산할 때 도시일용노임을 적용하는 것은, 기존 판례가 '고도의 개연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일용노임 이상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개연성은 인정하기 쉽지만, 그 이상의 수입이 있으리라고 증명하기는 극도로 어렵다.
예를 들어 1991년 대법원은 의대 본과 1학년생의 일실수입을 계산할 때에도 '의대 졸업자의 국가고시 합격률이 높다고 해도 피해자가 3년 남은 의대를 졸업하고 자격을 얻어 의사로 종사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며 도시일용노임을 적용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청소년인 피해자가 다양한 직업 선택의 가능성을 상실했음이 직관적으로 명백하다"며 "그런데도 100%가 아니라고 개연성을 배척해 버린다면 사실상 증명의 여지를 모두 차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별 잘못 없는 피해자가 '당신은 무직자와 마찬가지의 수입만을 평생 올렸을 것'이라는 평가로 재단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재판부는 '평균에 근접한 값'을 기준점으로 삼는 것이 손해배상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 기준점보다 더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증명하고, 더 낮으리라는 주장은 가해자가 각각 증명하도록 하는 것이 공평·타당한 손해의 분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최소한의 기본임금을 기준으로 삼아 더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피해자에게 모두 증명하라고 한 뒤 '고도의 개연성'을 요구하는 기존 방식은 결국 최소한의 배상에 만족하라는 것과 같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통계청이 제공하는 학력별 통계소득자료에 피해자의 연령에 맞춰 고교·전문대·4년제 대학 진학률 등을 반영하면 일실수입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고 재판부는 제안했다.
아울러 장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포섭하는 차원에서 통계를 적용하는 만큼 성별이나 경력에 따른 소득 차이는 반영하지 않고 '모든 근로자의 전체 경력' 평균을 사용하자는 원칙도 제시했다.
재판부는 사고를 딛고 전문대에 진학한 여성인 한씨에게 이런 원칙을 적용해 '전문대 졸업자의 성별과 무관한 전 경력 통계소득'인 310만원을 일실수입의 기준으로 삼았다.
여기서 재판부는 엄밀한 원칙대로라면 4년제 대학으로 편입했을 가능성도 따져 통계소득에 반영해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다만 310만원을 기준으로 계산한 손해액만으로도 이미 한씨가 주장한 금액을 넘어서는 만큼 처분권주의 원칙(당사자의 신청범위를 넘어 재판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이 부분까지는 살피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원고와 피고 모두 상고하지 않아 지난해 말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