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대화를 하다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여전히 'Chief'로 부르는 판사들이 있다.
대법원장의 영문 표기인 'Chief Justice of the Supreme Court'의 첫 단어여서 그냥 '보통명사'처럼 쓰였다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그가 법원내에서 갖고 있었던 영향력 등을 감안하면 일응 수긍되는 호칭이기도 하다.
'엘리트 법조인' 코스를 밟아 2015년 대법관에 임명됐고,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11년에 대법원장이 돼 2017년 9월 퇴임했다.
사법부 최고 수장의 자리에 있다가 물러난 지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그는 '재판거래'와 '법관사찰'을 최종 지시한 혐의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야 되는 처지가 됐다.
전·현직을 통틀어 사법부 수장이 검찰에 소환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이를 지켜봐야하는 법원 내부에서는 침통함마저 묻어났다.
탄탄대로를 걷다가 대법원장에까지 오르자 더이상 거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걸까. 양 대법원장은 평소 자신의 소신을 법원에 하나씩 구현해 나갔고, 이 중 하나가 이번 사태의 씨앗인 '상고법원'이었다.
"상고사건 적체현상을 해결해야한다"는 당위성은 비단 그만의 논리는 아니었지만, 그가 이른바 '고등부장'으로 불리는 고위법관직을 늘리는 상고법원 도입안을 선택하면서 잇단 '무리수'가 등장했다.(고위법관직을 늘리는 상고법원 설치가 대법원의 위상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사심의 반영이라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양 대법원장의 '무리수'는 검찰 수사로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그중 하나는 상고법원이 정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봐 '재판 거래' 의혹을 만들어낸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일제 강제 징용 소송'이다. 검찰 수사결과 양승태 사법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부와 재판 거래를 모의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소송의 당사자(일본측 대리)인 김앤장에 재판방향을 알려주는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재판거래 의혹은 사법부의 근간인 재판의 신뢰와 직결되는 것이어서, 의혹이 사실로 확정될 경우 후폭풍은 말 그대로 사회 전반을 휩쓸고 갈 충격파를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양승태 사법부는 상고법원 추진과 관련해 일부 판사들의 반대 등 저항에 직면하자 사찰 및 인사로 주리를 틀려고 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다.
사법부는 3차례에 걸친 대법원 자체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공언했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양승태 사법부는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상고법원 반대 핵심세력으로 보고 이들의 약점을 치밀하게 공략하려 했던 것이다.
또한 양승태 사법부는 법무부 설득을 위해 국민 기본권과 관련된 '영장 없는 체포 활성화 및 체포 전치주의 도입', '영장항고제 도입' 등을 양보할 수 있다는 안을 내기도 해 "법원이 국민을 개돼지로 아느냐"는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검찰은 줄곧 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성격에 대해 "특정인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업무상 상하관계의 지시관계에 따른 범죄행위"라고 강조해왔다. 최종 책임은 마당쇠가 아닌 'Chief'에게 있다는 말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