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진=연합뉴스)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소환 조사 일정을 밝히며 정공법을 택했다.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당시 핵심 수뇌부의 진술을 확보한 뒤 양 전 대법원장을 소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정면 돌파를 택한 것이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 소환 조사에 앞서 한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된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와 관계없이 전격 소환 조사 방침을 밝힌 것이다.
5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오는 11일 오전 9시30분 검찰에 출석하라고 양 전 대법원장 측에 통보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농단 의혹의 최종 의사결정권자, 즉 수사의 종착지로 보고 있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핵심 연결고리로 볼 수 있는 두 전직 대법관과 임 전 차장의 '윗선(양 전 대법원장)' 지시나 공모 여부를 입증할 진술이 필요하다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수사팀 관계자도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를 수사 방식 중 하나로 고려 중이고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을 건너뛰고 양 전 대법원장으로 직행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승부수를 띄울 수 있을 만큼 양 전 대법원장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을 상대로 조사할 범죄사실은 공모 관계로 기재된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 비춰봐도 40개가 넘는다.
적용된 죄명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무유기·위계공무집행방해·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 6개를 웃돈다.
검찰은 박, 고 전 대법관의 영장이 기각된 이후 한 달 가까이 고강도 보강수사를 벌였다.
이번 사태에 연루된 판사들과 법원 직원, 청와대 인사 등을 재소환해 혐의를 입증할 사실관계를 다지고 쟁점이 될 법리를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이나 강제징용 소송에서 일본 전범기업 측을 대리한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접촉하는 등 구체적으로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다.
특히 판사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라는 문건에는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법원행정처장 등 당시 사법행정 수뇌부의 자필 결재가 이뤄져 있다.
강제징용 소송과 관련해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본인이 재판개입 의혹에 직접 나선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수사팀은 양 전 대법원장이 당시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했던 김앤장 소속 한모 변호사를 여러 차례 접촉한 정황을 확인했다.
지난해 11월 한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이를 뒷받침할 단서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재판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외교부에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을 볼 때 양 전 대법원장의 의중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런 정황들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이번 사태에 법원행정처의 보고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나섰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는 수사팀이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해 곧장 소환 통보한 배경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