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본관 (사진=김광일 기자)
연세대 총여학생회(총여)가 설립된 지 30여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서울 안에서는 공식적으로 총여를 둔 대학이 모두 사라지게 됐다.
199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총여는 다른 지역에서도 줄줄이 문을 닫아 이제는 전국을 모두 합해도 십수 곳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5일 연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 학교는 최근 실시한 학생 총투표에서 79%가 찬성한 '총여 폐지' 안건을 가결했다. 투표에는 전체 학생의 55%인 1만3천여명이 참가했다.
절차나 공정성에 관한 이의 제기가 이날 밤까지 없을 경우 총학생회는 회칙에서 총여를 삭제하고, 산하에 성폭력위원회를 신설할 예정이다.
과반수 학생이 폐지 쪽으로 표를 던진 배경에는 우선 총여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학내 성차별이 2000년대 이후 개선됐다는 인식이 확산했다는 점이 꼽힌다.
"남녀 학생 수가 비슷하고 여성도 총학생회장을 할 수 있는 시대에 특정 이념에 기반한 별도기구가 과도한 권력을 쥐고 있다"는 일부 학생의 발언(총여 재개편TF 회의록)은 이런 인식을 드러낸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도 "총여는 이제 소임을 다한 것으로 본다"며 "혹시 드러나지 않은 차별적 관행이 있다고 해도 그건 총학생회 내에서 모니터링 해도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연세대와 동국대 총여학생회(총여)와 성균관대 총여 재건 단체 등 관계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최근 총여 폐지 흐름과 관련한 '백래시'(페미니즘 등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 심리)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면 총여 폐지가 더 빨라진 이유를 최근 활발해진 페미니즘에 대한 일종의 '백래시(반동)'로 설명하는 의견도 만만찮다. 미투 운동이나 혜화역 집회를 마뜩잖아하던 혐오정서가 학내 이슈로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우리 사회가 성차별 해소의 흐름에 저항하기 위해서, 또래 남성들이 여성에게 느끼는 불안심리를 이용하고 있다"며 "학내에 성폭력이나 차별 문제가 여전한 만큼 이를 학생들이 직접 고민하고 실천할 자치 조직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세대 총여 폐지 투표도 지난해 6월 페미니스트 강사 은하선씨의 교내 강연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던 게 계기가 됐다. 당시 학생들이 요구했던 총여 재개편 안건이 7개월 동안의 논의 끝에 이번에 결론 내려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