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경찰의 권한을 어디까지 허용할지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논의하는 국회에서도 쟁점으로 부상했다.
한때 '검찰 패싱' 논란을 빚으며 경찰의 수사 재량을 강화한 정부의 수사권 조정안 추진에 힘을 보탰던 법무부 역시 자치경찰제 도입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면서 국회의 논의 추이에 다시금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회가 사정기관의 적절한 권한 배분이라는 숙제를 끌어안은 채 논의에 진척을 보지 못하자 야권에서는 '한국형 FBI'인 수사청을 신설해 수사를 모두 맡기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형국이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검경소위원회(위원장 오신환 의원)는 8일 국회에서 5차 회의를 열고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의견을 청취했다.
이날 위원들은 수사권 조정안과 함께 풀어내야 하는 자치경찰제 도입안에 질의를 집중했다. 자치경찰제는 중앙 정부의 경찰권을 각 지방에 분산하고, 지자체가 경찰의 설치·유지·운영을 담당하는 것이다.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자치경찰특위는 작년 11월 자치경찰제 도입안을 발표한 바 있다. 경찰의 기존 업무 중 주민밀착형 사무와 민생치안 사건 수사권을 중앙 정부 소속의 국가경찰에서 자치경찰로 이관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를 자치경찰의 수사권한으로 허용할지를 두고는 논란이 여전한 상황이다.
사개특위 위원들 사이에서는 사정기관간 적절한 수사권 배분 문제로 수렴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도입 문제를 결국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자치경찰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강화될 경찰의 재량을 분산함으로써 권력 비대화를 견제하는 방안인데, 자치경찰특위의 도입안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게 아니냐는 문제제기와 맥이 닿는다.
자유한국당 소속 곽상도 의원은 "수사권조정 합의문에 따르면 수사권조정은 자치경찰제와 함께 한다고 돼 있으므로, 자치경찰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수사권조정 합의문도 무효가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도 "행정경찰과 사법경찰의 분리는 안 된다는 경찰청의 입장은 모순"이라고 했다.
박 의원은 경찰의 정보 기능도 검토 대상으로 거론했다. 그는 "경찰 기능 중 수사와 행정의 분리가 필요하고, 행정의 주된 영역인 정보 기능은 수사 기능과 철저한 분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오수 법무부 차관은 "수사권의 90%를 자치경찰에 대폭으로 이양하려던 원래 안이 20% 이양으로 축소되고 있다"며 "수사권 조정과 실효적인 자치경찰제 도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김 차관의 언급은 검찰의 입장에 법무부가 동의하고 나선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검찰 내에서는 경찰 조직의 분산 없이 자치경찰을 신설하고, 자치경찰에 민생치안 사건만 맡기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본래 도입하려던 자치경찰제를 시늉만 낸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강하다. 정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마련할 당시, 검찰의 의견을 좀처럼 반영하지 않아 '검찰 패싱' 논란이 일었던 법무부가 자치경찰제 문제에 이르러서는 검찰과 비슷한 인식을 하는 셈이다.
자치경찰제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자, 자치경찰제 도입을 전제로 정부가 추진 중인 수사권 조정도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결국 다수의 사개특위 검경소위원회 위원들은 검찰과 경찰의 의견을 추가로 수렴하기로 하고 더 이상의 소모적 논쟁은 잠정 중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위원들 사이에서는 대안으로서 '수사청 도입 법안'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기도 했다. 검찰에는 기소권과 영장청구 집행권을 남겨두고 검찰과 경찰이 가졌던 수사권을 이른바 '한국형 FBI'인 수사청을 신설해 전담하게 하는 방안이다.
법안을 발의한 곽상도 의원은 "수사청 신설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원칙적인 모습"이라며 "지금까지 공론화되지 않아 익숙하지 않은 형태이므로 추후 사개특위에서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검경소위원회 위원장인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도 "수사와 기소 분리 차원에서 수사청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