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태릉 빙상경기장에서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김형준 기자)
쇼트트랙 여자 국가대표 심석희(한체대)가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고 폭로한 지 이틀이 지난 10일, 취재진이 찾은 서울 태릉 빙상경기장에는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체육계를 뒤흔든 심석희의 폭로 직후에도 앳된 남녀 선수 100여 명은 빙상장에서 늦은 시간까지 훈련을 이어가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스링크 바로 바깥에서는 몇몇 학부모들이 유리창을 통해 걱정 섞인 눈빛으로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심석희의 용기있는 고백으로 드러난 빙상계의 민낯은 미래의 금메달리스트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과 부모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초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조카가 훈련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A 씨는 "딸을 키우는 엄마들은 운동을 못 시키겠다고 얘기한다"며 "혼나는 거야 폭행 수준까진 아니면 이해를 하겠는데,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이어 "주변에 딸 가진 부모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제일 화도 많이 내고, 조재범 코치에 대해 심한 말도 한다"면서 "운동 안 시키는 부모들에게까지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이를 함께 지켜보던 남편 B 씨도 "꿈을 갖고 운동하는 선수들이 불이익을 겪고, 봐서는 안 될 것들을 보면 부모 입장에선 가르칠 마음이 안 난다"며 "대책을 제대로 마련해서 어떤 방식이 좋을지 잘 판단해 시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빙상 선수 딸을 둔 C 씨도 "딸도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전하며 "똑같은 선생님한테 10여 년을 했으니까 어릴 때부터 봤던 선생님인데 그랬다니 더 기가 막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빙상장 안에서도 성폭력 때문에 영구제명된 코치가 평창올림픽 때문에 다시 나오는 사태가 있지 않았느냐"며 "그런 사람부터 차단했어야 했는데 영구제명이면 영구제명이지 올림픽을 앞두고 구제됐다는 둥 원칙 없이 한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빙상 선수 부모들은 이번 기회에 폭행 지도자들에 대해 확고한 원칙을 세워 엄벌에 처하고 성적 우선주의 등 잘못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선수 부모들은 좋은 성적을 위해서라면 훈계와 체벌이 용인된다는 체육계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이번 기회에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선수 부모는 "옛날에는 그런 관행들이 있었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며 "이제 체벌 자체가 안되고 용납을 못한다. 20~30년전 만 해도 체육은 정신력으로 버티고 야단맞으면서 해야한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부모도 "시대가 바뀌었는데 때린다고 성적이 나오고 안 나오고 할 문제는 아니다"며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고 열심히 하면 성적이 나오는 것이지 맞는다고 잘 하는 것이 아니다. 무서워서 하는 것일 뿐이다.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