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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빨갱이' 오명 벗은 제주 4.3수형인…남은 과제는

사건/사고

    70년 '빨갱이' 오명 벗은 제주 4.3수형인…남은 과제는

    제주지법, 재심재판서 공소기각 결정…사실상 '무죄' 선고
    숨진 수천명의 수형인 명예회복해야…4.3특별법 개정·진상규명도 필요

    17일 오후 제주 4.3 수형인들이 선고가 이뤄질 재심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제주 4.3 당시 폭도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4.3수형인 18명에 대한 재심사건 재판에서 법원이 17일 공소를 기각했다.

    법원이 과거 재판의 불법성을 인정한 것으로 사실상 '무죄' 선고다. 70여 년 만에 열린 정식 재판에서 비로소 이들은 '빨갱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그러나 이미 숨진 수천 명의 4.3수형인에 대한 사법적 명예회복이 아직 남아 있고, 현재까지 4.3 수형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못하는 등 과제도 산적하다.

    ◇ 법원 "정상적인 재판 아니었다"…사실상 '무죄' 선고

    이날 오후 1시30분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제갈창 부장판사)는 201호 법정에서 제주 4.3생존수형인 18명이 청구한 재심사건 재판을 진행하고 공소 기각을 판결했다.

    이들이 받은 군사재판은 구 국방경비법에 따라 진행돼야 하는데 기본적인 예심조사도 거치지 않았고, 피고인을 위한 변호 등도 없었다는게 재판부의 공소기각 사유다.

    재판부는 "피고인들 모두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어떤 범죄로 재판을 받았는지 모른다고 진술하고 있고, 사전에 공소장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짧은 기간 2500여명에 이르는 수형인들이 재판을 받았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재판 절차가 진행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수형인 18명을 상대로 진행된 군사재판이 불법적으로 이뤄졌다고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이로써 이들에게 내려진 유죄 판결도 무효가 됐다.

    ◇ 빨갱이 오명 등 70년의 한…무죄 판결로 비로소 풀려

    재심 청구인 18명은 4.3 광풍이 휘몰아치던 1948년 가을부터 1949년 7월 사이에 군‧경에 의해 제주도내 수용시설에 구금됐다가 다른 지역 교도소로 이송돼 수형 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개 살해 협박 때문에 무장대(산사람)에게 음식을 줬거나 경찰의 모진 고문에 못이겨 허위 조서를 작성했다가 고등군법회의(군사재판)에서 내란이나 국방경비법 위반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수형인들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했고, 기소사실에 대한 문서도 통보받지 못하는 등 제대로 된 재판 절차도 진행되지 않았다.

    형을 살고 난 뒤에도 레드콤플렉스 등의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조차 하지 못한 채 통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반공을 내세운 보수 정권 시절 재심을 청구하는 건 상상조차 못했다.

    결국 지난 70년 동안 '빨갱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고, 연좌제 때문에 그 가족까지 고통을 겪었다.

    그러다 1999년 9월 당시 추미애 새정치국민회의 국회의원(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3수형인 2530명이 담긴 명부를 찾아내면서 재심을 청구하게 된 계기가 마련됐다.

    이전까지 관련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전국 14개 형무소별로 수형인 명단이 작성된 4.3수형인 명부가 사실상 군사재판의 불법성을 입증할 유일한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제주4.3도민연대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최근까지 진상조사를 벌였고, 2015년부터는 수형생존자 18명에 대한 재심청구 재판을 준비했다.

    순수 민간 후원을 통해 재판을 준비한 도민연대는 2017년 4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지난해 9월 재심 개시 결정에 이어 이날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4.3수형인의 70년 한이 비로소 풀리게 된 순간이다.

    4.3 수형인들이 법정에 들어서기 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 "끝이 아니라 시작"…2500여명 재심 청구·진상규명 과제

    4.3 관련 단체들은 이번 판결을 "왜곡됐던 4.3의 역사를 바로잡은 역사적인 재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이번 재판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밝혔다.

    현재 나머지 생존 수형인 12명에 대한 2차 재심 청구 재판은 4.3도민연대에서 준비하고 있지만, 숨진 수형인 2500여명에 대한 재심 청구 재판 준비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도민연대가 일일이 유가족에게 협조를 구해야 하고, 재심 청구 요건을 갖추기 위한 실태조사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예산이나 인력 수준에서 쉽지 않은 과정이다.

    특히 이번 사건의 재심 개시 요건인 불법 구금이나 고문 등과 관련해 청구인이 직접 사유를 밝혀야 하는데, 생존자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재심 재판의 변호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재판부가 불법 구금이나 고문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고 넉넉하게 인정할 수도 있지만, 증거가 없어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며 "쉽지 만은 않다"고 말했다.

    또 4.3 수형인에 대한 진상조사도 시급히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2003년 정부 차원의 4.3진상조사보고서가 나왔지만, 4.3수형인에 대한 진상규명은 지금껏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군사재판 무효화, 추가 진상조사 등을 골자로 한 4.3특별법 개정안이 2017년 12월 국회에 제출된 이후 1년 넘게 계류 중이어서 이 부분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는 "이번 재판을 계기로 일부 4.3 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져서 다행"이라며 "다만 아직까지도 재심 재판 청구조차 못한 수형인이 수천 명에 이르는 등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검찰 측이 나머지 수형인에 대해 일괄적으로 재심을 청구하거나 국회가 4.3특별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하는 등 책임 있는 기관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4.3도민연대는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은 수형인 18명에 대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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