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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생존자 "10년이 흘러도.. 겨울마다 몸이 변한다"



사회 일반

    용산참사 생존자 "10년이 흘러도.. 겨울마다 몸이 변한다"

    용산참사 10주기.. 아직도 진상 밝혀지지 않아
    화재 원인 밝힐 증거, 재판 앞두고 국과수가 분실
    진압 책임자 김석기는 공기업 사장에 국회의원까지
    경찰청 조사위 "조기 진압에 안전 희생된 사건" 결론
    10년 전 수사검사 외압에 검찰 진상조사 진척 없어
    참사 생존자 "폭도가 아니라 이웃으로 기억되고 싶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15~19:55)
    ■ 방송일 : 2019년 1월 18일 (금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이원호(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김창수(용산참사 생존자)


    ◇ 정관용> 2009년 1월 20일. 용산의 남일당 망루 불길에 휩싸이면서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원 1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죠. 바로 용산참사. 올해가 10주년 됩니다. 하지만 피해자, 유가족들 다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밝혀진 게 없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이원호 사무국장. 또 용산참사 생존자이신 김창수 씨. 두 분을 스튜디오에 직접 좀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이원호> 안녕하세요.

    ◆ 김창수>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김창수 씨는 그때 거기 계셨던 거죠?

    ◆ 김창수> 있었습니다.

    ◇ 정관용> 모두 몇 분 계셨어요, 거기?

    ◆ 김창수> 맨 마지막에 망루에 남아 계셨던 분은 한 열다섯 분 정도.

    ◇ 정관용> 열다섯 분 정도. 어쨌든 결과적으로 거기에 계셨던 열다섯 분 전부 다 죄인이 됐죠.

    ◆ 김창수> 그전에, 화재가 나기 전에 진압이 되셨던 분들 그분들도 이제 집행유예 그다음에 마지막에 화재가 난 이후에 탈출하셨던 분들은 징역형을 살고 그렇게 됐죠.

    ◇ 정관용> 김창수 씨는 어떤 형을 받으셨어요?

    ◆ 김창수> 저도 마지막에 불을 피해서 뛰어내렸고요. 그래서 살아나온 것이.. 징역형 4년.

    ◇ 정관용> 징역 4년.

    ◆ 김창수> 실제로 3년 3개월 수감생활을 했고요. 이명박 정권 말기에 형 집행정지로 사면돼서 나왔고요.

    ◇ 정관용> 이원호 국장 그 당시 철거민 분들한테 적용된 죄명이 뭐였죠?

    ◆ 이원호> 특수공무집행 방해, 치사와 치상이라고 해서 공무집행하는 경찰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는 죄인데 좀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화재 원인이나 책임에 대해서 명확하게 검찰도 규정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 난 이후에 연행된 사람은 죽인 죄, 치사죄, 불나기 전에 연행된 사람은 치상죄, 다치게 한 죄, 이렇게 적용이 됐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그 죄를 적용했다는 것의 전제는 그분들이 불을 질렀다는 것 아닙니까?

    ◆ 이원호> 그렇죠. 그리고 공무집행도 정당했다라는 논리인 거고요.

    ◇ 정관용> 그런 거죠?

    ◆ 이원호> 네.

    ◇ 정관용> 그런데 불이 왜 났는지 김창수 씨 기억해요?

    ◆ 김창수> 망루 4층까지. 원래 망루를 올라가면 안 되는 용산분들이 기거해야 할 공간이었는데 특공대가 진압을 하면서 저희도 이제 쫓겨서 망루를 결국 오르게 됐어요, 저희 연대했던 사람들도. 망루를 이제 한 층, 한 층 올라가면서 특공대가 망루까지 진압을 하게 되고 진입을 하게 되고 한번 화재가 살짝 나면서 퇴각을 했었어요.

    ◇ 정관용> 경찰이?

    지난 2009년 1월 20일 철거민들의 점거농성이 벌어진 서울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 건물에 경찰특공대가 오르는 모습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 김창수> 네. 그래서 퇴각한 이후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안 올지도 모르겠다, 이런 위험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 느낌을 좀 갖고 있었는데 머지않아서 바로 2차 진압이 시작되었고 저희가 망루 4층까지 올라간 상태에서 밑의 층에서 저희가 4층에 있었는데 밑의 층에서 폭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불이 확 하면서 번져서 불이 번지기 시작했고 저희도 어떻게 불이 났는지 목도하지를 못했어요.

    ◇ 정관용> 그러니까 4층에 계셨던 거고 불이 시작된 건 1층이고.

    ◆ 김창수> 1층이나 2층 제 바로 제일 밑에 층. . .

    ◆ 이원호> 경찰은 3층에서 발화됐다 이렇게 보고 있죠. 그런데 발화지점도 사실은 정확하지 않아요.

    ◇ 정관용> 그리고 경찰이나 검찰은 4층에서 화염병을 던졌다, 이거죠?

    ◆ 이원호> 화염병을 망루 안에서 던졌다 이렇게 보는 거죠.

    ◇ 정관용> 던진 사람 있나요?

    ◆ 이원호> 저희가 아무리 물어봐도 던진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경찰특공대원조차도 망루 안에서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고 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훨씬 더 신빙성이 있다고 저희도 보거든요. 화염병으로 난 화재라고 하면 확률이 훨씬 더 적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런 것 때문에.

    ◇ 정관용> 화염병 때문에 일어난 화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면 원인이 다른 데 있을 수 있다?

    ◆ 김창수> 그렇죠. 저희도 얘기했던 부분 중에 의구심이 들었던 것 중에 망루 안에 발전기가 있었구요. 실제로 발전기가 돌아갔다는 진술도 있고요. 이런 쪽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국과수에서 그 스위치. 그러니까 발전기의 스위치를 분실했다고 하는 거예요.

    ◇ 정관용> 분실? 국과수가?

    ◆ 이원호> 네. 사실 그게 저희가 이게 장기 농성을 하다 보니까 발전기를 돌리기 위한 유사 휘발유 세녹스가 여러 통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물대포를 쏘니까 물대포를 피하기 위해서 망루 2층에다 그걸 쫙 놨는데 특공대가 진압 과정에서 이 망루가 사실 부실하게 급하게 물대포를 맞으면서 젖다 보니까 부실해서, 1층에 지지대가 있었는데 그 지지대를 빼면서 2층이 무너지면서 유류물질이 바닥으로 다 쏟아져서 사실 작은 발화에도 불이 날 수 있는 유증기가 가득한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사실 동일한 발전기 모델을 대책위에서도 구입해서 동일한 기후조건을 갖고 실험했을 때 실제로 거기 스파크가 발생하는 것들을 동영상으로 제출했었는데 어쨌든 그래서 그게 스위치가 온 상태였는지 오프 상태였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봤는데 국과수가 그 스위치를 분실했다는 거죠.

    ◇ 정관용> 국과수가 분실했다. 불을 일부러 질렀다라고 검찰과 경찰은 해서 재판을 받게 된 거 아닙니까? 재판부는 그걸 그대로 다 받아들였나요?

    ◆ 이원호> 사실 그래서 이 재판 과정에서 이런 진술이 좀 많이 뒤바뀌기기도 했거든요. 특히 유일한 증거는 특공대원 중에 일부, 일부가 망루 안에서 화염병 던져서 내 발 아래 떨어졌다라는 진술을 초기에 했던 특공대원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 신문을 하니까 그게 불빛을 봤다라고 바꾸든가 혹은 그때 적개심 때문에 그때는 그렇게 얘기했다 이렇게 진술이 다 바뀌어서.

    ◇ 정관용> 진술이 번복됐죠.

    ◆ 이원호> 그래서 사실 유일한 증거인 특공대원의 진술조차 재판 과정에서 번복됐기 때문에 저희는 특공방 치사, 치상은 무죄가 될 수 있겠다라는 그런 기대가 사실 확신까지도 가졌었거든요. 그런데 재판부는 검찰 기소 내용을 그대로 복사한 듯 판결을 내렸죠.

    ◇ 정관용>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 또 공동정범 이런 걸 통해서 많은 분들도 다들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신데. 그 당시 몰리고 몰려서 마지막 저항하시다가 사망케 할 목적으로 불을 질렀다는 식으로 사건이 종결돼 버린 거죠.

    ◆ 이원호> 맞습니다.

    ◇ 정관용> 그 당시 그렇게 진압을 지시하고 명령하고 직접 수행한 경찰들은 그 후에 아주 승승장구했다면서요?

    ◆ 이원호> 네, 특히 진압 작전을 지휘한 책임자가 당시 경찰청장으로 내정돼 있는 서울경찰청장 김석기인데 그때 어쨌든 사실 자기 무전기 꺼놨다고 발뺌하면서 경찰 소환조사조차 받지 않았거든요. 그냥 서면답변서로 무혐의 처분이 됐었고 경찰청장에서 어쨌든 발뺌하다가 국민 여론에 밀려서 사퇴한 이후에도 이명박 정권에서 오사카총영사로 임명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국공항공사라는 공기업의 낙하산 사장을 임명했었고 현재는 자유한국당의 공천을 받아서 경북 경주에서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 (사진=연합뉴스 제공)

     


    ◇ 정관용> 그뿐 아니라 그 밑 경찰관들도 다 승승장구했다면서요?

    ◆ 이원호> 맞습니다. 대부분 다 승진했고 어쨌든 편협한 수사를 이끌었던 검찰들도 승진을 했죠.

    ◇ 정관용> 그나마 작년에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용산참사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잖아요. 조기 진압을 목표로 해서 안전이 희생된 사건이었다. 이런 판단을 내렸죠?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김창수> 저는 그런 판단은 당연한 판단이라고 생각하고요. 특히 두 개의 문이란 영화에서도 보면 알겠지만 불이 막 나고 있는데도 물포를 계속 화재를 진압한다고 쏘는데 그게 유류화재이기 때문에 물로는 소화가 되지 않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 이유가 화학소방차를 단 한 대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이미 그런 유류물질이 가득한 농성장이라는 걸 경찰은 알고 있는데도 성급한 진압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까 안전장비를 전혀 갖추지 않고 진압을 했던 거죠.

    ◇ 정관용> 그래서 그 당시 위원회는 경찰청에 사과를 권고했잖아요.

    ◆ 이원호> 맞습니다.

    ◇ 정관용> 김창수 씨 사과 받으셨어요?

    ◆ 김창수> 아닙니다. 아직 사과 받지 못했고요. 민갑룡 경찰청장이 재발방지대책이 만들어지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겠다고 했는데요. 좀 더 빨리 진행이 돼서 정말로 유가족과 저희가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진심 어린 사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죠.

    ◆ 이원호> 그런데 이렇게 사과 권고가 난 지 사실 거의 5개월이 됐는데 아직 권고에 대한 입장조차 사실 발표하지 않은 거거든요. 우선 그런 것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이거는 경찰청뿐 아니라 검찰의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는 조사 대상이잖아요. 그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 이원호> 저희가 사실 경찰에서 과잉진압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에 경찰이 그 과잉진압한 경찰을 기소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 조사를 통해서 밝혀낼 거다라는 기대를 했었는데 최근에 연말에도 논란이 있었지만 이게 외압 때문에 특히 용산참사 조사팀이 수개월 전부터 조사를 손 놓고 있었다라고 하는 사실이 좀 드러났죠.

    ◇ 정관용> 제대로 그것도 진행이 안 되고 있네요.

    용산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지난 1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 이후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처벌과 국회의원 제명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윤창원기자)

     


    ◆ 이원호> 네. 그게 기한이 3월까지로 연장됐는데 3월까지 하려면 2월 안에는 보고서가 완성되어야 하는데 지금 기한이 연장되고 나서도 용산조사팀은 그냥 올스톱 상태라고 해요. 그 이유가 당시 이제 용산참사가 특별수사본부 대대적인 특별수사본부가 구성됐었잖아요. 참사 당시. 그때 검찰 검사 19명에 검찰 수사관 수십 명이 붙는 수사본부였는데 그러다 보니까 이게 10년의 세월이 지나니까 당시 19명의 검사들이 현직에 남아 있으면 대부분 고위직에 있고 현직에서 물러났어도 전관 변호사로 물러난 지 얼마 안 된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이라.

    ◇ 정관용> 그나저나 김창수 씨 올해가 10년인데 저희가 영화나 이런 데를 통해서도 봤습니다마는 매년 1월 달 다가오기 시작하면 몸에 변화가 생기신다고요?

    ◆ 김창수> 12월부터 그러기 시작하는데요. 추워지기 시작하면 예전 기억이 그대로 살아나고요. 그다음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요. 불안한 심정이 계속 유지되고 잠도 잘 안 오고 이런 것들을 동일하게 다른 분들도 느끼고 있고요. 괴롭죠. 아직도 안정이 잘 되지 않고. 정말 괴로워요.

    ◇ 정관용> 다른 분들하고도 계속 연락 주고받고 계십니까?

    ◆ 김창수> 네. 지금도 진상 조사하는 데 보탬이 되려고 하고 있고요. 이게 되지 않으면 저희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진상조사가 되어야만) 그 정권에서 얘기했던 테러리스트, 폭도, 이런 멍에도 벗을 수 있을 것 같고요. 꼭 그렇게 되어야만 경찰의 공권력으로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분명히 하죠.

    ◇ 정관용> 김창수 씨는 용산 해당 지역의 철거민은 아니셨잖아요. 외부에서 연대 투쟁을 위해서 가셨던. 그리고 어디서 철거를 당하셨던 거죠?

    ◆ 김창수> 저는 성남 단대동에 살았고요. 저희도 용산과 굉장히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고 강제철거 위기에 놓여 있었고요. 저희가 의지할 수 있는 게 사실 저희 편이 없어요, 지역에서도 저희 편이 없고 구청이나 이런 데서도 전혀 얘기를 들어주지도 않고 경찰은 저희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고. 그래서 저희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연대밖에 없었거든요. 용산에서 망루 투쟁을 생각하고 했을 때도.

    ◇ 정관용> 그러니까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여기는 달려가야겠다.

    ◆ 김창수> 저희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연대를 다니면서 그렇게 싸운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그 공동정범 영화에 보면 용산의 철거민 분들하고 연대하기 위해 가신 분들하고 이 사건 난 이후에 상당히 갈등이 벌어지는 것이 적나라하게 그려졌거든요, 영화에. 혹시 저 사람이? 혹시 저 사람이? 정말 불을 지른 건 아닐까. 서로 의심도 하고 막 이러면서. 정말 그랬었습니까? 갈등이 심했었어요?

    ◆ 김창수> 저희가 원래 연대를 통해서 이제 다 아는 분들이었지만 굉장히 친한 관계는 아니었어요.

    ◇ 정관용> 물론 그렇겠죠.

    ◆ 김창수> 술을 마신다거나 이런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출소 후에 이제 저희가 만날 기회가 있었어야 하는데 각자 다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고요. 그다음에 또 국가권력, 국가폭력에 의한 저희들의 상처가 다 달랐어요. 이충연 위원장 같은 경우는 아버님을 잃었고 지역의 대책위원장이었는데 그것도 수습해야 되는 상황이었고 저희 역시 연대했던 분들이고 각자 트라우마에 다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에서도 사실 기대하지 못했고요. 진상규명을 기대하지 못했고 그런 원망들이 조금은 저희 동료에게 부끄럽지만 동료에게... 갔었었고요.

    ◇ 정관용> 서로를 향해서. 요즘은 어떠세요?

    ◆ 김창수> 지금은 사실 영화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는데요. 영화를 통해서 저희가 갈등이나 또 견뎌야 하는 것들을 견뎌야 하는 것조차도 그것도 진상규명의 일환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너무 잘 견뎌주셨고 다들. 지금은 아웅다웅해도 너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용산참사 생존자인 김창수씨(왼쪽)와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오른쪽) (사진=시사자키 제작진)

     


    ◇ 정관용> 알겠습니다. 지금 이제 요구하시는 것은 명확한 진상규명 그리고 명확한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 재발방지 대책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디에 지금 기댈 수 있나요? 검찰의 진상조사단도 멈칫멈칫하고 있고 경찰 조사는 이미 다 끝나버린 상태고 어디에 기댈 수 있습니까?

    ◆ 김창수> 그래서 사실 저희가 추모주간 시작하면서 지난 화요일에 유가족과 피해자들하고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어요. 이제 좀 청와대가 나서야 된다. 특히 검찰과 경찰 개혁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실이라는 게 청와대에 있고 이 검찰이 거듭나겠다고 하면서 자체 조사를 가는 건데 이 지경이 된다면 청와대가 이런 외압 문제도 좀 제지를 하고 경찰이 객관적으로 독립적으로 조사할 수 있게 보장을 해 줘야 한다라는 게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쨌든 기존의 시스템이 전혀 못했기 때문에 사건을 재배당하고 또 지금 3월 말까지로 된 기간이 연장이 되어야지 사실 가능하거든요. 그 부분이 있고 저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과연 자신들의 잘못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을까 이런 불신이 더 많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검찰 조사가 끝나더라도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 국가 차원의 새로운 진상조사 기구를 통해서 좀 밝혀야 한다, 이런 요구들을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문재인 정부인데 문재인 정부에서 만든 경찰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이건 과잉진압이다라고 했고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경찰청장은 5개월째 사과를 안 하고 있고.

    ◆ 김창수> 오히려 총리는 사과를 하셨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만든 검찰의 진상조사단은 활동을 안 하고 있고. 상당히 기대했다가 이런 일이 벌어지면 더 마음의 상처가 크실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 김창수> 정말 그나마 저희가 굉장히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사면복권이 되고 저희한테는 사실 큰 의미는 없었는데요. 기대감이 굉장히 컸던 건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이제 요즘 더 유난히 마음이 불안정하고 그런 것이 검찰의 외압, 당시 수사검사들의 외압 때문에 진상조사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너무 답답한 거예요. 사실 밤에 잠도 제대로 오지 않고요. 너무 불편하고 이 정부에서도 이걸 못하면 어떤 정부에서 가능한 건가. 어떤 상황이었을 때 가능한 건지 정말 묻고 싶어요.

    ◆ 이원호> 사실 저희는 지금 이 진상조사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다시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고 또 그야말로 완전 과거사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좀 이 기회에 제대로 규명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이 모든 것이 강제퇴거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거니까 강제퇴거를 아예 금지시키자, 그런 법안이 지금 국회에 많이 나와 있잖아요. 그거는 어떻게 논의가 돼 가고 있습니까?

    ◆ 이원호> 사실 저희가 용산참사 이후에 대안적인 입법으로 한 2년 동안 인권사회단체들이 법률가 단체들과 같이 고민해서 강제퇴거금지법이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그 법은 충분한 사전협의와 이 사람들의 삶이 동등하게 유지될 수 있는 사전 대책들이 수립되고 또 사전에 개발계획 수립에 교통영향평가나 환경영향평가하는 것처럼 인권영향평가를 해서 미리 그 대책을 충분히 마련하자. 그런 거 없이 이루어지는 퇴거는 좀 불법으로 하자라는 법안인데요. 그게 18대 국회와 19대 국회 그리고 지금 20대 국회에도 발의됐지만 사실 국토부소위에서조차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 정관용> 한 번도 논의가 안 되고 있어요?

    ◆ 이원호> 그렇습니다.

    ◇ 정관용> 이 논의가 안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 이원호> 한국사회가 사실 경제발전이라는 것에 주요하게 부동산과 토건 위주의 경제성장을 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 부동산 카르텔이라는 게 굉장히 심하고 거기에서 사실 국회의원들이 굉장히 연루돼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정관용> 여야가 가릴 것 없습니까? 이 대목에서는.

    ◆ 이원호>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더 이 부분에 대해서 미진한 거고 또 현재 20대 국회에서는 바로 그것을 논의해야 할 국토위원회에 살인진압 책임자라고 저희가 얘기하는 김석기 국회의원이 국토위 위원으로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참 답답한 현실인데 이제 10주년 맞아서 이런저런 시민들과 함께할 행사도 준비하고 계시다고요? 어떤 것들을 준비하고 계신지.

    ◆ 이원호> 이미 저희가 추모 상영회를 갖기도 했었고 또 20일 오는 20일이 참사 당일이거든요. 그날은 낮 1시 반에 마석묘역에서 추모제를 갖고 또 용산은 저희가 1년여 동안 장례를 못 치르고 있는 동안 가장 큰 힘 중에 하나가 매일 미사가 있었거든요, 현장에서. 그래서 이번에도 10주기를 맞아서 참사 당일 5시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추모 미사가 있습니다.

    ◇ 정관용> 김창수 씨 누구에게라도 좋습니다. 국민에게라도 좋고 대통령에게라도 좋고 한마디 하시죠.

    ◆ 김창수> 저희가 그 당시에 테러리스트 폭도였다고 낙인찍힌 것이 좀 못내 굉장히 가슴이 아프거든요. 거기 올라가셨던 분들 너무 평범한, 정말 너무나 평범한 분들인데 진상규명을 통해서 정말 내 이웃이었다고 꼭 기억되었으면 좋겠고요. 진상조사 제대로 돼서 저희 고통이 좀 덜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꼭 기억해 줬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정관용> 말씀 잘 들었습니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 또 용산참사의 생존자십니다. 김창수 씨였어요. 고맙습니다.

    ◆ 이원호> 감사합니다.

    ◆ 김창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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