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코치. (사진=연합뉴스 제공)
대한체육회가 신고받은 성폭력 사건은 한 해 평균 6건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중 성폭력 가해자에게 영구제명을 내린 건수는 5년간 총 8건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체육회가 연맹에서 내린 징계 수위를 오히려 낮춘 경우도 있었고, 민원이 취하됐다며 징계 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다수 있었다. 피해 선수들이 '체육회는 한통속'이라는 인식 속에 신고를 꺼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대한체육회 5년간 접수된 성폭력 사건 29건, 영구제명은 8건 뿐CBS노컷뉴스는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을 통해 대한체육회로부터 최근 5년간 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 및 클린스포츠센터에 접수된 폭력 및 성폭력 사건 처리 내역을 받아 분석했다.
대한체육회 자료 분석 결과 2014년 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5년간 접수된 성폭력 사건은 총 29건이었다. 연평균 5.8건이다.
(그래픽=임금진PD)
연도별로는 2014년에 8건, 2015년에 7건, 2016년에 2건, 2017년에 4건, 2018년에 8건으로 신고 자체가 미비한 수준이었다. 2016년, 2017년에는 신고 건수가 오히려 크게 줄었다.
체육회에 접수된 29건의 성폭력 사건 징계 수위를 분석한 결과 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코치처럼 가해자에게 '영구제명'을 내린 경우는 5년간 총 8건밖에 되지 않았다. 한해 평균 1.6건에 불과하다.
징계를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민원이 취하됐다는 이유로 징계를 안한 건이 3건, 처분 대상이 아니거나 무혐의로 징계없음 조치가 내려진 것이 5건이었다.
이밖에 자격정지 1년~5년을 받은 경우가 6건, 무기한 자격정지가 1건이었다. 과거 성폭력으로 징계를 받았다가 국가대표 지도자로 채용된 것이 문제가 돼 선수촌에서 퇴촌한 경우도 1건 있었다.
나머지는 5건은 사법 처리 결과를 지켜본다는 이유로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자체 징계와 사법 처리는 별개임에도 불구하고, 체육회는 사법 처리 결과에 의존해 징계를 깎는 등의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2014년 8월 한 대학교에서 빙상 지도자가 선수에게 성폭행과 폭력을 가한 사건에 대해 대한빙상연맹과 대한체육회는 처음에는 가해자에게 영구제명을 내렸다가 법원에서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는 이유로 자격정지 3년으로 징계를 완화했다.
연맹에서 내린 징계 수위를 체육회가 오히려 낮추는 경우도 있었다. 2014년 3월 실업팀 지도자가 훈련 중에 선수들 다리를 만지는 등의 성추행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대한빙상경기연맹은 가해자에게 영구제명을 내렸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는 '자격정지 3년'으로 징계 수위를 낮췄다.
◇ 재판 결과 지켜본다며 징계 미뤄, 1년 8개월 넘어도 징계 안해 피해자들 '이중고'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소극적인 징계는 체육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른 분야보다 체육계의 '미투'가 잠잠한 이유이기도 하다.
피해 선수들은 가해자와 힘겨운 법적 소송을 벌이는 과정에서 대한체육회의 징계 결과를 근거로 제시하며 도움을 받기를 원하지만, 오히려 체육회는 사법 처리 결과를 다 기다린 뒤에 소극적으로 징계를 내린다.
테니스 선수 출신 김은희 코치의 미투에서도 이같은 문제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 코치는 초등학교 4학년때 코치에게 1년간 성폭행을 당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2016년 가해자를 우연히 만난 뒤 신고를 결심했다. 재판 과정에서 체육회의 징계 처리를 기다렸지만 체육회는 조사를 미루고 미루다가 1년4개월만에 징계를 내렸다.
이밖에 지난 2017년 5월 동성인 양궁부 선배가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체육회는 1년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법기관에 사건이 계류 중이라며 징계를 내리지 않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심석희 선수의 폭로로 파장이 확산되자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지만 체육회와는 별도로 독립된 신고 기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김수민 의원은 "피해 선수들이 체육회가 한통속이라고 불신하고 신고를 꺼리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독립된 신고센터를 만들고 체육회도 임원 총사퇴 등 책임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