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라디오 <임미현의 아침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임미현 앵커
■ 대담 : 홍제표 기자
(일러스트=연합뉴스)
◆ 임미현 > 북미 비핵화 협상이 한 동안 소강 국면을 보이다 다시 급진전되는 느낌이다. 배경이 뭔가?
◇ 홍제표 > 2차 북미정상회담을 다음 달 말쯤 열기로 했기 때문에 앞으로 한 달 가량 남은 셈이다. 양측의 대화는 지난해 11월 8일 고위급회담의 갑작스런 연기 이후 냉각 분위기였다. 그러던 것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올해 신년사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통한 호응, 그 중간에 이뤄진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등을 통해 반전이 일어났다. 비핵화 협상이 연초부터 급물살을 타게 것은 남북미 3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 임미현 > 공통적인 사정이란 게 무엇인가?
◇ 홍제표 > 북한으로선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고 경제건설을 우선하기로 한 상황에서 경제제재 완화가 절실한 문제가 됐다. 신년사에서 '조건이나 대가 없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바라는 속마음을 내보인 이유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선 4월 판문점 선언 1주년이 오기 전에 경제 상황의 개선 같은 성과가 필요하다.
◆ 임미현 > 그렇다면 시간은 미국 편이라고 할 수 있나?
◇ 홍제표 >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중단됐다는 점에서 즉각적인 위협은 일단 사라졌다. 이런 상태로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이란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시간을 끌면서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탄핵론까지 제기되는 국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외교적 빅 카드가 필요하다. 북미정상회담을 2월 말에 열기로 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프로젝트와 관련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노벨상 후보자 추천 시한은 다음달 1일이다.
◆ 임미현 > 북미관계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우리의 입장은 무엇인가?
◇ 홍제표 > 한미공조를 유지하면서도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선순환을 이뤄내야 한다는 게 우리 입장이다. 정부는 올해 1~3월이 장장 30년에 걸친 북핵협상의 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역량을 총집중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1953년 정전 이후 65년 만에 처음 찾아온,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로, 우리는 이 기회를 무조건 살려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 임미현 > 불과 20일 남짓한 기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고른다면?
◇ 홍제표 > 지난 21일 끝난 스웨덴 국제회의를 꼽고 싶다. 회의 자체는 특별하지 않다. 스웨덴 민간 싱크탱크가 수시로 개최해온 1.5트랙(반관반민) 회의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6자회담 당사국들의 정부 당국자와 국책연구소 연구원 등을 초청해왔다. 올해는 남북한과 미국 등 3개국만 초청했다.
◆ 임미현 > 하지만 특별히 결과가 발표된 것은 없다. 그런데도 이번 회의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홍제표 > 비공개 회의로서 논의된 내용에 대해서는 원래부터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참석자들의 반응과 현지 언론의 보도를 통해 전해지는 분위기는 좋은 편이다. 이번 회의가 의미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협상의 불씨를 살려냈다는 점이다. 고위급회담에 이어 실무회담을 잇달아 여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회의 결과에 대해 "최근 북미 고위급회담에 이어 북미 간 실무 차원에서도 대화가 이뤄지는 등 북미 대화의 모멘텀(동력)이 더욱 강화된 만큼 이를 바탕으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완전한 비핵화 관련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임미현 > 그런데 북미 고위급회담은 워싱턴에서 하고 후속회담은 스웨덴에서 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남·북한과 미국 3자 회의가 열린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휴양시설 정문의 경비 경찰 (사진=로이터/연합뉴스)
◇ 홍제표 > 스웨덴 1.5트랙 회의는 고위급회담 일정이 정해지기 훨씬 전부터 예정된 행사였다. 우연히 시점이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 임미현 > 그밖에도 이번 회의는 많은 것이 비공개리에 이뤄진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 홍제표 > 그런 점이 있다. 북측 참석자인 최선희 외무상 부상(차관)은 지난 17일 중국 베이징에서 스웨덴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행선지를 알 수 없었다. 미국 측 참석자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스웨덴 회의에 참석할지도 불확실했다. 최 부상이 스톡홀름에 가 있는 시점에 비건 대표는 북미 고위급 회담장에 있었다. 그래서 일부 언론은 비건과 최선희 만남이 이번에도 불발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 부상이 스웨덴으로 간 사실이 확인되자 비건과 우리 측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급히 합류했다. 북한이 이 회의 참석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성사 여부가 막판까지 불투명했던 것이다.
◆ 임미현 > 최선희 부상은 왜 그런 연막작전을 폈나?
◇ 홍제표 > 북한 인사들은 동선이 드러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많다. 이번에도 최 부상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함께 워싱턴행 항공편을 예약해둔 상태에서 막판에 스웨덴으로 향했다. 최 부상은 고위급회담과 스웨덴 1.5트랙 회의 참석을 놓고 저울질 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 임미현 > 그런데 최 부상은 고위급회담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후속협상이 제대로 이뤄졌을지 의문이다. 회의 결과가 특별히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아닌가?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남북미 회의를 마치고 현지의 북한 대사관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홍제표 > 외무성 소속인 최 부상은 통일전선부 중심의 대미협상 라인에서 다소 비껴나 있는 것은 사실인 같다.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비건과의 만남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이번 회의에서 비핵화 의제에 대한 구체적 성과가 나오기는 쉽지 않았을 수 있다. 다만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여러가지 지역 안보 체제(different mechanisms for regional security)가 논의됐고, 이 문제에 상당한 시간이 할애"된 것으로 전해졌다.
◆ 임미현 > 그럼 추가 협상이 필요할텐데 다시 만난다는 약속은 한 건가?
◇ 홍제표 > 추후 회동 일정 역시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북측이 이번에 남북미 3자 대면에 응한 것으로 보면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스웨덴 회의 형식을 빌리지 않고 판문점 같은 장소에서 후속 실무협상이 열릴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 임미현 > 그렇다면 북한으로선 대미협상의 축이 통전부에서 외무성으로 옮겨가는 것인가?
◇ 홍제표 > 고위급 회담은 앞으로도 1~2차례 더 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통전부의 역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이 비건의 카운터파트(상대역)로 최선희를 내보낸 이상 외무성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비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대북정책에 관한 한 전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처럼 대북특별대표를 겸임하는 것이 아니라 전담하기 때문에 집중력과 성취 욕구도 높다고 할 수 있다. 한 전문가는 이번 회의가 의미 있는 것은 회의 결과보다도 비건-최선희 라인이 가동된 것 자체에 있다고 말했다. 북미협상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틀이 비로소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임미현 > 이른바 '통미봉남'하던 북한이 남북미 3자 테이블에 나란히 참석한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 홍제표 > 이것도 남북관계의 중요한 진전이고 향후 협상에서 의미 있는 성과다.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만 대화하겠다던 북한의 태도는 지난해 4월 판문점과 9월 평양 정상회담을 거치며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국을 거쳐야 미국과 대화하기가 더 수월하다는 점을 북한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는 미국으로서도 마찬가지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과거 북미 회담 때는 "담벼락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미국 대표에게 회담 결과를 귀동냥하던 "서글픈 시절이 있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남한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론도 제기하기도 하지만 한국의 중재자·촉진자 역할이 커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 임미현 > 무엇보다 가장 큰 관심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과연 성공하느냐, 과연 열리기는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회의적 시각도 많은데 어떻게 전망하나?
◇ 홍제표 > 워낙 신뢰관계가 없는 양측의 협상인 만큼 전망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위급회담이 재개됐다는 것 자체가 양측의 접근이 많이 진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선 비핵화 후 보상'을 고집하던 것에서 이제는 단계적 해법을 시사하기도 하는 등 입장이 다소 유연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북한 김영철과의 면담 이후 "북한과 엄청난 진전을 이뤄냈다"는 트위터 글을 올린 것도 기대감을 갖게 한다.
◆ 임미현 > 북미간 협상 결과가 이른바 '스몰 딜'이 될지 '빅 딜'이 될지도 관심이다. 어떻게 예상하나?
◇ 홍제표 >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기질상 빅 딜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스몰 딜 가능성이 훨씬 크다. 스몰 딜만 해도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다. 북한 영변 핵시설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거나 동결·불능화하는 대신에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를 포함한 경제제재 해제와 인도적 지원 및 연락사무소 개설 정도는 합의가 이뤄져야 뭔가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임미현 > 영변 핵시설이나 ICBM 폐기, 또는 동결이나 불능화만 해도 엄청난 성과 아닌가?
◇ 홍제표 > 영변은 북한 핵시설의 약 80%(보수적 분석으로는 30~40%)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그 시설에 대한 폐기가 이뤄진다면 '불가역적' 비핵화에 준하는 상황이 된다.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의 폐기뿐 아니라 검증을 허용할 용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ICBM의 경우는 전망이 엇갈린다. 미국이 본토에 위협이 되는 ICBM부터 폐기하는 단계적 해법에 나설 것이고 북한도 영변핵 폐기보다는 이를 선호할 것이란 관측이 있다. 반면 ICBM은 이미 무기화 돼있는 '과거핵'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후순위로 돌리려 할 것이란 분석이 맞선다.
◆ 임미현 > 향후 북미, 또는 남북미 실무회담 결과에 더 기대를 걸어도 될까?
◇ 홍제표 > 북미 양측은 이미 상대의 요구를 잘 파악하고 있다. 이들 요구조건을 협상 테이블에 다 올려놓고 등가교환이 가능한 조합을 다양하게 맞춰보는 게 현재 상황일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디테일의 악마'다. 폐기를 하던 동결을 하던 여기에는 반드시 검증(사찰)이 필요하다. 과거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추방 등의 사례에서 보듯 북한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다. 미국의 제재 완화도 워낙 촘촘하게 엮어놓은 터라 설사 의지가 있어도 실행이 쉽지 않다. 미국의 대북제재 및 정책강화법(2016년 2월 시행)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의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때문에 미국의 독자제재를 풀기 보다는 유엔 제재 완화를 통한 상응조치가 더 수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임미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