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안성의 한 축산 농가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29일 외부의 출입을 통제한 채 살처분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윤철원기자)
"구제역은 없었어…. 비상사태니까, 큰일이지…. (이번 설에는) 왕래도 못 할 거 같어. 아들이 여기 왔다가 서울로 가는데, 오지 말라고 했어…."
안성에서 한우 80여 마리를 기르고 있는 맹정순(71) 할머니는 '조마조마'하다. 바로 이웃 농장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생때같은 할머니의 소들을 빼앗아 갈까 두렵기 때문이다.
맹 할머니는 난생 처음 만난 구제역에 이번 설에는 아들도 오지 말라고 했다.
설 연휴를 나흘 앞둔 29일 오전, 올 겨울 처음으로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의 한 축산 농가에서는 구제역 바이러스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한 방역 작업에 비상이 걸렸다.
주변을 지나는 차량으로 인한 전염을 막기 위해 마을 주요 도로 세 곳에는 통제초소와 소독시설 설치 작업이 시작됐고, 도로 위에는 생석회가 뿌려졌다.
전날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 인근 논에서는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는 구제역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사료와 짚 등 잔존물을 태우느라 끊임없이 희뿌연 연기가 치솟았다.
농가 안에서는 구제역에 걸린 20마리 뿐만 아니라 나머지 100여 마리 젖소들에 대해서도 살처분이 진행됐다.
현장의 한 방역 관계자는 "종전의 매몰방식 대신에 랜더링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며 "가축 사체를 고온멸균 처리한 뒤 기름 성분을 짜내 재활용하고 잔존물은 퇴비로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 인근 논에서는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는 구제역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사료와 짚 등 잔존물을 태우는 작업이 진행됐다. (사진=윤철원기자)
기존의 매몰 방식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사체가 부패하고 주위 지하수나 토양을 오염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행스러운 건 아직까진 구제역 확산 조짐은 없는 상태다.
안성시 방역 관계자는 "이번에 발생한 농장이 송아지를 다른 농가로 출하하는 육우 농장이 아닌 이동이 적은 젖소 농장"이라며 "또 백신 예방 접종률이 낮은 돼지 농가가 구제역 발생 농장 반경 3㎞ 내에 단 한 곳도 없어 과거 구제역 확산 사태에 비교할 때 사정은 나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발생 농가 젖소들의 경우 지난해 10월 백신 예방 접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인근 농장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면역력에 따라 예방접종을 했더라도 구제역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제역이 발생한 농장 근처에서 육우 30마리를 키우고 있는 농장주 김모(68)씨는 "육우는 보통 3개월 된 송아지를 사오는 데 제대로 된 목장에서 사오는 게 아니라면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소들이 많다"며 "특히 송아지는 면역력이 약해 감기같은 호흡기 질환에 죽기도 해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린 송아지를 매일 밥도 주고 병도 고쳐주면서 애지중지 키워왔는데, 하루아침에 잃게 된다면 의욕을 잃게 될 것 같다"며 한 숨을 내쉬었다.
이날 오전 구제역 발생 농장을 찾은 우석제 안성시장도 "축산업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가축이 병이 들면 농장주는 자식이 아픈 것처럼 마음이 아프기 마련"이라며 "철저한 방역으로 구제역 확산을 막아 축산인들의 시름을 덜겠다"고 말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대규모 이동이 예상되는 설 연휴를 며칠 앞둔 상황인 만큼, 앞으로 3주간의 대응이 구제역 확산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