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에서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였던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문 대통령은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할머니의 빈소를 찾았다.
검정색 정장을 입은 문 대통령은 헌화를 한 뒤, 영정 사진에 절을 올렸고, 그 뒤 김 할머니 사진을 7초가량 길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 뒤 문 대통령은 김 할머니의 법적 후견인으로 상주 역할을 맡고 있는 정의기억연대의 윤미향 대표와 악수를 했는데, 윤 대표는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문상 뒤 응접실로 들어간 문 대통령은 윤 대표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 위안후 할머니 쉼터 '평화의 우리집'의 손영미 소장 등과 대화를 나눴다.
윤 대표는 "김복동 할머니가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 진통제를 맞아가며 의지 하나로 버티셨다. 아흔 넷 나이에 온몸에 암이 퍼졌는데 9월 오사카를 다녀오고 수요집회도 나오시는 등 정신력으로 버티셨다. 의료진이 다 놀라워했다"며 고인의 마지막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어머님하고 연세가 비슷하신데 훨씬 정정하셨다. 참 꼿꼿하셨다"고 말했고, 윤 대표는 "돌아가시면서도 말씀을 많이 하셨다. '끝까지 해달라', '재일 조선인 학교 계속 도와달라'고 하셨고, '나쁜 일본'이라며 일본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셨다"고 부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조금 더 사셨으면 3.1절 100주년도 보시고 북미정상회담이 열려서 평양도 다녀오실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윤 대표도 김 할머니가 생전에 "김정은이 빨리 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오면 금으로된 도장을 만들어 주겠다. 김정은이라고 새겨진 그 금도장으로 통일문서를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또 문 대통령은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자들이 23분 이라며 "한분 한분 다 떠나가고 계신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떠나보내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이 고향인 길원옥 할머니와도 대화를 나누며 "우리 어머니 고향은 흥남이다. 이산가족들이 한꺼번에 다 갈 수는 없더라도 고향이 절실한 분들이라도 먼저 다녀올 수 있어야 한다. 고향은 안 되더라도 평양, 금강산, 흥남 등을 가면서 반 소원이라도 풀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빈소를 나온 문 대통령은 조객록에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십시오. 문재인'이라고 적은 뒤 장례식장을 나왔다.
현직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자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날 오후 김복동 할머니는 1년여의 암투병 끝에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40년 만 14세의 나이로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간 김 할머니는 고초를 겪다 8년 뒤인 1947년 귀국할 수 있었다.
김 할머니는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위안부 피해자로서 처음으로 증언하는 등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증언과 시민단체와의 만남을 진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김 할머니는 지난 2017년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