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사진=박종민 기자)
지난 28일 세상을 떠난 故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신촌세브란스병원 특1호실 앞엔 이튿날인 29일 오전 11시쯤부터 시작된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김 할머니와 동거동락했던 할머니들도 장례 첫날부터 부축을 받아가면서도 기어코 배웅에 나섰다.
'단짝' 길원옥 할머니는 이날 오후 2시 30분쯤 빈소를 찾아와 5분여 동안 아무 말이 없이 멍하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장갑을 벗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긴 침묵만 이어가자 오히려 지켜보던 주변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길 할머니는 "하고 싶은 말씀을 해보라"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윤미향 이사장의 말에도 고개만 숙였다 다시 들기를 반복했다.
"김복동 할머니를 보시니 어떠냐"고 물어도, "편안히 가셨다"고도 전해도 침묵하던 길 할머니는 한참 뒤에야 "이렇게 빨리 가시네" 하고 나직이 말했다.
길 할머니는 김 할머니가 생전에 좋아하셨던 노란빛 조끼를 재킷 안에 받쳐 입었다.
윤 이사장은 길 할머니가 부고를 이날 아침에야 들었다고 했다. 길 할머니는 아침식사를 하며 숟가락을 두 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윤 이사장은 전했다.
길 할머니는 조문을 마치며, 추모 팸플릿에 적힌 글귀를 또렷한 목소리로 읽어내려갔다. "뚜벅뚜벅 걸으신 평화 인권 운동의 길,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고 김복동, 평화를 위한 한 영웅의 발걸음"이라는 대목이다.
두 할머니는 지난 2012년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함께 만들었다.
2시간 쯤 뒤엔 김 할머니의 또 다른 친구 이용수(92) 할머니가 빈소를 찾아 영정 앞에 선 채로 소리 내 못 다한 얘기를 했다.
이 할머니는 김 할머니에게 "아베에게 사죄를 받아야 하니 하늘나라에서 아픈 데 없이 훨훨 날아 우리를 도와달라"며 "끝까지 싸워서 이기고 훗날 다 전해드리겠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며 "너무 서러워요, 너무 서러워요"라고 말하며 울먹인 이 할머니는 빈소를 나서면서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영정을 바라봤다.
김 할머니의 영정엔 김종도 작가가 주황색 바탕에 핀 흰 목련을 배경으로 웃는 김 할머니를 그린 그림이 놓였다.
마리몬드는 목련을 '꽃할머니 프로젝트'에서 김 할머니에 빗대 "계절을 앞장서서 묵묵히 이끌고, 자애롭게 비춘다"고 설명했다.
김 할머니의 입관식은 수요일인 30일 오후 2시에 예정돼있으며 그에 앞서 오후 12시엔 제1372차 정기 수요집회가 옛 일본대사관 건물 앞에서 김 할머니에 대한 추모식을 겸해 열린다.
발인날인 오는 2월 1일엔 오전 8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출발해 일본대사관 앞까지 향하는 노제가 진행된다.
거리를 행진할 94개의 만장엔 '일본의 사죄와 배상' '통일'과 더불어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 등 김 할머니가 생전에 남겼던 여러 말씀들이 적힐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