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설 이후 주택시장 움직임에 관심이 쏠린다.
통상 설 연휴가 지나면 이사철이 본격화되면서 주택 거래가 늘고 가격도 다소 상승 기조를 보이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올해는 정부의 강력한 규제대책과 4월 공동주택·개별 단독주택 공시가격 발표를 앞두고 매수세가 위축돼 있어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 공시가격 발표 변수…급매물 늘어날 듯 설 이후 주택시장을 가를 가장 큰 변수는 보유세다. 올해부터 규제지역내 종합부동산세 세율이 높아진데다 2주택 이상자부터는 세율이 중과된다.
특히 올해 보유세의 근간인 주택 공시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보유세 인상 효과는 배가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기존 주택시장의 침체가 설 이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5일 "공시가격 압박에 대해 수요자들이 생각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4월 말 공시가격 발표 뒤 유주택자들이 얼마나 보유세 부담을 감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설 이후 급매물 출시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작년 9·13대책 이후 재건축 대상의 급매물이 늘었다면, 앞으로는 보유세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나오는 일반주택으로 급매물이 확대될 수 있다.
다주택자들은 절세를 위해 양도차익이 적은 주택이나 양도세가 중과되지 않는 비규제지역의 주택부터 팔아 주택수를 줄이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일정 소득이 없는 은퇴자 가운데 고가주택을 보유한 사람들도 보유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택 다운사이징'에 나설 공산이 크다.
박원갑 위원은 "재건축에 비해 일반 아파트는 아직 가격이 상대적으로 덜 빠져서 설 이후 본격적으로 약세를 보일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고점에서 20%가량 빠진 지역에서는 낙폭이 제한적이고 이보다 덜 빠진 곳에서 추가 하락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공시가격 변수가 커서 4월 말 공시 전까지 종전과 같은 거래 침체와 가격 하락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며 "설 이후 이사수요가 일부 움직이겠지만 예년보다 적은 수준이고, 공시가격 발표 이후에는 급매물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매수자는 관망세 기조…거래 얼어붙지만 집값급락 가능성 낮아 급매물이 늘어나는데도 매수자들 입장에선 집값이 추가 하락할 것으로 보고 관망하는 기조가 주류를 이루면서 거래 자체가 크게 증가하긴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특히 규제지역은 양도세 중과 조치로 다주택자들의 급매물 출시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출 원리금이나 보유세 부담이 불가능한 한계가구를 제외하고는 섣불리 매도에 나서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안명숙 부장은 "올해 보유세 부담이 커지긴 하지만 실질적인 체감 증가는 주로 고가주택 보유자와 다주택자에 한정되고, 보유세가 급증하는 첫 해인만큼 일단 버텨보려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라며 "매물이 증가하긴 해도 한꺼번에 급증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집값이 급락할 가능성도 작다는 의견이 많다.
직방 함영진 빅데이터랩장은 "금리 인상이 겹친다면 모르겠지만 미국도 금리 인상보다는 경기부양을 고려하는 분위기이고 우리 정부도 예비타당성 면제까지 해주면서 지역 경기를 살리겠다는 입장"이라며 "지방과 달리 서울·수도권은 급매물이 속출하고 가격이 급락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진단했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주택정책실장은 "최근 시장 가격은 정상적인 거래를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닌 급매물 위주의 거래여서 급매물이 소진되고 나면 가격도 계속해서 떨어지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4월 말 공시가격 인상 전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려는 수요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김종필 세무사는 "작년 9·13대책으로 신규 매입 주택에 대한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은 대폭 축소됐지만 전용면적 85㎡ 이하, 공시가격 6억원 이하 기존 보유주택에 대한 혜택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임대사업 등록을 하거나 사전 증여를 하는 다주택자들이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종부세는 6월1일 기준으로 산정·부과되는 만큼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려는 수요는 5월 말까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전셋값 안정세 지속…분양시장은 차별화 확대 올해 서울과 수도권의 입주 물량이 늘면서 설 이후에도 전세시장은 대체로 안정세를 보일 전망이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올해 강남권 입주 물량은 지난달부터 입주가 시작된 송파 헬리오시티 9천510가구를 포함해 총 2만6천가구에 달한다.
지난 2017년 강남4구의 입주물량이 헬리오시티를 제외하고 6천300여가구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강남구 개포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이달 1천957가구의 래미안블레스티지 입주를 앞두고 전세물건도 적체되고 있다"며 "예년 같으면 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가 움직여야 할 시기인데 올해는 매매는 물론 전세도 움직임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다만 이사철이 시작되며 입주물량 영향을 덜 받는 지역과 단지별로 수요가 늘면서 국지적 가격 상승세는 나타날 수 있다. 반포 주공1단지 등 대규모 단지에 대한 재건축 이주도 일시적인 전셋값 불안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연초 주춤하던 분양시장은 본격적인 성수기에 접어들면서 2∼4월에 걸쳐 새 아파트 분양이 쏟아질 전망이다.
특히 청약제도 개편으로 무주택자들의 당첨 확률이 높아지고 분양가는 시세보다 낮게 책정되는 곳이 늘어나 인기지역의 청약열기는 여전히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분양가격과 입지 여건에 따라 양극화는 종전보다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지난달에는 서울에서도 청약 미달이 발생하면서 앞으로 전국 어디서든 1순위 마감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3기 신도시 건설로 수도권 외곽의 청약에도 비상이 걸린 상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 대출 규제 여파로 중도금 대출이 중단된 9억원 초과 주택은 소위 말하는 '로또 아파트'가 아닌 이상 미계약 리스크를 걱정해야 한다"며 "시세차익이 보장된 인기지역 아파트에는 청약예정자들이 대거 몰리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청약률에서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