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이종명 의원과 보수단체가 주최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 발표자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씨가 참석하는 가운데 5월 단체 회원들이 '진실을 왜곡말라, 진실은 거짓을 이긴다' 등의 손 현수막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탄핵 정국 이후 30%대에 임박하는 지지율을 가까스로 회복한 자유한국당이 최근 잇따른 실책으로 스스로 호재를 걷어차고 있다.
5‧18 망언, 전당대회 내홍, 박근혜 옥중정치, 최교일 스트립바 의혹, 웰빙단식 등 민심과 괴리되는 사안들이 계속 불거져 나오면서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진 모습이다. 여권 지지율 하락세의 반사이익을 얻었을 뿐 자강력을 제대로 못 갖춘 한국당의 한계로, 이번 사태는 이미 예견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최근 들어 5‧18 논란과 전당대회 날짜 문제를 두고 걱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우리가 자만하고 긴장을 풀 게 아니라 국민의 일부라고 해도 그 분들이 존중하는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반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에는 부랴부랴 5.18 공청회의 진상파악도 지시했다.
최근 한국당 김진태, 이종명 의원이 국회에서 개최한 5.18 진상규명 공청회에서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온 극우논객 지만원씨(77)가 발표자로 참석해 논란을 일으켰다. 행사에 참석한 이종명 의원은 "폭동인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고 했고, 김순례 의원은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이라고 말해 거센 비판 여론을 자초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해당 의원들의 제명을 촉구하며 국회 윤리위 제소 방침을 밝혔다.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들 마저 규탄에 나서며 등을 돌리는 모습이다.
당내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김무성 의원은 "역사적 평가가 끝난 5·18을 부정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자 금도를 넘어서는 것"이라며 "일부 의원의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발언은 크게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서청원 의원은 "안타깝고 불필요한 논쟁으로 국론까지 분열시켜야 되겠는가. 5·18은 숭고한 민주화 운동"이라고 했으며, 장제원 의원은 "당내 일각에서 급진 우경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당은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화된 2016년 10월(당시 새누리당) 29.6% 지지율을 기록한 이후 탄핵 정국을 거치며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가, 최근 30%대의 지지율 회복을 코 앞에 두고 있다.
김경수 지사, 손혜원 의원 논란 등 악재가 겹친 여권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사이 반사이익을 누린 셈이다. 하지만 잇따른 실책으로 스스로 '밥상'을 걷어차는 모양새가 됐다.
한국당의 퇴행은 이미 예견됐다는 분석도 있다.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주자 간 내홍이 겹치면서다. 당의 비전이나 미래를 두고 논쟁하기 보다 '일정'으로 아웅다웅하기 바빴다는 평가다.
전대 연기론은 베트남에서 열릴 예정인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1박 2일 일정 중 첫날과 겹치면서 제기됐다.
전대 시간을 놓고 사활을 걸다시피한 것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선두로 치고 나온 가운데 홍준표, 오세훈 등 나머지 당권주자들이 따라 잡을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결국 당 선관위가 일정 유지를 결정한 가운데 당권주자 6명은 대거 '보이콧'을 선언, 황 전 총리와 김진태 의원의 양자 대결로 흐르고 있어 '반쪽 전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전당대회에 있어 때아닌 '박심'(朴心) 논란도 민심과 동떨어진 '구태'라는 비판이다.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는 최근 한 종편에 출연해 "황 전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구속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을 예우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의 '옥중 정치'로 불리며 순식간에 전대 이슈로 떠올랐다.
홍준표 전 대표 등 보이콧을 선언하기 전 여러 당권주자들이 TK표심을 얻기 위해 '박근혜 사면론'을 꺼내드는 상황도 탄핵 이후 힘을 잃었던 박심이 꿈틀대는 계기가 됐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아직까지도 박근혜라는 이름에 휘둘리는 것이 자유한국당의 현재의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이밖에 웰빙단식, 최교일 의원 스트립바 논란 등도 한국당에게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당은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자, 국회 본관에서 농성장을 차린 후 릴레이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은 각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 4~5명씩 조를 구성해 하루 2회 각 5시간 30분씩 농성장을 지키는 방식으로 진행해 '웰빙단식'이라는 비판을 얻었다.
한국당은 설날 이후에는 릴레이단식을 '릴레이 유튜브'로 변경했다. '소득주도성장 폐기', '사법 장악저지', '김경수 부실수사' 등이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내용을 유튜브를 통해 알린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치권이 혼란한 틈을 타 웰빙단식을 은근슬쩍 접고 유튜브에 나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2016년 미국 뉴욕에서 공무 연수 중 스트립바를 방문했다는 의혹을 얻은 최교일 의원은 "제가 간 곳은 노출하더라도 상반신까지만 허용되는 곳"이라고 해명해 더 큰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7일 최교일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한국당이 그동안 반사이익을 통해 지지를 끌어올렸는데, 자체동력으로 지지를 끌어올리는 것에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며 "갖가지 사안에 대한 비대위의 미흡한 대처도 한국당에게는 큰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