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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항소심, 성폭력 판결 이정표 될 것"

법조

    "안희정 항소심, 성폭력 판결 이정표 될 것"

    피고인 진술을 공소사실 뒷받침하는 간접 증거로 사용
    성인지감수성 판결 이례적인 것 아냐…기존 대법 법리 따라
    '비동의 간음죄' 입법 아닌 강간죄 구성요건 완화해야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등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법정구속이 되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안희정 항소심' 판결은 앞으로 성폭력 사건 판결의 이정표가 될 것."

    12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2심 판결 쟁점 분석 간담회'에서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 9명은 입을 모아 이같이 말했다. 변호인단의 장윤정 변호사는 "1심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나 다른 하급심의 성폭력 사건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라 2심에서 뒤집힐 것으로 예상했다"며 "이번 판결은 매우 유의미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 10개의 공소사실을 들어 기소했으나 1심 재판부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2심에서는 10개 중 9개에 대해 유죄를 선고해 1심과는 완전히 뒤바뀐 양상을 보였다. 변호인단은 2심 판결이 원심을 뒤엎게 된 배경과 의미를 △위력 판단 △피해자 진술 신빙성 △피고인 진술 신빙성 △성인지 감수성 등 4가지로 나눠 정리했다.

    특히 변호인단은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인의 진술 신빙성'을 1심과 달리 면밀히 검토하고, 이를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간접 정황으로 사용한 점을 강조했다. 피고인 신문은 통상적으로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자기방어권 행사를 위해 요청하거나 법원이 직권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1심에서 안 전 지사 측은 신문을 요청하지 않았다. 재판부도 피고인에 대한 질의 절차 없이 피해자의 진술과 다른 정황증거를 토대로 안 전 지사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고 판결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검찰 측의 피고인 신문 신청을 채택해 안 전 지사를 법정에서 7시간가량 진술하게 했다. 이 때 진술 태도와 내용 등을 검찰 수사 과정에의 모습과 맞춰 보며 진술의 신빙성을 따졌다. 이 과정에서 안 전 지사가 사건 초기 자신의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고 성폭력을 시인하다가 수사 과정에서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입장을 바꾼 점 등이 진술 신빙성을 배척한 근거로 활용됐다.

    안 전 지사가 "자연스럽게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관계로 발전했다"고 진술한 부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답변하지 못한 점을 재판부는 눈여겨봤다. 첫 성접촉이 일어날 당시 피해자는 채용된 지 한 달 된 새내기이며 업무량이 많았다는 점 등의 정황을 고려할 때, 자연스럽게 성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 자체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변호인단의 최윤정 변호사는 "2심 재판부가 단순히 피고인 진술을 배척하지 않고 피해자 진술이나 다른 정황근거 등 쌍방의 진술을 활용해 객관적인 상황을 확인한 것"이라며 "통상적으로 내밀하게 이뤄지는 성폭력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판례"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직접증거인 성폭력 사건에서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면 이를 법관의 판단에 따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간접 정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성인지 감수성과 관련해서는 2심 법원이 '감정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님을 주장했다. 서혜진 변호사는 "성인지 감수성이 법률 용어는 아니지만 이미 국가 정책과 법안은 물론 대법원 판례에서도 기본으로 삼고 있는 가치"라며 "양성평등기본법에도 근거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 전 지사 측에서는 성인지 감수성이란 개념은 법률상 명확하지 않고 기준이 없다고 지적하며 성폭력 사건의 유일한 판단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고 반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 변호사는 "오직 피해자의 진술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피해자에 대한 재판'은 지양해야 한다"며 "피고인이 주장하는 점과 근거 등 '사실'에 대해 좀 더 꼼꼼히 본다면 그것 자체가 성인지적 관점에서 심리하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이 이례적이라는 일각의 시각에 대해서도 변호인단은 "기존 대법원 법리를 엄격히 따른 판결로 전혀 이례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 위력의 존재 여부와 행사 가능성을 분리한 것이 오히려 기존에 대법원의 구성요건 판단과 어긋난다는 것이다.

    1심에서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배척하는 근거가 된 '순두부', '와인바', '상화원' 등의 키워드에 대해서도 2심 재판부는 "정형화한 성범죄 피해자의 반응만을 정상적이라고 보는 편협한 관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으로 피해 사실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혜선 변호사는 "피해자는 이번 판결에 안도하면서도 아직 일상생활을 드러내놓고 하지 못한다"며 "이 판결이 확정돼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편 1심 재판부가 국회에 공을 넘기며 언급한 '비동의 간음죄'에 관해서는 기존의 강간죄 구성요건을 완화하는 방식이 옳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입법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형법 297조에서 요구하는 강간죄 의미를 넓혀야 한다"며 "유엔(UN)에서도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판단하라고 권고한 만큼 성폭력의 본질을 새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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