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최영미 페이스북
법원이 고은(86) 시인의 20여년 전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의 주장의 신빙성과 공익성을 인정해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1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이상윤)는 고은 시인이 최영미 시인과 박진성 시인, 언론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 시인과 언론사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박진성 시인에 대해서만 원고의 청구대로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1994년 원고(고은)의 말과 행동 등에 대한 피고(최영미)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특별히 허위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반면 원고 측 증거와 증언은 이 사건 보도내용이 허위임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책임과 관련한 부분에서도 고은 시인이 문화예술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한 공인이자 제기된 의혹이 광범위한 국민의 관심 대상이 되는 범법행위나 도덕성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위법성이 조각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손해배상 청구는 물론 언론사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도 기각했다.
반면 박진성 시인이 폭로한 2008년 고은 시인의 성추행과 성기 노출 사건에 대해서는 진술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봤다. 박 시인이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에 출석하지 못해 진술의 일관성이나 태도를 검토할 기회가 없었고, 사건 당시 동석했다고 주장하는 원고 측 증인의 진술이 더욱 구체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최 시인은 이날 선고 후 기자들과 만나 "진실을 말한 대가로 소송에 휘말렸다. 다시는 저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며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를 뻔뻔스레 고소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면 안된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2017년 9월 계간지 '황해문화'에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암시하는 '괴물'이라는 시를 실었다. 시에서 최 시인은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 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이라고 썼다. 또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라고 써 사실상 고은 시인의 실명을 폭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