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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항거한 의병, 국군의 뿌리' 국방부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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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항거한 의병, 국군의 뿌리' 국방부 재평가

    • 2019-02-23 11:53

    국군홍보책자에 의병史 국군 역사로 명확히 기술
    임정의 한국광복군을 첫 공식군대로 평가
    국군의날 변경 주장 제기될듯

    (사진=연합뉴스)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 국군의 뿌리가 어디인지에 새삼 관심이 쏠린다.

    그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설한 한국광복군이 국군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해왔는데 최근에는 일제에 항거한 '의병'까지를 국군의 뿌리로 확대했다.

    23일 국방부가 발간한 '대한민국 국군'이란 제목의 홍보책자는 "강제로 해산된 대한제국 군대가 의병으로, 일제 강점기 독립군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발전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됐다"라고 기술했다.

    그러면서 국군의 역사를 ▲1894-1910(의병전쟁기) ▲1910-1919(의병항전 및 독립군 정비기) ▲1919-1933(독립전쟁 발전기) ▲1933-1938(독립군 개편기) ▲1938-1945(광복전쟁기) 등으로 구분해 적었다.

    이어 ▲1945-1950(건군기) ▲1950-1961(전쟁 및 전후 정비기) ▲1961-1972(국방체제 정립기) ▲1973-1980(자주국방 기반 조성기) ▲1981-1990(자주국방 강화기) ▲1991-현재(국방태세 발전기) 등으로 나열했다.

    여기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의병전쟁기'를 국군의 역사로 조명했다는 점이다.

    이에 국방부는 "일본군의 경복궁 점거,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등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자 유생들과 백성들이 스스로 의병이 되어 싸웠다"며 "1907년 강제 해산된 대한제국 군대의 군인들이 합세하여 독립전쟁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방부는 "호랑이라 불린 독립지도자들이 있었다"며 "국군은 그 정신을 계승해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호랑이 독립지도자'로 신돌석(1878-1908) 의병장, 김동삼(1878-1937) 신흥무관학교 의장, 문태수(1880-1931) 의병장을 지목했다.

    태백산 호랑이로 불리던 신 의병장은 1896년 19세의 나이로 의병을 일으켰다. 경상도에서 강원도에 이르는 동해안을 따라 신출귀몰한 기습전을 벌였다. 평민 출신으로 한국 독립전쟁사에서 커다란 활약을 편 인물 중 한 명으로 국방부는 평가했다.

    해군은 아홉 번째 1천800t급 잠수함을 '신돌석함'으로 명명한 바 있다.

    문태수 의병장은 1906년 지리산에서 거병해 장수와 무주 등 덕유산을 근거지로 의병 활동을 펼쳐 덕유산 호랑이로 불렸다. 1907년 호남창의대장으로 서울 진공작전을 폈고, 호남을 대표하는 의병으로 평가된다. 1910년에는 의병을 이끌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계획을 세웠지만, 정보가 새어나가 좌절됐다. 이듬해 일본군에 체포된 이후에도 시종 기개를 굽히지 않다가 1913년 옥중에서 자결했다.

    신흥무관학교 의장 김동삼은 만주의 호랑이로 불렸다. 1907년 서울에서 신민회 활동을 했던 그는 만주로 건너가 신흥강습소를 설립하고, 1913년 백서농장을 개설해 독립투사를 양성했다. 1918년 만주에서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뒤 서로군정서의 참모장이 됐다.

    만주의 독립군을 통합해 통군부를 조직하고 교육부장을 맡았다가 통의부로 개편되면서 위원장에 임명됐다. 독립운동단체를 하나로 묶는데 탁월한 지도자였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국방부는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을 대한민국의 첫 공식 군대로 평가했다.

    국방부는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흩어져 있던 독립군 부대와 지도자들을 모아 한국광복군을 조직했다"며 "임시정부 수립 20여년 만에 생긴 광복군은 대한민국의 첫 공식 군대가 됐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재 국군의 날(10월 1일)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변경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난 2017년 한국광복군 동지회 주관으로 열린 한국광복군 창군 77주년 기념식에서 국군의 날 변경 주장이 나왔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도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로 변경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2003년에도 국군의 날을 변경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적이 있다.

    청와대가 임시정부 수립일(4월 11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창설일을 국군의 날로 삼자는 주장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도 크다.

    지금 국군의 날은 국군이 38선을 돌파한 날을 기념해 1956년 제정했다. 1950년 10월 1일 국군 3사단 23연대가 양양군 기사문리에서 최초로 38선을 돌파했다.

    1950년 9월 서울 수복 이후 북진 명령이 하달되자 38선 남쪽 2㎞ 지점인 강원도 양양 인구리에 주둔하고 있던 23연대 예하 3대대 9중대는 그해 10월 1일 오전 5시께 전군 최초로 통한의 38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정부는 1956년 9월 4일 대통령령 제1117호에 의해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하고 23연대 본부에 국군의 날 제정 기념탑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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