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보석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박종민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5년 후배 앞에 피고인 자격으로 서면서도 은연중에 재판장을 압박하는 언사를 한 모습이 포착됐다.
26일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신의 보석심문 기일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발언 기회를 얻은 양 전 대법원장은 13분에 걸쳐 검찰의 잘못된 수사 방식과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다. 준비한 서면도 없이 후배 재판장만을 정면으로 응시한 채였다.
발언 과정에서 그는 중간중간 '우리 법원'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재판장과 같은 소속이었음을 드러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이 '우리 법원'을 쥐잡듯이 샅샅이 뒤져 흡사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쪽 공소장을 만들어냈다"며 "'우리 법관'이 얼마나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깊은 고뇌를 하는지 전혀 이해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노골적으로 재판의 원칙과 법관의 자격론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재판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아무 얘기를 하지 않겠다"면서도 "공평과 형평이라는 형사소송법 이념이 지배하는 법정이 되고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법정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 과정에서 전체적으로는 존댓말을 사용하면서도 5~6번에 걸쳐 불쑥불쑥 거침없이 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는 "보석청구서에 기재된 곳에 거주하고 있나"를 묻는 재판장 질문에 "그곳은 내 거주지로 내가 거주하는 곳이지만 시위대가 많이 몰려들어 잠시 비운 적이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내가 조사를 한창 받을때는 혹시나 오해가 될까 후배에게 전화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검찰 소환 당시에도 자신이 조사를 받는 검찰청사가 아닌 '친정'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해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법조계 안팎에선 양 전 대법원장이 법원에 노골적으로 '메시지'를 던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 측과 검찰의 주장을 참고한 뒤 적절한 시기에 보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