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양희종?'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 정효근은 최근 농구월드컵 아시아 예선 중동 원정 2연전에서 알토란 활약으로 장신 포워드로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사진은 시리아와 경기에서 상대 수비를 뚫고 드리블하는 모습.(사진=대한민국농구협회)
2019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 아시아 예선 중동 원정 2연전을 승리로 장식한 한국 대표팀. 23일과 25일 각각 시리아와 홈팀 레바논을 격파하며 10승2패로 기분좋게 예선을 마무리했다.
이미 대표팀은 지난해 11월 홈 2연전에서 월드컵 본선 티켓을 확보한 상황. 이번 원정 2연전은 승패보다는 본선을 위해 전술을 점검하고 향후 한국 농구를 위한 젊은 선수들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목적이 더 컸다. 그런 점에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원정이었다.
귀화 선수 라건아(199cm·울산 현대모비스) 외에도 국내 선수들이 자신감을 한층 더 가질 수 있었다. 김종규(207cm·창원 LG)는 210cm의 아터 마족(레바논)을 앞에 두고 이른바 인 유어 페이스 덩크((In Your Face Dunk)를 꽂았고, 안영준(196cm·서울 SK)은 시리아전, 임동섭(198cm·서울 삼성)은 레바논전에서 신들린 외곽포를 터뜨렸다.
특히 26살 장신 포워드 정효근(202cm·인천 전자랜드)의 존재감도 돋보였다. 기록상 수치는 비록 높지 않았지만 수비 등 보이지 않는 알토란 활약을 펼치며 대표팀 연승에 발판을 놨다. 정효근은 시리아전에서 화려한 패스로 2점 6도움을 기록하며 가드 못지 않은 시야를 뽐냈고, 레바논전에서는 승부처 3점슛을 포함해 6점 4리바운드 2도움을 올렸다.
특히 정효근이 난적 레바논을 상대로 19분을 뛰는 동안 대표팀은 +11점의 득실점 차이를 올릴 만큼 효율이 좋았다. 물론 이정현(191cm·전주 KCC), 박찬희(190cm·전자랜드), 이승현(197cm·고양 오리온), 김시래(178cm·LG) 등 기존 대표팀 주전급 선수들도 여전한 기량을 뽐냈지만 이번 원정 2연전은 정효근의 재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가능성을 크게 인정받았다.
'이렇게 해야 국가대표 될 수 있단 말야' 유도준 전자랜드 감독(오른쪽)은 정효근의 신인 때부터 국가대표 만들기 프로젝트를 가동해왔다. 사진은 지난해 아시아리그 'SUMMER SUPER8'에서 정효근을 지도하는 모습.(사진=KBL)
이런 정효근의 성장을 누구보다 흐뭇하게 지켜본 사람이 있다. 바로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52)이다. 유 감독은 정효근을 신인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키워야 한다며 당근과 채찍으로 조련해온 인물이다.
유 감독은 26일 대표팀의 이번 중동 원정 2연전에 대해 "선수들 모두 어려운 원정에서 좋은 경기를 펼쳤다"는 덕담으로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박찬희가 역시 노련하게 경기를 잘 이끌었고, 정효근도 제몫을 해줬다"며 소속팀 선수들을 칭찬했다.
정효근에 대한 평가를 묻자 유 감독의 목소리에는 흐뭇함이 더욱 묻어났다. 유 감독은 "5년 전부터 정효근을 국가대표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면서 "이제 그런 노력이 빛을 보는 것 같다"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유 감독이 정효근을 집중 조련한 것은 그만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정효근은 한양대 재학 시절인 21살에 일찍 프로에 진출했다. 200cm가 넘는 키에도 스피드까지 갖춘 잠재력을 인정받았고, 유 감독의 지도 속에 올 시즌 소속팀에서 평균 28분 10.6점, 4.9리바운드, 2.5도움으로 커리아 하이를 찍고 있다. 대표팀에서도 이번 원정에서 존재감이 돋보였다.
정효근이 25일 끝난 레바논과 농구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전에서 3점슛을 시도하는 모습.(사진=대한민국농구협회)
유 감독은 "사실 정효근이 대표팀 간판 포워드 양희종(194cm·안양 KGC인삼공사)처럼 커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득점도 중요하지만 수비는 물론 동료들을 살려줄 수 있는 플레이, 승부처에서 경기를 이길 수 있게 하는 센스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양희종은 상대 에이스들을 끈질기게 따라붙는 근성과 강력한 수비로 정평이 나 있다. 기록 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정효근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감독은 "장신 포워드로서 수비와 리바운드까지 할 수 있다"면서 "특히 정효근은 운동 능력도 좋아 블록슛까지 가능하다"고 짚었다. 이어 "어릴 때 가드를 봤기 때문에 패스 능력도 있다"면서 "득점이야 플레이 시간이 늘어나면 많아지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정효근 역시 원정 2연승 뒤 "희종의 형처럼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수비에서 최고가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처럼 정효근이 성장해주면 한국 농구는 물론 소속팀에도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유 감독은 "한국 농구의 인기가 갈수록 줄고 있는데 정효근처럼 새 얼굴들이 대표팀 간판이 돼야 한다"면서 "또 전자랜드가 한번도 챔피언결정전에 나서지 못했는데 정효근이 돌아와서 봄 농구에 힘을 보태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의 중동 원정에서 가능성과 자신감을 확인한 정효근. 올 시즌 뒤 군 입대가 예정된 가운데 정효근이 자신을 키워준 유도훈 감독에게 대표팀은 물론 소속팀에서도 성장의 보람을 안겨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