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을 너머 대권을 노리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이회창 모델'을 따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법조인과 총리를 거쳐 정계에 입문해 단숨에 당권을 쥔 황 대표의 행보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행적과 여러모로 유사해서다.
이 전 총재 시절 대중적 지지와 강력한 당권 장악을 떠올리는 기억들로 한국당 내에선 황 대표에게 상당한 기대감을 걸고 있는 눈치다. 하지만 그의 투쟁력과 계파청산 의지에 의문을 표하며 "이회창과 다를 것"이라는 시각도 공존한다.
황 대표는 검사와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거쳐 올해 1월 한국당에 입당해 한달여 만에 당권을 거머쥐었다. '법조인-총리-정계입문-당대표' 코스를 거쳤다는 점에서 이 전 총재와 곧잘 비교된다. 이 전 총재는 판사,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거쳐 정치로 직행했다.
황 대표가 정계 입문 전 '이회창 모델'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는 얘기는 공공연히 퍼져있다. 황 대표 주변에 이 전 총재의 측근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전언도 나온다.
당내에선 황 대표의 이러한 경력이 묘한 기대감을 주고 있다. 한국당 한 초선의원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대쪽 이미지로 강한 보수를 이끌었던 이회창 전 총재 아니었나"라며 "이 전 총재가 폐쇄적이라는 약점이 있었다면 황 대표는 그보다는 개방적인 측면도 보인다. 여러 기대감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1995년 당시 여당인 민자당(한국당 전신)은 6·27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대쪽 이미지'로 국민적 지지를 갖춘 이회창 전 총리는 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됐으며, 총선에서 수도권에서 과반을 획득하는 등 승리를 거뒀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사분오열된 새누리당은 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꾼 후 그해 대선과 다음해 지방선거를 치뤘지만 참패로 마무리됐다. 한동안 비상대책위원회 체재로 운영된 당은 황 대표 선출 뒤 정상궤도를 찾으려는 분위기다.
당이 위기인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했다는 점과 범보수진영에서 선두에 선 지지도, 정계 진출 과정 등을 볼 때 '이회창-황교안'이라는 기시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차이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가장 큰 것은 '권력 투쟁'의 차이다. 이 전 총재는 대법관 시절 대표적인 개혁 성향으로 분류됐고,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원장으로 발탁된 이후에는 성역으로 일컬어지는 율곡사업 비리 등에 칼을 대며 '대쪽' 이미지를 굳혔다. 국무총리로 올라가서는 내각을 책임지는 '소신 총리'로 이름을 날리며 YS와 맞선 끝에 4개월 만에 총리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하지만 황 대표는 공안검사, 법무부장관, 국무총리 시절에 윗권력과 맞선 경험은 없다. 전당대회에서도 정치 신인에 대한 기대감과 '황교안 대세론'에 힘입어 당권을 수월하게 거머쥐었다.
한국당 한 중진의원은 "이 전 총재가 YS에 맞서 당대표와 대선후보까지 가는 행보를 보였다면, 황 대표는 아직 '점잖은 공무원' 이미지가 강하다"며 "특히 야당이 투쟁할 일이 많은데, 이런 측면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의문"이라고 평했다.
황 대표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핵심 과제로 일컬어지는 계파 갈등 청산과 인적쇄신을 얼마나 이룰지도 이 전 총재와 비교 포인트다.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한국당 전신) 총재 시절인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김윤환 전 의원 등 민정계 핵심과 당내 중진들을 과감히 물갈이했다.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정계를 쳐내고 젊은 피를 수혈한 끝에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탄핵 불복', '태블릿PC 조작 가능성' 등을 제기해 친박 지지를 이끈 황 대표이기에 친박을 쳐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시각이 상당하다. 황 대표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보수통합', '무계파' 등을 강조했지만, 첫 당직 인사로 사무총장에 '원조 친박'인 한선교 의원을 앉히는 등 벌써부터 '탕평'과 어긋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비박계 의원은 "친박 지지에 전대 과정에서 태극기 세력의 지지까지 얻은 황 대표이기에 당직 인선 등에서 친박계가 신경 쓰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인적쇄신을 얼마나 고루 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멀리 대권을 본다면 결국 황 대표가 강조한 '보수통합'이 승부수가 될 전망이다. 이 전 총재의 경우 1997년 대선 당시 이인제 후보 등이 탈당하는 등 보수분열로 패배했다.
하지만 보수통합을 이루더라도 '중도 표심'을 어떻게 끌어오는 것인가도 숙제다. 2002년 대선에서 이 전 총재는 보수 대연합을 이루며 승리를 예견했지만, 결국 또다시 패배했다.
이 전 총재는 회고록을 통해 "유권자 중 좌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층, 이른바 중도층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데 이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며 "이미지에서도 노무현 후보 측이 내세운 기득권과 개혁세력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자인했다. 황 대표가 '이회창의 길'을 따라갈지, 넘어설지가 향후 대권가도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