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규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이민걸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방창현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사진=연합뉴스)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 10명이 추가로 재판에 넘겨졌다.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구속 기소된 이후 이번 사태에 연루된 사법부 수뇌부들까지 추가로 기소되면서, 지난해 6월 시작한 검찰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5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비롯해,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 10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추가기소했다.
이 전 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임성근·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조의연·성창호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 이태종 전 서울지법원장,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등이 대상이다.
이민걸 전 실장은 2016년 옛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항소심 재판장을 만나 소 각하 판결을 한 1심 결과를 뒤집어야한다는 취지의 문건을 전달해 법관의 독립된 재판권 행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또 양 전 대법원장 등과 공모해 2016년 당시 상고법원 도입 등에 반대하던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의 활동을 저지·탄압하는 방안을 강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실장은 사법부 정책 추진에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왕주현 전 국민의당 사무부총장 정치자금법위반 사건에도 개입해 재판부의 보석허가 여부 등을 사전에 파악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이규진 전 위원은 당시 위상이 강화된 헌법재판소를 견제할 목적으로 2015년 파견 법관을 통해 헌재에 계류 중인 민감 사건에 대한 진행경과, 동향 등 내부정보 총 325건을 수집해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또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 사건, 매립지 등의 귀속 관련 사건, 통합진보당 행정소송에도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임성근 전 수석부장판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지적한 산케이신문의 카토 타쓰야 전 서울지국장 사건, 민변 변호사들에 대한 체포치상 사건, 유명 프로야구 선수의 도박죄 약식명령 사건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신광렬 전 수석부장판사는 2016년 '정운호게이트' 사건이 전체 판사들 비위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 조의연·성창호 영장전담부장판사를 통해 영장청구서, 수사기록 등을 수집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보고내용에는 조사 받은 자들의 구체적인 진술 내용과 계좌·통화내역분석 결과 등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다수 수사기밀이 기재된 것으로 드러났다.
유해용 전 연구관은 2016년 박근혜정부 청와대의 부탁으로, 당시 비선진료를 맡았던 김영재 부부의 특허소송에 개입해 소송 진행 상황, 향후 계획 등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혐의 등을 받는다.
한편 이날 관심을 모았던 전·현직 대법관은 기소 대상에서 모두 제외됐다.
애초 권순일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차한성 전 대법관이 기소 대상으로 거론됐지만, 구체적인 가담 정도 등을 고려했을 때 범행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고 보기 부족하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또 기소 대상에는 포함하지 않았지만, 혐의가 없다는 단정할 수 없는 판사 66명에 대해서는 대법원에 징계 처분을 위한 비위사실을 통보했다.
앞서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이 전 상임위원과 이 전 실장에게 각각 정직 6개월을, 방창현 전 부장판사에게 정직 3개월 등 8명에 대한 징계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들을 기소한 검찰은 이후 당분간 관련 수사룰 계속 이어갈 전망이다. 이 때문에 재판 중 추가 기소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