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나 원내대표의 대표연설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에 여야 의원들이 극한 대립을 하며 파행을 겪었다.) (사진=윤창원 기자)
70일이 넘도록 닫혀있던 국회의 문이 열렸지만 시작하자마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시작으로 갈수록 막말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몸싸움으로 얼룩졌던 이른바 '동물국회'를 막자고 마련된 국회 선진화법으로 인해 한동안 '식물국회' 비판을 받더니 이제는 '막말국회'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국회 선진화법을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던 18대 국회는 말 그대로 동물국회였다.
이른바 '12·18 국회 폭력사태'가 일어났던 2008년 12월 18일 국회에는 기상천외한 도구들이 등장했다. 다름 아닌 쇠망치와 쇠지렛대(빠루), 전기톱(그라인더)이 그것이다.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단독상정을 위해 미리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에 들어간 채 바리케이드를 치자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 관계자들이 바리케이드 해체를 위해 장비를 동원한 것이다.
이듬해인 2009년 7월에는 미디어 3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여야는 물론 이익단체들까지 의사당 안으로 난입하는 난장판이 펼쳐졌고 2011년에는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한미 FTA 비준안 처리 반대를 위해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거대당의 밀어붙이기식 법안 처리라는 폐해를 막기 위한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된 후 출범한 19대부터 현 20대 국회는 식물국회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간 합의가 없이는 법안 등을 처리할 수 없다보니 처리 속도가 부쩍 느려졌기 때문이다.
여당은 민생을, 야당은 정부·여당의 독선을 강조하며 평행선을 긋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도 자유한국당의 보이콧으로 인해 국회가 지난 1~2월 동안 한 차례도 열리지 않더니 무려 71일의 공전 끝에 3월 국회가 열렸다.
모처럼 의원들이 일터로 돌아와 올해 들어 처음으로 국회가 열렸지만 나 원내대표의 1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로 인해 시작부터 파열음이 크게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교섭단체대표연설 중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에 문희상 국회의장을 찾아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항의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나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말을 듣지 않게 해달라"며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지난해 9월 유엔 연설에 나선 문 대통령을 블룸버그가 '김정은의 수석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고 표현한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외신 보도를 인용했다고는 하지만 제1 야당 원내대표가 대통령을 북한 지도자의 수석대변인이라고 언급한 것 자체가 예삿일이 아닌 만큼 파장 또한 컸다.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가 직접 "대한민국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라고 말하며 격노했고 민주평화당과 정의당도 구태 정치이자 태극기부대의 인기를 얻기 위한 행위라며 비난에 동참했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그 자체로도 논란의 대상이지만 이에 대한 여야의 대응 또한 기름을 붓는 형국이 됐다.
민주당 공식 SNS페이지에는 나 원내대표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에 '#도핑검사시급' 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렸다. 마치 나 원내대표를 향해 '약에 취해 그런 발언을 했느냐'는 의미를 내포한 위험 수위의 내용이라는 비판이다.
한국당도 못지 않았다. 이 대표의 비판에 한국당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원고라도 읽어보고 하는 말인지 의심스럽다"며 "난독증이냐"고 막말로 맞섰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수석대변이냐고 한 것도, 민주당이 제1 야당 원내대표의 연설을 저지하는 것도 모두 금도를 넘은 것"이라며 "정권에 대한 비판도, 연설에 대한 항의도 할 수는 있지만 금도는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