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거된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부모 살해 용의자. (사진=연합뉴스)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33·수감중) 씨 부모 피살사건의 주범격 피의자가 경찰에 붙잡혔지만, 아직 범행 동기 및 그 실행 방법 등에 대해 납득이 가지 않는 구석이 많다.
이번 사건은 현재 유일하게 붙잡힌 피의자의 진술대로라면 인터넷을 통해 중국 동포(속칭 조선족) 3명을 고용해 대낮에 피해자 자택에 침입한 데다, 범행 후에는 시신을 냉장고에 넣어 이삿짐센터를 통해 밖으로 빼내 옮기는 등 통상적인 살인 사건과는 범행의 패턴과 결이 완전히 달라서다.
경찰에 검거된 이 사건 피의자 김 모(34) 씨는 중국 동포인 공범 3명과 함께 지난달 25~26일께 안양시 소재 이 씨의 부모 자택에서 두 사람을 살해했다.
김 씨는 경찰에 붙잡혔지만, 공범들은 사건 당일 중국 칭다오로 출국한 사실이 확인됐다. 인터폴을 통해 적색수배를 요청한다지만, 검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로써 김 씨의 범행이 일단 '계획범죄'로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경찰 발표를 통해 재구성한 사건의 전개는 매우 독특하다. 대담 혹은 허술한 이번 범죄의 의문점들을 짚어봤다.
◇ 인터넷에서 '히트맨'(살인청부업자)을 구했다?김 씨는 범행에 앞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경호 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채용하듯 A(33) 씨 등 중국 동포인 공범 3명을 고용했다고 한다.
겉으론 경호원 목적이라고 했지만, 공범들이 사건 당일 중국으로 줄행랑을 친 것으로 봐서는 공범들도 살인사건에 동원된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단순 경호 목적이었다면 항공편 예약 등 중국 출국까지 '거창한'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공범자들이 동의했다면 경호 목적으로 제시했을 때 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보장했어야 범행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어느 정도의 돈을 주겠다고 했는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공범 중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에 정착한 이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화에서처럼 옌볜 지역의 중국 동포가 살인 청부를 받아 국내에 잠입, 범행을 저지르고 바람처럼 출국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나 반대로 국내에 뿌리내린 중국 동포들이 왜 다시는 한국에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선택을 했는지는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 집안에 있던 5억원은 어디로 갔나? 피의자 김씨는 범행과정에서 집안에 있던 현금 5억원을 들고 달아났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 돈이 회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5억원 가운데 상당액은 범죄에 가담한 중국 동포 3인에게 대가성으로 지급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들이 부피가 제법 될 거액을 챙겨서 중국행 비행기에 탑승했을 가능성은 공항검색 문제 등을 고려해 볼 때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김씨가 이튿날 공범들의 계좌로 송금을 해줬든가, 아니면 지인들에게 부탁해 특정 장소에 은밀하게 보관해 뒀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 CCTV 개의치 않고 4명이 몰려다녔다? 이들은 지난달 25일 오후 3시 50분께 범행 장소인 아파트로 들어갔다. 10여 분 뒤에는 피해자 부부가 들어갔고, 그 후 불상사가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CCTV로는 아파트 입구 쪽만 확인 가능해 김 씨를 비롯한 이들이 어떻게 집 내부까지 침입했는지는 아직 말끔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4명이나 되는 피의자가 아파트 CCTV 등 여러 감시의 눈에도 불구, 대낮에 한꺼번에 아파트에 침입해 끔찍한 살해를 저질렀다는 점은 상식적이지 않다.
공범의 규모를 비교적 숫자가 많은 4명으로 정한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일사불란한 살해 행위 실행과 도주의 번거로움, 사건 후 공범 일부의 배반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2명 정도로 충분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범죄현장 이탈 않고 장시간 청소? 이들은 이 씨 부모를 살해한 뒤 이 씨 아버지(62) 시신을 냉장고에, 어머니(58) 시신을 장롱에 각각 유기하고 집 안을 깨끗이 치운 것으로 전해졌다.
공범 3명은 당일 초저녁 아파트를 빠져나가 늦은 밤에 인천공항을 통해 중국 칭다오로 출국했다. 김 씨는 이튿날인 26일 오전에야 홀로 아파트를 나섰다.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김 씨가 안양의 아파트를 나오기 직전 이삿짐센터를 불러 이 씨 아버지의 시신이 든 냉장고를 밖으로 빼내 50㎞는 족히 떨어져 있는 평택의 창고로 옮겼다는 점이다.
평택 창고는 김 씨가 사건을 벌이기 전에 일부러 임차까지 한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비교적 넓은 시신 보관 공간을 돈까지 주고 마련했다면 왜 부부의 시신을 모두 옮겨서 보관하지 않고, 남편 시신만 옮겨 결국에는 범행이 발각되는 빌미를 스스로 남겼는지도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범인들이 범행 과정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 현장에 머물렀다는 점, 범죄 낌새를 알아차릴지도 모를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불렀다는 점 등은 범행 후 신속히 현장을 이탈하고 목격자를 최대한 피하려는 일반적인 범죄자와 비교할 때 큰 차이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김 씨가 중국 동포인 공범 3명이 현장을 이탈한 후 뒷수습을 위해 자신의 친구 2명을 불러 현장에 들어갔다고 진술한 점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이 사건의 공범 숫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 2천만원 채무 때문에 범행했다?무엇보다 검거된 김 씨의 진술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김 씨는 "이 씨 부모와 돈 문제로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 씨의 아버지가 투자 목적으로 자신의 돈 2천만원을 빌려다 썼으나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 채권·채무 관계가 범행 동기인 양 진술한 셈이다.
그러나 고작 2천만원 때문에 3명을 고용, 살해를 저질렀다고는 선뜻 믿기 어렵다.
성공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그리 크지 않지만, 실패했을 경우를 가정하면 짊어져야 할 죗값이 비대칭적으로 큰 탓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김 씨가 범행 과정에서 집 안에 있던 5억원을 가져갔다고 진술한 것이 동기에 가까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정도 현금을 집 안에 보관하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이 돈은 이 씨의 동생(31)이 차량을 판 대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애초부터 어떤 방법으로든 집 안에 현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김 씨가 공범 3명을 꾀어 범행에 나섰으리란 추측도 무리는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 이희진씨 투자 피해자의 '보복 범죄' 가능성은? 김 씨의 진술과는 완전히 별개로 이번 사건이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 씨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김 씨를 비롯해 사건 피의자가 여러 명인 점은 자연스레 과거 이 씨의 불법 주식거래 및 투자유치 범죄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사건의 피해자가 여럿인 데다 피해 금액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동생과 함께 인가를 받지 않고 투자매매회사를 세워 2014년부터 2년간 1천700억원 상당의 주식을 매매하고 시세차익 130억원을 남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4월 1심에서 징역 5년과 벌금 200억원, 추징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또 원금과 투자수익을 보장해주겠다며 여러 투자자로부터 240억원 상당을 끌어모으거나 증권방송 등에 출연해서는 허위 정보를 제공하며 292억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을 판매한 혐의도 받았다.
경찰은 단순 채무 관계로 인한 범죄, 고액 현금을 노린 강도살인, 그리고 '청담동 주식 부자' 이 씨와의 관련성까지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피의자 조사 중이어서 자세한 내용은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