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 4년 8개월 동안 자리를 지켰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미수습자 분향소가 철거되고 있다. 분향소 자리에는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조성돼 다음달 12일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4년 8개월 동안 서울 광화문광장 한 켠을 지켜온 세월호 천막 14개 동이 18일 모두 철거됐다. 천막이 걷힌 자리에는 80㎡ 규모의 '기억·안전 전시공간'(이하 기억공간)이 들어선다. 참사 5주기를 앞둔 다음달 12일 공개한다.
기억공간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다짐하는 상징적 공간이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가 예산 2억원을 투입한다.
다만 2020년 1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앞두고 있어서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12월 이후 기억공간 상설화나 장소 이전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기억공간의 한시적 운영을 두고 '세월호 참사가 잊힐까 두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일각에서는 '혈세 낭비'라는 반대 목소리도 있다.
전문가들은 격동의 현대사를 통과해온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이하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와 '슈톨퍼슈타이네 프로젝트'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고 말한다.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는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든 2711개의 추모비와 홀로코스트 관련 자료가 전시된 정보관으로 구성됐다.
1988년 '베를린에도 대량학살 범죄에 대한 경고비를 설치하자'는 언론인 레아 로스의 제안이 발단이 됐다. 이후 정부가 시민사회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전 세계 저명 건축가를 대상으로 공모전을 진행하는 과정을 거쳤다. 추모비 첫 제안부터 완성까지(2004년) 16년이 걸렸다.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는 베를린 심장부인 브란덴부르크 문 근처에 자리해 있다. 이 곳은 홀로코스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접근성이 좋아서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매년 5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이 곳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독일의 지난 과오를 떠올리고 반성한다.
백종옥 작가('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저자)는 18일 CBS노컷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세월호는 대참사다. 항구적인 추모공간이 필요하다. 세월호 추모공간은 역사적인 현장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많은 사람이 쉽게 접근하고 머물 수 있는 곳에 설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 건립은 시민들의 제안으로 시작됐고, 설치 장소도 여론을 반영해 결정했다. 세월호 추모공간도 충분한 토론을 통해 시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며 "완성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예술성과 완성도를 고려해 차근차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천막이 철거되면서 참사 희생자 289명의 영정은 현재 영정사진을 보관 중인 서울시청 지하서고로 옮겨졌다.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추모하는 방식은 슈톨퍼슈타이네(걸림돌·장애물) 프로젝트가 좋은 선례다.
작가 군터 뎀니히는 나치정권에서 추방·살해된 유대인·집시·장애인 등을 추모하기 위해 길바닥 추모석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 과정은 기부금을 모아 진행한다.
가로·세로·높이 10센티미터 크기의 콘크리트 돌에 황동판을 부착하고, 황동판에 희생자 개개인의 이름과 태어난 해, 추방된 해 등을 새겼다. 추모석은 희생자들의 마지막 거주지 앞 보도에 설치했다. 나치에 희생된 개인의 역사를 복원하고, 시민들이 일상에서 희생자를 기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2018년 10월) 베를린에는 7662개의 추모석이 있다.
백종옥 작가는 "단순히 추모탑·추모비를 세우는 것으로 끝낼 게 아니라 개별 인물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조형물을 만드는 게 좋다"며 "세월호 추모공간이 슬프고 엄숙한 공간만은 아니길 바란다. 많은 이들이 찾고 기억하게 하려면 아픈 역사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