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가습기 메이트' 사용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계약을 맺은 사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SK케미칼은 애경산업과 2001년 5월 가습기 살균제 물품 공급계약을 맺은 데 이어 이듬해 10월 제조물책임(PL·Product Liability)과 관련한 추가 계약을 체결한다.
가습기 메이트 라벨에는 '애경'이 붙어있지만 정작 애경산업은 판매만을 맡았고 원료물질인 CMIT·MIT 생산과 제품 제조 모두 SK케미칼이 맡았다. 가습기 메이트는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낸 제품이다.
두 회사의 제조물 책임계약을 보면 "SK케미칼이 제공한 상품 원액의 결함으로 제3자의 생명, 신체, 재산에 손해를 준 사고가 발생하면, SK케미칼이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며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한다"고 명시돼 있다.
계약서대로라면 가습기 메이트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SK가 모두 져야 한다. 애경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해 배상책임을 지게 되더라도 SK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게 애경 측 설명이다.
이마트가 PB(자체브랜드)상품으로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역시 가습기 메이트와 똑같은 제품이다. 이마트가 애경에서 제품을 받아 라벨만 바꿔 판매했다.
이번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SK·애경·이마트 등의 형사상 책임이 확인될 경우 뒤따르는 민사소송에서 SK케미칼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가 되는 셈이다.
애경과 SK가 받고 있는 과실치사상 혐의와 관련해 검찰은 공소시효가 아직 남은 피해자 중 사망자가 12명, 폐질환자가 43명, 천식 피해자는 41명이라고 밝혔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제조물 책임계약을 놓고 일각에선 SK케미칼이 자신들이 제조해 애경산업에 넘긴 '가습기 메이트'의 안전성을 확신하지 못했기에 이 같은 계약을 맺은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계약서엔 애경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제기된 경우 SK가 이를 방어하되, 이때 애경은 SK에 최대한 협조한다는 내용도 있다.
검찰도 SK와 애경 사이 제조물 책임계약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가 주고받은 안전성·책임 문제 관련 문건을 은폐하지 않았는지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 측은 2002년 7월 제조물책임법이 시행되면서 계약을 맺은 것이며, 통상적인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당시 법에서 제조물책임법상 제조업자는 '제조물에 성명·상호·상표 기타 식별 가능한 기호 등을 사용해 제조업자로 오인시킬 수 있는 표시를 한 자'도 포함되기 때문에 애경에도 책임을 지울 수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일반적 계약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 관련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유통사에 제대로 제공했는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MSDS란 제품에 쓰인 화학물질의 명칭과 함유량, 유해성, 취급 주의사항 등을 설명한 자료다.
2016년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청문회 당시 애경은 SK로부터 제품을 받아 판매하기 시작할 무렵인 2002년 MSDS를 받지 못했고, 그 이후에야 받았다고 주장했으며 SK는 2002년부터 MSDS를 건넸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제조물책임법상 SK케미칼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하더라도 애경 역시 제품 안전성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고 판매한 데 대한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