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포항 주민들이 결과발표에 환호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2017년 11월의 포항지진이 인근 지열발전소에 의해 촉발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큰 인적·물적 피해를 낸 포항지진이 사전 준비 없이 조급하게 추진된 사업으로 빚어진 인재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사업을 추진한 정부에 대한 책임론도 급부상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포항 지열발전소는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MW(메가와트)급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이라는 이름의 국책사업으로 추진됐다.
㈜넥스지오가 사업 주관기관으로 포스코, 이노지오테크놀로지, 지질자원연구원, 건설기술연구원, 서울대 등이 연구에 참여했다. 정부 연구개발 사업을 관리하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사업 진행 상황을 보고받는 전담기관이다.
이 사업은 정부와 민간이 총 473억원(정부 195억원, 민간 278억원)을 투자해 2015년까지 포항에 지열발전소를 건설·실험하는 것으로, 2012년 9월 25일 포항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서 기공식을 했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지진 당시 지열발전소는 90% 완공된 상태로 상업운전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그전부터 주기적으로 땅에 물을 주입하고 빼내는 작업을 반복해왔다.
지열발전소는 지하 4km 내외까지 물을 내려보내 지열로 만들어진 수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이를 위해 땅속 깊이 들어가는 파이프라인을 깔아야 하는데 라인을 설치할 구멍을 뚫는 과정에서 물을 주입하고 빼는 작업을 반복했고, 이런 작업이 단층을 자극해 지진을 촉발했다는 게 조사단의 판단이다.
지열발전소는 사업 착수 당시부터 논란이 됐다. 지열발전소는 일반적으로 화산 근처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포항은 그 같은 지역과 관계가 멀어 발전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화산지대 국가에서는 땅을 수백m나 1㎞ 정도만 뚫어도 높은 발전온도를 얻을 수 있지만, 포항은 그렇지 않아 지하 4㎞ 이상 땅을 뚫어야 해 발전 효율은 떨어지고 위험은 커진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특히 포항은 경주, 경남 양산, 부산 등지와 연결된 활성단층 지역이고, 지반이 약한 퇴적 지역이라 지진 발생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따라서 포항지진은 사전 지질조사로 활성단층을 확인해 적합한 부지를 선정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간 정부가 지열발전소의 위험을 은폐해왔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포항지열발전소가 물 주입을 시작한 때는 2016년 1월 말인데, 이후 발전소 주변에 63회의 미소지진이 발생했다는 점, 그 중 10회는 비교적 규모가 큰 2.0 규모의 지진이었다는 점은 포항 지진 발생 후에야 알려졌다.
실제 20일 연구단의 최종 발표 자리에서도 이 같은 의문이 나왔다. 한 포항 시민은 "2017년 4월 15일에 규모 3.2의 지진이 있었는데도 같은 해 8월 지열발전이 재개됐다"며 "불과 1년 전 스위스 바젤에서 규모 3.4의 지진이 지열발전소로 인해 발생하자 스위스는 발전을 중단했는데, 포항은 왜 공사를 재개했는지 밝혀 달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조사연구단의 연구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피해를 입은 포항시민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정부와 참여기관의 책임 여부와 사업이 적절하게 추진됐는지에 대해서는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조사와 관련,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사업 진행 과정에서 절차적으로 혹은 부지선정 단계에서 적절하게 추진했는지 엄정하게 조사하겠다."며 "연구 컨소시엄에 다양한 기관과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어 각 기관의 역할과 책임을 충분히 조사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국립대 지질학 교수는 "정부는 사업을 시행할 때 너무 적은 예산으로 빠른 결과를 원한다. 지열발전은 한국에서 처음 하는 것이라 경험도 없고 촉발지진에 대한 경각심도 적었던 것 같다"면서 "신재생에너지는 미래 세대를 위해 중요한 사업인데 이런 결과가 나와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