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우상' 구명회 역을 맡은 배우 한석규를 만났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우상' 개봉을 12일 앞둔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한석규를 만났다. '우상'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구명회(한석규 분)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좇는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분), 사건 당일의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 련화(천우희 분)가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한석규는 '우상'에서 구명회 역을 맡아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한껏 비겁해지는 인간상을 보여줬다. '우상'의 제작진과 배우들을 농사꾼으로 비유한 그는, 정성들여 농사를 지었지만 이제 완성돼 손을 떠났다고 밝혔다. 관객들의 판단만이 남았단 뜻이다.
아래는 한석규가 들려준 이야기를 키워드별로 정리한 것이다. 이번 2편에서는 8가지 중 나머지 5가지를 담았다.
◇ '우상'의 동료들"눈썹도 깎고 (웃음) 6개월 동안 그러고 다닌… 아이고, 참 머리는 이렇게~ 누렇게 물들여가지고~ 근데 우희는 그거를 도전했고 현장에서 아주 뭐, 배려심도 좋고 장점이 아주 많은 아입니다. 뭐 후배라고 해도 한 백 년 후에 보면 동시대 배우예요. 우희나, 나나. 2000년대에 활동했던 배우들, 천우희 한석규 설경구. 그렇잖아요? (일동 웃음) 천우희는 한국영화에서 아주 괜찮은 여배우입니다. 탄생했다고 하면 이상하고, 완성됐달까? 대한민국에서 여자 연기자는… 하, 힘듭니다. (한숨) 네, 힘들어요. 여자 연기자로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거, 힘들어요. 그 점을 더 설명하기엔 그렇고… 아시잖아요? (일동 웃음) (…) 설경구와 천우희는 동료로 지켜봤을 때 왜 연기하는지 의도를 알겠어요. 연기자로서 존중해요. 그런 연기자들과 같이 공연해서 참 좋았어요. (웃음)"
◇ 우상"'우상'은 완성돼 이제 우리 손을 떠났어요. 연출자뿐 아니라 연기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저는 농사꾼이라고 표현하는데 정성을 다해서 농사를 지어도 수확은 우리 몫이 아니예요. 과연 얼마나 정성을 들였느냐 이 문제죠."
한석규는 '우상'에서 설경구, 천우희와 함께 연기했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 연기"생각해 보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 거야. 연륜이 생기고 경력이 생긴다고 해서 완성도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에요. 처음 것을 잃어버리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 했던 걸 마치 미완성적이고 치기 어린 거라고 보지만, 그게 아니란 생각도 많이 들어요. (…) 원래 가진 걸 퇴화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연기구나. 난 다 갖고 태어났구나. 난 모든 본능을, 할 수 있는 재료를 다 갖고 태어났는데 이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퇴화되는구나. 그걸 조심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요."
"연기는 액션-리액션이거든요. 제가 아까 반응한다고 했잖아요. 연기는 반응할 뿐이에요. 어떻게 하면 생생하게 반응하느냐. 그래서 반응할 소스를 던져주는 사람이 저한테 너무 중요해요."
◇ '반응'해 준 동료들"(최)민식이 형님이랑 다음 작품 '천문'을 했잖아요. 좋더라고요. 하하하. (일동 웃음) 저랑 인연이 오래된 사람이잖아요. 35년. 존중을 넘어서 서로 존경한다고 생각해요. 같은 직업인으로서 어떤 마음으로 연기하는지 알고, 제가 존경하는 동료 연기자 겸 선배입니다. 그런 사람이랑 오랜만에 같이 연기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제 별 얘기에도 그냥 웃고 떠들어요. (웃음) 민식이 형은 나한테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이기 때문에. (…) 성향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재밌더라고요. 이제 알겠어요. 아~ 완전히 (나와는)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이구나. 같은 액션이 들어와도 완전히 반응이 다른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두 사람이 같이 연기하니까 아주 재밌죠. 저한테 난데없는 액션이 와도 저는 거기에 집중해서 반응만 하면 되니까 연기하는 게 참 재미나고. '이층의 악당' (김)혜수랑 할 때도 그랬어요. 혜수한테 고마운 게 그쯤(영화 찍을 때)에 제가 많이 지쳐 있었거든요. 근데 '아, 참 좋구나' 그런 걸 느꼈어요. 그래서 혜수한텐 참 고맙죠. 그걸 느끼게 해 준 동료, 파트너 연기자니까요. 아, (연기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준 제 동료였어요."
◇ 위대함"나는 비겁한 인물을 해 보고 싶었어요. 죽는 한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으려고 하는. 지금은 기회가 된다면 외려 반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죽고 싶어 하는데 영원히 사는 인물을 한번 해 보고 싶어요. 용감하게 죽으려고 하는 사람. 제가 볼 때 그런 분이 있어요. 저는 기회가 되면 그걸 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하고 기다려야겠어요. 용감하게 죽으려고 달려들었는데 영원히 살게 됐구나! 그 사람은 왜 그런 리액션을 했을까? 왜 죽으려 했을까? 그걸 혼자 생각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왜 그 사람이 그렇게 반응했는지. 구명회는 인간의 위대함은커녕 가장 인간의 치졸함이라고 해야 하나, 욕이 나오는 경우죠. (일동 웃음) 인간의 가장 찌질하고 더러운 걸 한 번 보여주고 싶었고, 해 봤으니 기회가 된다면 반대로 인간의 가장 위대함을 표현해 보고 싶어요." <끝>
한석규는 비겁하고 치졸하게 구는 구명회 역을 연기했으니, 앞으로는 완전히 반대되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