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연합뉴스)
정부가 주도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인수합병이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벨기에, 세르비아, 독일 등 유럽 3개국을 돌며 각종 국제경쟁회의에 참석하고 각국 경쟁당국 수장과의 협의를 진행했다.
공정위는 이번 출장의 목적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경쟁당국 수장들과 경쟁법 전문가들의 견해와 입장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출장에서 김 위원장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미션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과 관련한 EU 경쟁당국의 입장을 알아보고 설득하기 위한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양사가 합병할 경우 세계 시장 점유율은 21%, 특히 고부가가치 창출 분야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경우 시장 점유율이 63%에 달해 30여개에 달하는 각국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특히 한국과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업 소비자라 할 수 있는 주요 선주들이 포진한 EU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56%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이번 합병의 선봉에 서있다.
여기다 정부 입장에서는 조선업이 장기간의 시장 침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빅2 조선사의 인수합병을 통한 경쟁력 제고 등 시너지를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쟁당국 수장으로서 기업결합에 대해 엄격하게 심사해야할 김 위원장이 해외에 나가서까지 양사의 합병을 '로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지난 11일(현지 시간) 벨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국가 경쟁당국이 참고할 수준의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말 EU집행위원회가 독일 지멘스-프랑스 알스톰의 인수합병 승인을 거부한 것과 관련해서는 "합병 성격이 다소 다르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그리고 김 위원장의 바람과 달리 각국 경쟁당국은 벌써부터 양사의 인수합병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는 안드레아스 문트 독일 연방카르텔청장(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드레아스 문트(Andreas Mundt) 독일 연방카르텔청장은 지난 15일(현지시간) 한국 취재진과 만나 "그런 유형(양사의 인수합병)의 인수합병은 불황을 탈피하기 위한 구조조정형 인수합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수합병이 도산을 막을 수 있는지도 검토하겠지만 그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정하고 있는데, 우선 기준은 경쟁 제한성 여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장경제 관점에서 보면 인수합병이 기업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진정한 해결책은 아니다"라며 "이런 측면에서 인수합병을 통해 침체 상황에서 회생하려는 것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경쟁총국 고위 관계자도 지난 11일(현지시간) 한국 취재진을 만나 "위원회가 합병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과 소비자에 대한 영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독점 금지법은 경쟁자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경쟁 보호를 위해 제정됐다"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에게 가는 타격"이라고 밝혔다.
원론적인 답변이긴 하지만 양사의 인수합병이 경쟁을 제한하고 이로인해 소비자, 즉 EU 선주들의 이익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인수합병 당사자인 현대중공업은 물론 공정위도 이번 인수합병이 경쟁을 피해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이로 인한 소비자의 편익도 침해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에 대해 납득할 만한 결론을 내놔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법률 등 이 분야 관련 전문가들과 충분히 협의해 가며 철저하게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