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연루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청와대는 26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런 가운데 법원이 밝힌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기각 사유에 '공공기관의 방만한 운영', '정상화를 위한 인사수요 파악',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 등이 기재된 것이 눈에 띈다.
청와대는 그동안 검찰의 '블랙리스트' 수사에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드러내며 국정철학을 같이 할 인사들을 위한 '체크리스트' 작성에 불과하다고 항변해왔기 때문이다.
◇ 여권 관계자 "김현민 업무추진비 유용, 김정주 연구개발 관리 부실"앞서 검찰은 김 전 장관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김현민 전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에게 사직서를 내라고 요구하고 후임 감사를 특혜채용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를 적용했다.
김 전 장관의 혐의에는 김정주 전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기술본부장에 대한 사임 압력도 포함됐다.
여권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2017년 후반에 환경부가 권익위원회로부터 업무추진비 관련 오남용 사례가 있다는 권고를 받았다"며 "이에 김 전 장관이 환경부는 물론 산하 기관에 대한 업무추진비 감사를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김현민 감사가 업무추진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했던 게 많이 드러나 결국 본인이 오남용을 인정하고 개인돈으로 변제하고 사표를 냈다"고 말했다.
또 "김현민 감사는 감사 역할을 진행하며 여러가지 비리 관련 제보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업무추진비건이 심각하니까 사표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밝힌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에 대한 추가 설명인 셈이다.
여권 관계자는 "환경산업기술원은 수 천억원 규모의 환경부 전체 연구개발(R&D) 관련 과제를 관리하는 곳인데 국회에서조차 관리가 엉망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며 "점검 과정에서 총괄적으로 책임을 지는 김정주 기술본부장한테 일을 맡길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5년에서 10년 장기 과제의 경우 중간평가에서 성과가 최소한 40~50%라도 나와야 했지만 10~15%밖에 되지 않았고, 과제 선정 과정에 심사위원들의 짬짬이로 몰아주기도 적지 않았다"며 "정권이 바뀐 뒤 새 장관이 취임해 R&D과제에서 문제가 생기면 결국 본인이 책임져야 하고 (김정주 본부장의) 임기도 정상적으로 끝났기 때문에 교체를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주 전 기술본부장은 지난해 12월31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에서 "저는 환경부 블랙리스트의 가장 큰 피해자다. 2017년 8월 30일 환경부 기술원 노조 그리고 환노위 여당 의원의 집요하고 지속적인 괴롭힘과 인격모독,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정든 직장을 떠날수 밖에 없었다"는 본인 육성이 공개돼 큰 파장을 낳았다.
당시 자유한국당 이만희 의원은 "(조국) 수석이 한 번도 그만두라고 한 적 없고 임기 존중했다고 했지만 그만둔 사람의 말을 들어보자"며 김 전 본부장의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하지만 김 전 본부장이 본인 주장과 달리 임기 3년을 모두 채웠고 퇴임식까지 한 것으로 밝혀진 데다, 20대 총선에서 당시 새누리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23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자작극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여권 관계자는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가 이런 소명에 대한 정리를 통해 판단한 것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연루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공공기관 정상화 위한 '체크리스트'라는 靑 주장 일부 받아들여져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앞으로 장관의 인사권과 감찰권이 어디까지 적법하게 행사될 수 있는지, 법원이 그 기준을 정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박 부장판사는 구속영장 기각 사유서에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하여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되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새로 조직된 정부가 해당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 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의사를 확인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는 사정, 해당 임원에 대한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이 드러나기도 한 사정에 비춰 다툼의 여지가 있어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요약하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방만하게 운영되거나 기강해이가 발견된 공공기관에 책임을 묻고, 실제로 일부 비위사실도 확인된 만큼 공공기관 정상화를 위한 적법한 국정운영 차원에서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통상 법원의 불구속사유서에는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 등 최소한의 방어권이 적시되지만, 이번에는 중요 사건이라는 측면에서 개별 혐의에 대한 다툼의 여지도 소상히 실렸다.
특히 불구속사유서에 기재된 내용 자체가 향후 본판결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청와대는 내심 반색하면서도 불필요한 논란을 의식해 차분히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블랙리스트'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검찰의 핵심 참고인 수사를 받았던 김현민 전 상임감사와 김정주 전 기술본부장에 대한 본인 과실이 일부 드러나고, 법원도 이례적으로 상세하게 '공공기관 방만 운영',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 등을 불구속사유서에 기재하면서 향후 검찰 수사도 일부 동력을 상실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