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폭파사건 당시 기체 잔해 모습
31일 공개된 1987~88년 외교문서에는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범인 김현희를 국내로 데려오기 위한 외교 교섭 과정이 담겼다.
당시 김현희는 일본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있어 정부는 김현희가 일본으로 이송될 것을 우려했다. 대선 전까지 김현희를 데려오기 전까지 노력한 정황도 확인됐다.
또 당시 바레인 측이 신병 인도에 대한 결정을 미루자, 우리 측 당국자가 미국이 바레인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 日과 김현희 이송관할권 두고 신경전 벌여당시 주일대사가 외교부에 보낸 당시 전문에 따르면, 주일대사관의 박련 공사는 도쿄에서 후지타 일본 외무성 아주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아국(한국)은 사고비행기의 소속국으로서 신병인도에 중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후지타 국장은 "(김현희 등이) 일본의 위조여권을 갖고 있음에 비춰 (용의자) 2명의 국적 등 신원확인 문제를 일본이 우선 책임을 가지고 신속히 해결해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행여 한일관계에도 불똥이 튈 수도 있다고 여겼는지 "사태가 어떻게 진전되더라도 한일 양국의 우호협력관계에 어떠한 손상도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상호 긴밀히 연락, 협조해 나가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다음날 도쿄신문에 외무성 관리의 말을 인용해 김현희의 신병 인도와 관련 1차적으로 일본 정부에 청구권리가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자, 박련 공사는 전문을 통해 한일 간 신병인도 문제를 두고 경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후 논의에서 일본은 사실상 한국의 관할권 행사 근거가 일본의 근거보다 더 강하다며 한국의 우선권을 사실상 인정했다.
◇ 김현희 사건, 대선 활용 의도 있었다당시 특사로 바레인에 파견된 박수길 외교부 차관보와 바레인 측 논의 내용을 담은 1987년 12월 10일 전문을 보면 정부가 KAL858기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정황이 드러난다.
박 차관보는 바레인 측 실무자가 "KAL기 잔해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현희) 인도가 성급하다는 이야기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늦어도 15일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12일까지는 바레인 측으로부터 인도 통보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했다.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늦어도 15일까지 도착'이라는 표현은 다분히 대선(12월 16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이 '김현희 인도 지연'에 개입했을 수 있다고 박 차관보가 의심하는 내용도 전문에 담겨있다.
그는 바레인 내무장관이 '한국이 대통령 선거로 인해 극히 바쁜 중에 방문해 조속히 귀국하여야 할 것으로 이해한다'고 선거를 의식한 발언을 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마유미의 인도가 선거 이후로 되도록 미국이 바레인 측에 작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니 마유미 인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에 너무 소상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보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