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옥계면 도직리 마을로 향하고 있는 산불. (사진=독자 제공)
"만약에 이장님이 없었더라면...우리는 이장님 덕분에 살았죠"
7일 오후 강원 옥계면 도직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생명의 은인으로 마을 이장을 꼽았다.
마을 주민 정인교(73)씨는 "5일 새벽 아내랑 둘 모두 잠들어 있었는데, 이장님이 문을 두드리며 '불이 났으니 빨리 대피하라'고 깨웠다"며 "이후 이장님은 바로 다른 집으로 뛰어 가시더라"고 다급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다른 마을주민 김정란(62.여)씨는 "동네에 어르신들이 많이 있는데 이장님 아니었으면 정말 대참사로 이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화재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김영석 이장. (사진=전영래 기자)
도직리 마을 주민들이 고마움을 표하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김영석(56) 이장. 14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김 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을 아꼈다.
당시 상황을 묻자 그는 "마지 전쟁터 같았다"며 집에서 화재 소식을 듣자마자 마을 초입에 있는 마을회관으로 달려가 대피 방송부터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거센 바람 때문에 소리가 마을 위쪽까지 전달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에 다급해진 그는 무작정 뛰어 올라가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김 이장이 깨워서 대피한 주민 8명 중 6명은 집을 잃었다. 김 이장이 아니었다면 끔찍한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주민 김진남(68.여)씨는 "정말 이장님 덕분에 살았다"며 생명의 은인이라 불렀다.
김 이장은 일직선으로 약 1km에 달하는 마을 전체를 수차례 오가며 미처 대피 못한 마을 주민은 없는지 확인했다. 매캐한 연기가 마을을 뒤덮고 불씨가 날아다녔지만 주저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릉 옥계 산불 현장에서 마을 주민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왼손에 부상을 당한 김영석 이장. (사진=전영래 기자)
난리 통에 불붙은 나무를 옮기다 왼쪽 손가락 3개에 2도 화상까지 입었다. 이장 집도 화장실 일부가 소실됐다. 집 걱정은 안됐냐고 묻자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며 "폭삭 주저앉은 집들도 있는데, 이 정도 피해는 양호한 편이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김 이장은 여전히 바빠 보였다. 인터뷰 도중에도 '지금 물탱크를 쓸 수 있느냐', 발전기가 불에 탔다'는 마을 주민들의 민원을 접수하고 있었다.
도직리 마을은 옥계항 인근에 4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처음 화재가 발생한 남양리와는 약 10km 떨어져 있다.
지난 4일 밤 오후 11시 46분에 남양리에서 난 불이 도직리까지 오기까지는 불과 1시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번 산불로 도직리 마을에서만 12가구가 완전히 불에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