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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묻는다, '역사의 빛 청년'을 잘 키우고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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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 묻는다, '역사의 빛 청년'을 잘 키우고 있냐고

    [인터뷰] EBS '다큐프라임-역사의 빛 청년' 허성호·이승주 PD

    이승주 PD와 허성호 PD (사진=EBS 제공)

     

    참혹한 시절을 견디며 나라의 독립을 밝힌 그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그들. 그들의 중심에는 '청년'이 있다. 무모해 보일지도 모르는 청년들의 용기가 기성세대를 비롯한 사람들의 용기를 끌어냈다. 이 용기들이 우리에게 현재를 만들어줬다.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라는 울타리 속에서 차별과 불편부당함에 맞서야 하는 현재의 청년들에게 100년 전 청년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 같은 물음을 던진 EBS '다큐프라임-역사의 빛 청년'(이하 '역사의 빛 청년')의 허성호 PD와 이승주 PD를 지난 3월 14일 경기 고양시 EBS 사옥에서 만났다.

    ◇우리는 왜 역사를 알아야 할까

    '역사의 빛 청년'은 지난 3월 4일 시즌 1에 해당하는 3부작을 시작으로 4월 임시정부 100주년과 11월 광주학생운동 90주년에 맞춰 연말까지 총 10부작을 방송한다. 지난 3월 방송한 시즌 1(1~3부)에 이어 8일부터 시즌 2인 제4부 '무라이(村井)의 안경' 편과 제5부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려면' 편을 선보인다.

    '무라이(村井)의 안경' 편은 1932년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 당시 일제의 주상하이 총영사였던 무라이 쿠라마쓰 증손녀가 한국에서 윤봉길의 후손과 만나 화해의 악수를 나눈다. 한국을 방문한 그는 선조의 대례복과 안경 실물을 보며 상하이 의거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제5부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려면' 편은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조명하를 조명한다. 제작진은 독립운동가들이 잘 기억될, 혹은 잘 기억되지 못할 조건들을 추적하여 독립운동사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한국사회의 다양한 과제와 직접 맞닿아 있음을 증명한다.

    앞서 시즌 1에서도 '역사의 빛 청년'은 하와이 애국단, 영산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3.1운동의 모습, 청년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조명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독립운동과 독립 운동사를 배우고 기억해야 할까.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쏟아지는 역사물을 우리는 왜 봐야 하는 걸까. 우리는 역사에 어떻게 접근해 가야 하는 걸까.

    "저는 역사연구자도 아니고, 역사를 교과서를 통해 몇 년도에 뭐가 일어났고, 무슨 단체가 있었다는 식의 공부를 해왔죠. 그래서 저도 궁금했어요. 시청자들이 왜 역사를 알아야 할까, 왜 우리 다큐멘터리를 봐야 할까 의문을 가졌어요. 그런 제게 허성호 선배는 제게 교과서 같은 정보를 공부하는 것보다 역사를 통해서 현재의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어요. 지금 이 시대에도 사회 곳곳에 청년의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많아요. 독립운동은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라는 청년들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역사예요."(이승주 PD)

    EBS '다큐프라임-역사의 빛 청년' (사진=방송화면 캡처)

     

    ◇역사 속에서 찾은 '청년'의 의미

    '역사의 빛 청년' 시즌1은 모두 3.1 운동에 참여해 알려지거나 혹은 잊힌 젊은이들을 조명하고 있다. 제작진이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역사의 주요한 장면들에는 '청년'이 있었다. 허성호 PD는 지난 100년의 세월 곳곳에 위치한 '청년'에 주목하게 됐다.

    "독립운동, 4·19 혁명, 광주학생운동, 87년 6월 항쟁 등 역사의 큼직한 사건이 갖는 공통점을 추출하니 '청년'이 있었어요.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도, 의열단 단원들도 젊은이들이었죠. 독립운동 당시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분출됐던 거예요. 사회적으로 현재 청년들이 힘든 삶을 살고 있는데, 독립 운동사를 통해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가 과연 청년이 역사의 주역으로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지, 청년이 다시 역사의 전면으로 나오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고민한 끝에 '청년'을 키워드로 잡게 됐어요."(허성호 PD)

    100년 전 청년과 현재의 청년을 잇는 역할은 배우 이순재가 맡았다. 1934년생인 이순재는 '히로키(廣城)'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하며 12년간 일제강점기를 겪은 역사의 산증인이다. 이순재는 자신과 동시대를 살며 같은 경험을 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보다 깊게 끌어낸다. 또한 역사적 사료 등 정보성 화면으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 다큐멘터리에서 이순재는 내레이터로서 흥미를 돋우고 시청자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EBS '다큐프라임-역사의 빛 청년' (사진=방송화면 캡처)

     

    "섭외를 위해 이순재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드렸는데, 메일 확인 3분 만에 전화를 해서 하겠다고 하셨어요. 덕분에 진정성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었죠. 그리고 처음에는 기성세대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분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청년'이라는 호칭을 붙여도 이상할 게 없는 분이셨어요."(허성호 PD)

    100년 전 청년들은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이후 3월 1일 학생들이 서울 시내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탑골공원에 집결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학생들이,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 이후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붙잡혀 옥고를 치르고, 또 세상을 떠났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온갖 고문에 시달리면서도 유관순 열사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옥중에서조차 만세를 불렀다. 이승주 PD는 '무모함'이라 부를 수 있는 용기가 청년이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약간의 무모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그냥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찾자며 타협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타협을 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세대가 청년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하면서 청년이 나이만을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이승주 PD)

    허성호 PD (사진=EBS 제공)

     

    ◇기성세대에 묻다_청년들의 용기를 가로막고 있지는 않나요

    허성호 PD는 '역사의 빛 청년'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여섯 글자로 압축했다. 바로 '청년을 귀하게'이다.

    "'청년을 귀하게'라는 말 그대로 청년을 가치 있는 존재로 생각하자는 거예요. 청년은 우리가 못하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지금 그런 에너지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시대의 청년을, 옛날 독립운동가처럼 역사의 주인공으로 귀하게 여기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허성호 PD)

    '헬조선', '3포 세대(불안정한 일자리와 사회 복지 시스템의 부재 등으로 인해 연애·결혼·출산의 세 가지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청년 세대)', '5포 세대(취업난과 장기화한 경기 불황으로 연애·결혼·출산·내 집 마련·인간관계 등 5가지를 포기한 세대)' 등의 말도 옛말이다. 이제는 3가지, 5가지도 모자라 'N포 세대(주거·결혼·인간관계 등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포기한 청년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라는 말이 청년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닌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를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는 왜 더 힘을 내지 못하냐고, 이것도 참고 견디지 못하냐고, 더 열심히 하라고 채근한다. 편하게 살아온 청년들의 투정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청년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하면서도 그들의 용기를 가로막는 게 현실이다.

    허 PD는 "기성세대는 내신, 생활기록부, 면접, 취업 등 청년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청년을 자본과 사회적 구조에 종속시켜 놓고 이 안에서 한발작도 떼지 못하게 하고 있다"라며 "청년들의 다소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다시 나서서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식민지 기성세대에 비해 현재 기성세대는 청년을 잘 못 키우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허 PD는 "세대 갈등이 없었던 적이 없지만 지금은 꽤 심각한 상태로 가고 있다"라며 "기성세대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계속 생각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일제강점기처럼 나라를 빼앗긴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청년들은 그들이 존재해야 할 청년들의 나라를 잃어버렸다. 청년들이 사는 세계에는 이전과는 다른 불평등과 자본·성·지역·학력 등에 대한 차별, 부조리함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일상에서, 사회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불편부당함에 맞서 싸우고 있다. 내레이터 이순재의 말마따나 "일상의 사소한 용기도 중요해진 시대"이다.

    이승주 PD (사진=EBS 제공)

     

    "저도 항상 역사 속 독립운동가의 삶을 보며 '나는 저 나이 때 저렇게 못 할 텐데'라고 생각했어요. 나와는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번 '역사의 빛 청년'을 하면서 알게 됐어요. 꼭 폭탄을 던지는 게 아니라도, 나도 작은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걸 말이죠."(이승주 PD)

    일상의 '사소함'이라 불리는 부조리에 맞서는 용기가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목소리가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 씨를 찾아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끌어낸 날갯짓이 되었듯이 말이다. 이처럼 현재를 사는 청년들은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마다 자신들의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청년들은 용기 있는 행동을 하고자 하고, 그런 의지가 충분히 있어요. 청년들이 문제제기하는 것들이 시스템의 문제일 수 있는데, 이걸 기성세대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나 의문이 들어요. 청년들이 할 수 있는 걸 가로막지는 말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처럼 청년들이 커간다면 정말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이기주의, 개인주의를 조장하는 게 기성세대 아닌가 반문해 봐야 할 거 같아요. 그리고 청년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누구나 '내 인생의 독립운동가'가 될 수 있다고 말이에요."(이승주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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