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유럽연합)가 한국을 상대로 "무역분쟁으로 비화되지 않기를 원한다"며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조속히 행동을 취해달라고 촉구했다.
EU 집행위원회 세실리아 말스트롬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제8차 한-EU FTA(자유무역협정) 무역위원회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시한을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이 조속히 행동해야 할 상황"이라며 이처럼 말했다.
말스트롬 집행위원은 "제재를 부과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한국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으로서 신뢰 측면에서 비준하는 게 중요하다"며 "(ILO 핵심협약 비준을)조속히 이행되길 바라고, 국회와 경영계, 노조가 책임을 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이 ILO 핵심협약 비준을 미룰 경우 보복 조치를 할 가능성에 관해서는 "우리는 분쟁은 피하려고 하는 기본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여러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말스트롬 집행위원은 "분쟁을 통해 해결 한다면 두 가지 방식이 있다"며 "한가지는 WTO(세계무역기구)에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FTA 내에서 도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문가 패널을 소집해서 충고와 권고 사항을 제공받을 수 있고, 권고 사항은 각국에 구속력이 있게 된다"고 강조하고, "분쟁 해결 절차로 들어가면 해당 국가의 평판도 심한 손상을 입는다. 이것을 피하고자 그 전에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잠시 후에 국회를 방문해 얻은 정보로 판단할 것"이라며 "전 세계의 시민들과 소비자, 기업들이 책임감 있게 교역하고 사업하는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도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런 기대에 부합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EU 집행위원회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면담을 갖고 "한-EU FTA 상의 노동관련 의무인 핵심협약 비준이 수년간 지연되고 있다"며 "조속한 시일에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가시적 진전이 없을 경우 전문가 패널 개시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또 "경영계의 우려와는 달리 ILO 핵심협약 비준이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한국은 1991년 ILO 정식 회원국이 됐지만,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와 제98호 협약 등 핵심협약 4개는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EU는 한국이 2009년 FTA 체결 이후 ILO 협약 비준 의무조항을 어겼다며 분쟁 해결 절차에 돌입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대선공약과 국정과제로 삼았고, 이후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노사정 합의를 거쳐 국회 법 개정을 통해 협약을 비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경영계가 사업주의 '방어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과 사용자 부당노동행위 처벌 폐지 등 강도 높은 요구를 고수하고 있어 합의에 실패했다.
이미 지난달 18일 첫 단계인 정부간 협의절차가 마무리된 가운데 EU는 이날 무역위원회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놓지 않으면 다음 분쟁 해결 절차인 전문가패널에 회부하겠다고 경고해왔다.
만약 EU가 이미 경고한 대로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하면 3명의 전문가 패널이 구성돼 90일 이내에 양국의 분쟁사항을 검토한 뒤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 경우 한국이 '노동권 후진국'으로 국제적인 낙인이 찍힐 뿐 아니라 보고서 내용에 따라서는 EU의 다양한 보복 조치에 직면할 수 있다.
말스트롬 집행위원은 이날 국회 김학용 환경노동위원장을 면담하고 출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