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밝히 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재판관들이 입정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모든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현행 형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낙태죄 처벌조항인 형법 269조·270조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다만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만큼 현행 규정은 2020년 12월31일까지 유지 되고, 이 기한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낙태죄 규정은 2021년 1월부터 폐지된다.
헌재는 "임신·출산·육아는 여성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며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사회적·경제적·심리적 등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태아가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 임신 22주를 '결정가능시간'이라고 봤다.
헌재는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한 여성은 사회적·경제적 상황과 각종 정보를 파악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며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임신 22주정도까지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판단했다.
낙태죄의 처벌 예외 대상을 규정하고 있는 현행 모자보건법의 한계도 지적했다. 헌재는 "모든 낙태가 전면적으로 범죄행위로 규율돼 낙태에 관한 상담이나 교육이 불가능하고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될 수 없다"며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헤어진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또는 가사나 민사 분쟁의 압박수단 등으로도 악용된다고도 봤다.
이어 "낙태죄가 존재하지만 실제로 형사처벌되는 사례도 매우 드물고 낙태를 갈등하는 상황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실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헌재는 이러한 이유로 "현행 낙태죄 규정은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며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법익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중절수술을 시술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270조)에 대해서도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결정과 동시에 효력이 발생하는 '단순 위헌'을 주장한 재판관 3명의 의견도 있었다.
이은애 재판관은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는 건 임신 기간 전체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면서 "그런데 허용할 수 있는 예외적 사유를 법률로 규정하는 건 임신 여성의 자유의사를 부여하지 않고 박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이 더 중요하다는 낙태죄 '합헌' 의견을 냈다.
조 재판관은 "인간 생명은 고귀한 가치이며, 이 세상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면서 "인간 존엄성과 관련해 태아와 사람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또 "태아는 그 자체로 생명으로서 점차 성장하여 인간으로 완성될 수 있는 존재"라며 "국가는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라고 봤다.
그러면서 "실제 자기낙태죄가 사문화됐어도 위 조항으로 한명의 태아룰 보호할 수 있다면 자기낙태죄 존재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현행 규정은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형법 269조, 자기낙태죄),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부탁을 받아 낙태 시술을 했을 때 징역 2년 이하로 처벌한다(형법 270조, 의사낙태죄).
이 사건은 2013년 A씨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고 낙태 시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17년에 제기한 헌법소원이다.
낙태죄는 지난 1953년 형법에 규정된 이래 사실상 사문화됐다가, 지난 2012년 헌재에서 합헌과 위헌 의견이 4대4로 맞서 현행 처벌규정을 한 차례 유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