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박보나(故 박성호 군 누나), 배서영(4.16연대 사무처장)
벌써 다섯 번째 봄이 왔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오늘로 꼭 5년이 된 건데요. 그사이 참 많은 것들이 바뀌고 또 바뀌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광화문광장에 있던 세월호 천막이 유족들 의사에 따라서 4년 8개월 만에 철거되기도 했죠. 그리고 그 자리에는 '기억과 빛'이라는 간판을 내건 기억 전시 공간이 마련이 돼 있습니다. 광화문 가실 일 있는 분들은 한 번씩 들러보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난 1일부터는요. 특별한 사진전도 하나 열리고 있는데요. 제목이 <세월호 형제자매="" 사진전="" -="" 나와="" 우리의="" 시간=""> 이라는 전시회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형제자매들이 직접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는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오늘 그 전시회에 참여한 분 故 박성호 군의 누나 박보나 씨부터 연결을 한번 해 보죠. 박보나 씨, 안녕하세요.
◆ 박보나> 안녕하세요.
◇ 김현정> 2남 2녀 중에 보나 씨가 몇 째입니까?
◆ 박보나> 제가 첫째고요. 성호가 셋째였습니다.
◇ 김현정> 성호가 셋째. 어제부터 날이 참 좋아요. 완연한 봄이고 꽃이 피고 1년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데 매년 이맘때가 보나 씨에게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 박보나> 되게 신기하게 5년이 지났는데도 4월 16일 즈음이 다가오면, 2014년 4월 16일의 냄새나 느낌들이 다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로 좀 많이 아프고 힘든 봄인 것 같아요.
◇ 김현정> 그때의 냄새가 기억이 나요?
◆ 박보나> 네. 그 사건 소식을 들은 날부터 동생을 찾기까지의 그런 감각들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 김현정> 그 감각들이… 그러니까 머릿속에 시각적인 기억만 있는 게 아니라 오감이 다 살아난다는 말씀이죠. 다 그대로라는 말씀이세요.
◆ 박보나> 네.
◇ 김현정> 그래요. 그래서 매년 이맘때마다 추모 행사들을 해 왔는데 올해는 좀 특별하게 사진전인데요. 이 사진전이 2014년 그때 사고 당시의 사진, 이런 게 아니라 형제자매가 그 이후로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시는 거네요.
◆ 박보나> 네. 세월호 형제자매들의 모임이 있는데요. 전시회는 5명의 형제자매들이 함께했는데 각자 원하는 주제를 정해서 다양한 사진들이 전시돼 있고 각자의 일상이나 가족, 5년간 동생의 봉안함을 꾸몄던 모습을 전시하기도 했어요.
◇ 김현정> 봉안함을 꾸민 모습을 전시한 분도 있고. 그 영화 엔딩 크레딧하고 동생의 학생증을 겹쳐서 찍은 사진들을 쭉 전시한 분도 계시더라고요.
◆ 박보나> 네. 동생과 함께 봤던 영화의 후속 작품이 나오거나 혹은 동생과 함께 있고 싶을 때마다 학생증을 들고 사진을 찍은 형제자매가 있어요. 그 형제자매의 동생같은 경우에는 학생증을 걸고 나와서 학생증 자체가 유품이 되었거든요.
◇ 김현정> 학생증을 걸고 나왔어요, 목에 걸고.
◆ 박보나> 네.
◇ 김현정> 그런 학생이 있었죠.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 학생증을 그때부터 그 형제는 몸에 지니고 다녔던 거고요. 좋은 걸 볼 때마다 그 학생증과 그 장면을 겹쳐서 사진을 찍어놓은 거예요?
◆ 박보나> 네. 동생과 함께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 김현정>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참 버티기가 힘드셨는데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이런 형제자매들한테는 그 5년이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 같은데…
◆ 박보나> '네가 잘 가족들을 챙겨야 된다. 네가 더 잘 살아나야 된다.' 그런 무게들에 짓눌려 있기도 했고 부모님 앞에서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얘기하기 어려웠고요. (그래도) 형제자매들과 같이 만나면서 좀 다독여주고 격려해 주고 이런 관계들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 김현정> 그러네요. 부모님 앞에서는 동생 대신 언니 대신 나라도 좀 밝게 웃어드려야지. 이러니까 슬픈 내색 못 하고. 다른 사람들은 '야, 네가 네 동생 몫까지 살아야 돼.' 이건 또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어요. 어린 나이에 이것저것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 같은 처지에 있는 형제자매들끼리 서로 버팀목이 됐군요.
◆ 박보나> 네.
◇ 김현정>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모여서 같이 뭔가를 해 보자 하고 시작한 게 사진 찍기였어요? 어떻게 사진 찍는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 박보나> 저는 그날 이후부터 사진을 많이 찍으려고 노력했어요.
◇ 김현정> 왜요?
◆ 박보나> 제가 동생과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사진을 많이 찍어오라고도 했었고 동생을 잃고 나니까 동생의 사진 한장한장이 되게 소중한 선물이 됐고 사진이라는 게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선물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으려고 노력했는데 그날 이후로 찰칵 소리에도 움츠러들 정도로 카메라가 공포와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거든요.
◇ 김현정> 왜 찰칵 소리만 들어도 싫을 정도로 카메라가 분노의 대상이 됐어요? 왜요?
◆ 박보나> 울고 고통스러워하는 순간들을 카메라를 들이대서 이게 피해자의 모습이라고 보여주는데 그게… 그래서 이제는 카메라에 찍히는 사람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직접 우리 얘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언론이 만들어낸 그리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피해자의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직접 하고 싶었어요.
◇ 김현정> 어떻게 보면 언론의 카메라, 언론의 플래시는 조금이라도 더 비참한 모습을 잡아내려고 들이대고 또 한쪽에서는 '당신들은 늘 비참하기만 하오. 왜 그렇게 피해자의 모습만 하고 있소' 라고 또 그만하라고 하고. 이게 너무나 괴로웠다는 얘기예요.
◆ 박보나> 그래서 그런 것에 벗어나고 싶었고 카메라를 들면서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기대했던 것 같아요. 제 사진 중에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가에서 헝가리 유대인들이 많이 학살당했는데 그 학살당한 자리에는 신발이 설치돼 있었고요. 그 신발들을 찍으면서 세월호에서 나온 동생의 신발이 생각나서 저의 상처를 마주한 시간이기도 했거든요.
◇ 김현정> 저희가 유튜브와 레인보우 모니터로 보고 계시는 분들은 우리 보나 씨 사진을 같이 보실 수 있어요. 보나 씨, 어디 가서 이 전시회 볼 수 있습니까, 지금은?
◆ 박보나> 지금은 4월 12일부터 21일 일요일까지 용인 느티나무도서관으로 옮겨서 사진 전시를 하고 있고요.
◇ 김현정> 용인의 느티나무도서관?
◆ 박보나> 네. 형제자매들이 어렵게 꺼낸 이야기들을 많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이 씨앗이 되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저희와 함께해 주시고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용인 느티나무도서관에 많이들 가셔서 위로를 하고 또 위로를 받고 서로 이렇게 연대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많이들 가보시고요. 보나 씨 힘내시고요.
◆ 박보나> 감사합니다.
◇ 김현정> 오늘 고맙습니다.
◆ 박보나> 고맙습니다.
◇ 김현정> 세월호의 형제자매들이 지금 아주 특별한 전시회를 하고 있네요. 그중의 한 사람 고 박성호 군의 누나 박보나 씨를 먼저 만나봤습니다. 이어서 4.16연대를 연결해 볼 텐데요.
그동안 선체 조사, 특별 조사 등등의 참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결정적으로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그 조사 결과를 가지고 실질적으로 책임을 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제 4.16연대와 가족 협의회가 함께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 18명 명단을 발표했는데요. 왜 그들을 지목했는지 직접 들어보죠. 4.16연대 배서영 사무처장 연결이 돼 있습니다. 사무처장님, 안녕하세요?
◆ 배서영> 안녕하세요.
◇ 김현정> 단도직입적으로 궁금했던 질문. 세월호 참사로 처벌을 받은 정부 관계자가 총 몇 명입니까, 5년 동안?
◆ 배서영> 1명입니다.
◇ 김현정> 1명이요?
◆ 배서영> 네. 단 1명뿐입니다. 304명이 돌아가신 참사로 처벌받은 국가 책임자가 1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 김현정> 누구입니까, 그 1명은?
◆ 배서영> 그 해경 123정장이었던 김경일 해경 경위가 처벌받았죠.
◇ 김현정> 그 위로도 아래로도 아무도 처벌받은 사람이 없어요?
◆ 배서영> 없습니다. 당시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해경한테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빼라.' 그리고 우병우 당시에 청와대에 있었던 사람은 이제 '해경 압수 수색하지 마라.' 이렇게 해서 실제로 수사했던 광주지검에서는 '아니, 어떻게 수사를 안 할 수가 있냐.'
◇ 김현정> 그랬죠.
◆ 배서영> 그래서 그 이듬해 담당 검사들이 다 옷을 벗거나 좌천이 됐습니다.
◇ 김현정> 맞습니다. 그리고 옷 벗고 나서 끝난 거예요? 그걸로 끝난 거예요?
◆ 배서영> 수사는 끝났습니다.
◇ 김현정> 그랬군요. 그러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어제 18명을 실명으로 발표하셨어요.
◆ 배서영> 네, 맞습니다.
◇ 김현정> 이 18명 명단을 듣고 저는 어떤 피해자들의 분노의 마음을 담은 상징적인 발표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 배서영> 그런 걸 의도하지는 않았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그 정도 차원이 아니라 진짜로 특별 수사단을 꾸려서 수사를 하자, 이러셨어요?
◆ 배서영> 네, 맞습니다. 누군가가 사망을 했거나 피해를 입으면 당연히 수사를 먼저 합니다. 당시의 검경합동수사본부가 발표한 수사 결과를 보면 깜짝 놀랄 만한 것이, 언제 배가 어떻게 됐고 그래서 어떻게 대기 지시나 퇴선 지시가 됐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혀지지를 않았습니다. 수사라는 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다시 수사를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 김현정> 아니, 그런데 현실적으로 5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그 당시도 물증 잡기가 어려웠는데 지금 무슨 물증이 남아 있겠는가 싶기도 하고.
◆ 배서영> 물증 있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 배서영> 우리 국민들이 그 당시에 전원 구조 오보를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게 무려 1시간 40분 동안 배가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구조할 거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청와대, 해경, 해수부. 또 국정원은 다 퇴선 조치 혹은 탈출 조치를 명하지 않고 끝까지 100분간 대기 지시를 유지했다는 것. 이것은 교신 기록을 통해서 다 확인된 사실입니다.
국가의 무책임이 결국은 인명 피해를 불러온 거에 대해서도 당연히 엄벌에 처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미완의 과제가 현재 5년까지 온 과정이라고 보고요.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서 만들었던 조사 기구들이 일정하게는 성과가 있습니다. 수사할 만한 근거들이 충분히 저는 마련됐다고 보고요. 이 고도로 행정화된, 시스템화된 사회에서 국가 책임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저희는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 김현정> 그래요, 알겠습니다. 지금 아침에 논란이 되고 있는 게 뭐냐면 어젯밤에 차명진 전 의원이 SNS에다 글을 쓴 게 지금 하나 논란이 되고 있어요. 보셨어요, 혹시?
◆ 배서영> 봤습니다. 지금 세월호 가족협의회랑 4.16연대는 고소, 고발 바로 즉각 검토하고 있고요.
◇ 김현정> 빠르면 오늘 합니까?
◆ 배서영> 오늘은 기억식을 해야 되기 때문에 오늘 소장을 접수는 못 하겠지만요.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 지금 수사 대상입니다. 결국 이런 거에 대해서 뭔가 방어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세게, 보수 세력의 결집을 촉구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되는데요. 매우 정략적인 행동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 김현정> 정치적인, 정략적인 행동이라고 보세요?
◆ 배서영> 맞습니다.
◇ 김현정> 혹시 밤사이에 못 들으신 분들을 위해서 잠깐 전하자면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쳐 먹고 찜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먹는다.' 이 밑으로도 깁니다마는 제가 뒤는 더 이상 읽지 않겠습니다. 이런 내용을 SNS에 적은 건데 들으시고 가족들은 뭐… 무척 화나셨겠어요?
◆ 배서영> 가족들은 오늘이 자식이 돌아오지 못한 날입니다. 차명진이란 자가 그렇게 했다라는 것에 대해서 지난 토요일 가수 이승환 씨가 한 말로 대처하자면 '못나고 못됐고 추악하기 그지없다' 라는 말로 대신해야 될 거 같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오늘이 4월 16일인데 이런 뉴스를 겹쳐서 들어야 한다는 게 편치 않네요. 여기까지 말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배서영> 고맙습니다.
◇ 김현정> 4.16연대 배서영 사무처장까지 만나봤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세월호>김현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