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선수단 연봉으로 2019~2020시즌 샐러리캡 위반이 확실시되는 대한항공은 기존 선수단 개편 등의 방식으로 해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사진=한국배구연맹)
[노컷발리뷰]는 배구(Volleyball)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CBS노컷뉴스의 시선(View)이라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발로 뛰었던 배구의 여러 현장을 다시 본다(Review)는 의미도 담았습니다. 코트 안팎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배구 이야기를 [노컷발리뷰]를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지난 12일을 끝으로 2018~2019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의 거취가 최종 결정됐다. FA자격을 얻은 남녀부 37명의 선수 가운데 4명이 이적을 선택했고, 3명은 계약을 맺지 못해 2019~2020시즌 V-리그 코트에 나설 수 없게 됐다. 나머지 30명은 기존 소속팀에 남았다.
FA선수들의 활발한 이동이 없었던 탓에 새 시즌 각 팀 구성의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오히려 ‘집토끼’ 단속에 나선 각 팀은 샐러리캡 해결이라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대표적인 사례가 FA 계약 결과 발표 후 불거진 남자부 대한항공의 샐러리캡 초과 논란이다.
대한항공은 FA 계약자 5명(정지석·곽승석·김학민·황승빈·진성태)과 새롭게 영입한 손현종의 연봉 총액이 18.5억원에 달한다. 주전 세터 한선수의 연봉을 더하면 정확하게 2018~2019시즌 샐러리캡인 25억원을 충족한다. 나머지 선수들의 연봉은 고스란히 샐러리캡 위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비단 이는 대한항공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신영석과 문성민, 여오현, 이승원까지 FA선수를 모두 잡은 현대캐피탈도 화려한 선수 구성 탓에 샐러리캡 규정 위반 의혹의 시선을 피할 수 없다.
V-리그는 각 팀의 균형 잡힌 전력 구성을 유도하기 위해 샐러리캡과 트라이아웃 등 여러 장치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 배구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에 “현재 V-리그 샐러리캡은 외형상 엄격하게 규제하는 하드캡(Hard Cap)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암묵적인 소프트캡(Soft Cap)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단순히 위에 언급한 두 팀의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연봉은 곧 시장가치다. 2018~2019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신영석이 현대캐피탈과 재계약한 연봉 6억원은 센터 포지션의 수준급 선수가 적다는 시장의 상황, 그리고 치열한 영입 경쟁이 얽혀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2019~2020시즌 V-리그는 남자부 26억원, 여자부 14억원의 샐러리캡을 운영한다. 남자부는 2018~2019시즌부터 매 시즌 1억원씩 샐러리캡을 늘려 2020~201시즌에는 27억원까지 확대된다.
여자부는 2018~2019시즌 14억원으로 1억원을 상향 조정한 뒤 2시즌간 동결한다. 다만 여자부에 한해 특정 선수에 고액 연봉이 집중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선수 1명의 연봉이 샐러리캡 총액의 25%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남자부는 우승을 위해 과도하게 인건비 지출 경쟁에 나선 일부 팀의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실효성은 떨어져도 샐러리캡을 도입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효과는 차이가 있지만 거의 모든 구단이 샐러리캡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반면 여자부는 상황이 다르다. 샐러리캡 70% 소진 규정을 둬야 했을 정도로 선수 인권 보장을 위한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2019~2020시즌과 2020~2021시즌 샐러리캡 동결도 투자에 인색한 구단의 합의로 만들어진 규정이다.
결과적으로 남녀부 샐러리캡의 큰 격차는 구단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졌다. 남자부는 많은 돈을 써서라도 우승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지만 여자부는 과도한 투자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결과다.
프로는 냉정하다. 투자는 곧 성적이다. 과거 국내 프로스포츠의 최강으로 군림했던 삼성 스포츠단이 배구뿐 아니라 야구와 축구, 농구에서 모두 허리띠를 졸라맨 이후 성적이 곤두박질쳤다는 점만 보더라도 ‘투자 = 성적’이라는 공식이 유효하다.
최근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이 3시즌 연속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의 대결인 것도 이 때문이다. 투자에 인색한 V-리그 여자부도 최근에는 타 팀보다 조금 더 투자하는 구단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양효진의 시장가치는 분명 2018~2019시즌 종료 후 계약한 3억5000만원 이상이다. 하지만 투자에 인색한 V-리그 여자부의 특성상 과감한 투자는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결국 공개되는 연봉보다 공개되지 않는 옵션이 더욱 관심을 끄는 이유다.(사진=한국배구연맹)
그렇다면 V-리그의 구성원들은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투자를 반대할 명분은 없다. 오히려 리그 활성화를 위해 투자를 하겠다는 이들을 반겨야 할 상황이다. 경쟁 종목에 유망주를 뺏기는 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투자는 분명 필요하다.
28만 달러의 외국인 연봉 제한에 맞춰 규정에 맞춰 영입한 뒤 100만 달러의 옵션을 거는 과거 일부 구단의 악행을 되살리자는 의미가 아니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현재 운영하는 샐러리캡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프로농구(NBA)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가 운영하는 사치세와 같은 방식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NBA는 샐러리캡은 운영하고 있지만 이를 합법적으로 넘길 장치가 많다. 사실상 샐러리캡의 역할을 하는 것은 사치세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샐러리캡을 위반하는 금액만큼 부과했지만 현재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 상습적으로 위반하는 팀은 더 많은 사치세를 내도록 했다. 이를 통해 마련된 금액은 사치세를 내지 않는 팀의 지원에 사용된다.
메이저리그는 초과액에 대해 정해진 비율에 따라 사치세를 부과한다. 뿐만 아니라 일정 금액 이상 초과하는 경우는 추가 과세와 함께 신인 드래프트 지명순위까지도 뒤로 밀리는 징계도 준다. 다만 NBA와 달리 사치세 부과로 모아진 금액은 분배하지 않고 선수 복지 등의 여러 목적으로 쓴다.
한국배구연맹은 18일과 19일 각각 남녀부 실무위원회를 열고 샐러리캡 현실화 방안을 고민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사치세 논의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V-리그에서 손가락질 받지 않고 투자하는 팀이 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