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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DJ, 내아들 홍일이는 무슨 죄냐며 자주 눈물…"

정치 일반

    박지원 "DJ, 내아들 홍일이는 무슨 죄냐며 자주 눈물…"

    김홍일, DJ의 인생동반자 겸 정치적 동지
    언어 불편해 서류로 보고 독촉한것 맘걸려
    이희호 여사 건강 나빠져, 별세 보고는 아직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박지원(민주평화당 의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이 지난 토요일 동교동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지금 각계각층, 진보냐 보수냐, 여냐 야냐를 떠나서 각계각층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데 고문의 후유증으로 말년을 병마와 싸웠죠. 1980년 고문 당시의 회고록을 제가 잠깐만 좀 읽어드리겠습니다.

    “끌려온 첫날 수사관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두들겨팼다. 하루를 한마디 말도 없이 구타만 했다. ‘니가 김대중의 아들이냐? 너는 절대로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해. 어차피 송장으로 나갈 테니까 피차 힘들게 하지 말고 묻는 말에 답해.’ 내 이름은 빨갱이 새끼였다. 연청 사무실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쓴 메모를 간첩이 쓰는 난수표로 인정하라고 했다. 사정없이 구타하지만 급소는 교묘하게 피했다. 까무러치기를 여러 번. 차라리 죽이라고 소리쳤다. ‘죽여달라고? 허허, 이놈이. 여기서는 죽는 게 가장 호강하는 거야. 너 좋으라고 죽여줘?’ 나는 혹여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할까 두려워 수사관 눈을 피해 자살을 기도했다. 책상에 올라가서 머리를 시멘트 바닥으로 처박고 뛰어내렸다. 이때 목을 다쳤다.”

    이 고문의 후유증으로 얻은 파킨슨병으로 수년을 앓다가 결국 김홍일 전 의원 세상을 떠난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타이틀보다는 정치적 동지라고 봐야죠. 김홍일 전 의원을 지근거리에서 봐온 분이기 때문에 이분을 오늘 또 연결 좀 해야겠습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만나보죠. 박 의원님, 나와 계세요?

    ◆ 박지원> 박지원입니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1971년에는 서울대 내란 음모 사건의 배후로 지목이 돼서 고문받았고 80년에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고문받고. 결국 고문 후유증이 상당했던 거죠?

    ◆ 박지원> 그렇죠. 고문 후유증으로 거의 30여 년 동안 활동이 제약되고 또 마지막 15년간에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불행한 생활을 하시다가 가셨습니다.

    ◇ 김현정> 박지원 의원이 옆에서 지켜본 김홍일 전 의원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 박지원> 저하고는 사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 아시다시피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한 게 그렇게 다른 분들에 비해서 일천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제가 김대중 대통령님이 야당 총재 때나 또 대통령 재임 그리고 퇴임 후에도 아무래도 한 20년 가장 가깝게 모셨기 때문에 김홍일 의원은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김대중 대통령의 인생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지’였습니다. 암울한 시기에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연금 등 여러 가지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또 주위분들이 전부 끌려가서 고초를 당했기 때문에 유일하게 출입하고 만날 수 있는 분이 김홍일 의원이어서 아무래도 모든 것을 김홍일 의원과 상의하지 않았나.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지금 각계각층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는 것도 그냥 DJ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그동안 쌓아온 것들에 대한 그런 것들에 대한 어떤 많은 분들의 안타까움, 애도. 이런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그런 아들 모습을 보고 아버지 DJ, 김 전 대통령은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셨어요, 그 당시에?

    ◆ 박지원> 사실 저하고 둘이 앉아서 말씀을 하시면 ‘내가 왜 정치를 했던가, 내가 왜 대통령이 되었는가. 결국 나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우리 아들들, 특히 우리 큰아들 홍일이를 보면 가슴이 미어져서 살 수가 없다.’ 이런 애절한 장남 사랑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 김현정> 나는 성공했지만 아들 보면 미안하다.

    ◆ 박지원> 정치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어떻게 됐든 대통령까지 돼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아들들은 뭐냐. 특히 우리 홍일이는 뭐냐 하는 그런 애잔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님이 생각보다 굉장히 정적이신 분이거든요. 그리고 눈물도 잘 흘리세요. TV 드라마를 보다가 슬픈 면이 있으면 눈물이 나시는데 김홍일 의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애잔한 마음이 있을 때는 눈물을 흘리시는 그런 모습을 수차례 보았습니다.

    ◇ 김현정> 그도 그럴 것이 아까 제가 고문 당시의 회고록 잠깐 읽어드렸습니다마는 다 그게 데리고 가서 ‘네 아버지가 그 사건의 배후라고 대, 대!’ 이런 거였거든요. 그러니까 아버지 때문에 다 당한 고문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을 가지실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 박지원> 그렇죠. 그렇지만 나중에는 실질적으로 김홍일 의원이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서 최일선에서 엄청난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버지 때문에 당했지만 나중에도 불이익을 당했지만 또 본인의 정치 철학,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도 아주 강하신 분이었다. 이렇게 평가를 합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친절하게 대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렇게 페이스북에 쓰셨던데 그건 뭡니까?

    ◆ 박지원> 이제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돼서 집권 5년간 김홍일 의원은 거의 혼자서 일어나거나 또는 걷는. 또 언어가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김대중 대통령님은 과거 야당 하실 때나 대통령을 하실 때 꼭 일요일날 점심을 가족들하고 합니다. 그래서 손자, 아들, 며느리 다 불러서 하는데 그때 김홍일 의원이 목포 지역구에 대해서나 자기 정치적 전망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 대통령님이 좀 못 알아듣죠.

    그러니까 저한테 ‘그걸 좀 물어봐라. 무슨 의미인가.’ 그런데 저도 못 알아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홍일아, 김 의원. 그걸 좀 써서 보내. 이렇게 해서 자꾸 서류로 보내’라고 했는데 본인이야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자기는 말씀을 해도 대통령인 아버지도 못 알아듣고 비서실장인 박지원도 못 알아듣고. 결국 내가 써보내라 하면 ‘예’ 하고 써보내는데 그때마다 모든 것을 다 협력할 수는 없는 것 아니에요.

     

    ◇ 김현정> 그게 마음에 걸리시는 거군요, 이제와 돌아보니.

    ◆ 박지원> 이건 대통령님한테 보고를 드릴 경우도 있지만 드리지 않고 이건 안 된다 했을 때 굉장히 서운한 생각을 하셨죠. 그렇지만 저는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하고 했기 때문에 제가 좀 굉장히 미안한 그런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 말씀이시군요. 그나저나 이희호 여사의 병세도 위중하다 이런 소식이 주말 사이에 들리던데. 이희호 여사님 어떤 상태신 건가요?

    ◆ 박지원> 금년에 만 97세이십니다. 또 최근 건강이 안 좋아지신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위독하다 하는 말씀도 맞을 수 있고 위독하지 않다라고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약 한 달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을 하고 계시고.

    ◇ 김현정> 한 달째 입원 중이세요?

    ◆ 박지원> 네. 외부 인사들의 접촉을 전부 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병세가 좋으실 때는 말씀도 하시지만 또 말씀 안 하실 때는 나쁘단 말이에요.

    ◇ 김현정> 그러면 지금 아드님. 그러니까 첫째 아들 김홍일 전 의원이 별세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계시는 건가요?

    ◆ 박지원> 말씀 안 드렸습니다.

    ◇ 김현정> 안 드리셨어요.

    ◆ 박지원> 왜냐하면 연로하신 어른들에게나 병환 중이신 분에게는 쇼크를 받을 수 있으니까 김홍일 의원이 별세했다는 것도 보고를 안 드렸지만 심지어 지금 7개월 되는 제 아내의 사망 소식도 여사님께서는 모르고 계십니다. 제가 가면 미세스 박. 제 아내를 미세스 박이라고 부르시는데요. 병원에 있었는데 어떠냐. 그러면 제가 ‘퇴원해가지고 우리 둘째딸이 미국에서 해산하니까 미국 갔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아마 집집마다 연로한 어르신들에게 그렇게 말씀하는 것하고 똑같이 김홍일 의원의 사망 소식도 역시 보고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제가 가니까 주무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손을 잡고 ‘사모님, 박지원입니다, 박 실장이요’ 그랬더니 딱 눈을 뜨시고 ‘왔어요?’ 그러고 몇 마디 하시는 걸 보면 어제는 좋으셨어요.

    ◇ 김현정> 제가 지난해 가을에 자택으로 찾아가서 인터뷰 했었잖아요. 그게 아마 언론 공식 인터뷰 마지막, 지금까지는 마지막으로 하신 인터뷰로 제가 알고 있어요. 제가 그때 뵐 때도 기력은 많이 쇠한 상태셨는데.

    ◆ 박지원> 그때 저는 얼마나 반대를 했습니다.

    ◇ 김현정> 인터뷰하시지 말라고. 힘드시다고. 그러셨군요. 그 와중에도 그러니까 몇 마디 하셨어요. 제가 꼭 안아드리니까 등을 토닥여주셨던 그 손길이 기억이 나는데.

    ◆ 박지원> 아주 좋으셨어요. 그런데 최근에 조금 쇠약하시니까 저로서는 굉장히 가슴이 아픕니다.

    ◇ 김현정> 그러네요. 건강하시기를 옆에서 잘 좀 지켜주시고요.

    ◆ 박지원> 많이 기도해 주세요.

    ◇ 김현정> 오늘 여기까지 말씀 들어야겠습니다. 박지원 의원 고맙습니다.

    ◆ 박지원> 감사합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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