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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숨가쁘게 달려온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러시아와 중국의 '역할 찾기'로 시계 제로 상황으로 치닫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도 일부 속도조절을 언급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청와대는 4차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이은 3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톱 다운' 방식의 비핵화 논의가 빠른 시일안에 구체적인 성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호응을 살피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한국을 국빈 방문 중인 세바스띠안 삐녜라 칠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미 양 정상이 대화 의지를 밝힌 만큼 3차 회담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촉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조만간 4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의사를 천명하고, 15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북미대화 재개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이제 남북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할 시점"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한 것과는 온도차가 느껴진다.
문 대통령은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1주년 기념식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통해 "새로운 길이기에, 함께 가야 하기에 때로는 천천히 오는 분들을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만나게 되는 난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함께 길을 찾아야 한다"며 '속도조절' 필요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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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김정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간 첫 북러 정상회담, 26일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간 중러 정상회담,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간 미일 정상회담 등 과거 북핵 협상을 다뤄온 한반도 주변 4강의 잇단 회동에 북중러-한미일이라는 낡은 구도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김 위원장이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대미(對美) 협상력을 높이고 현재의 북미 협상 구도를 흔들며 미국에 압박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오면서 한반도 비핵화 촉진자 역할을 도맡아 온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일정정도 동력 상실도 불가피해졌다.
여기에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도 '력사적 사변'이라고 칭했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1주년 기념식에 북측이 전혀 호응하지 않은 것은 물론, 같은 날 조선중앙통신이 "미국과 남조선당국은 무분별한 전쟁연습 소동으로 얻을 것은 참담한 후회와 파국적 결과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중자숙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북러 정상회담 뒤 귀국한 김 위원장이 우리 정부의 4차 남북정상회담 제안에 어떤 형식으로든 반응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촉진자 역할에 희망을 걸고 있다.
과거 6자 회담 방식의 비핵화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데다, 북한 역시 미국과의 단판 승부를 원하고 있다는 점, 또 한국은 물론 미국 역시 비핵화 방식과 제재완화 논의에 적극적인 것은 물론 국내 정치적 성과물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현재의 교착상태가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낙관론도 읽힌다.
결국 '톱 다운' 방식으로 핵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적 성과를 얻으려는 김 위원장이 4차 남북 정상회담을 지렛대로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청와대 내부에서는 여전하다.
또 지난 11일 한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아직 공개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따라 김 위원장의 반응 시기도 빨라질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북한과의 대화 채널은 올해 초와 마찬가지로 가동 중"이라며 "조만간 북한의 반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