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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이란 이름의 '노동 사각지대'…방치된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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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행'이란 이름의 '노동 사각지대'…방치된 방송작가

    방송작가 유니온 '2019년 방송작가 노동실태 조사' 발표
    방송작가 93%가 프리랜서
    62.9%가 주 40시간 이상 노동, 52시간 이상 노동도 34.3% 달해
    밤샘·장시간 노동 개선되지 않는 원인 1위 '관행'
    방송작가 2명 중 1명은 "돈 떼인 경험 있다"
    "방송작가도 노동법 보호를 받게 해야 한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 "병가를 쓸 수 없어서 아픈데도 참고 일했다"

    # "119가 올 때까지 일을 했고 응급실에서 자막을 뽑았다"

    # "상을 당했지만 방송 때문에 휴가를 쓰지 못해서 상복을 입은 채로 장례식장에서 대본을 썼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동자임에도 노동법에 의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그들의 열정과 삶을 소진 당하고 있다. 방송계의 대표적인 특수고용 노동자는 '방송작가'다. "상복을 입은 채로 장례식장에서 대본을 썼다"라는 어느 방송작가의 말처럼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는커녕 '노동 사각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의 인권과 생존도 내려놔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데는 그들이 법 밖에 존재하는 방송작가이며,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지부장 이미지, 이하 방송작가 유니온)가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방송작가들을 상대로 실시한 '2019년 방송작가 노동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4월 22일부터 26일까지 닷새간 방송작가 유니온 조합원과 비조합원, 신입-서브-막내 등 전국의 방송작가 580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방송작가들의 고용 형태와 상근 여부, 노동 시간, 밤샘 횟수, 임금 체불 등의 노동 실태를 집계했다.

    (사진=방송작가 유니온 제공)

     

    ◇ 방송사로 출근하지만 방송작가 93%가 정규직 아닌 '프리랜서'

    1997년과 1998년 외환위기와 경제위기를 거치며 특수고용 노동자가 확산됐다.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방송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방송작가는 방송사에 노무를 제공하고 방송사로부터 이에 대한 대가를 받지만 방송사 '정규직'은 아니다. 정규직이 아닌 그들은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쉽게 쓰고 쉽게 버려질 수 있는 불안한 위치에 있는 게 특수고용 노동자다.

    '2019년 방송작가 노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93.4%(542명)가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되어 있었지만 72.4%(420명)가 방송사나 외주제작사에 출퇴근을 하는 상근 형태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리랜서'(조직이나 회사에 고용되지 않은 상태로 일하는 특정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고용형태는 프리랜서지만 실질적인 노동형태는 정규직과 다를 바 없다.

    상대적으로 프리랜서에 가깝다고 여겨져 온 메인작가의 경우도 전체 134명 가운데 66명이 상근을 한다고 답해 절반에 가까운 49.3%가 상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인 작가를 제외할 경우 서브-막내 작가의 상근 비율은 79.4%로 높아졌다. (참고로 580명의 응답자는 메인작가 23.1%(134명), 서브작가 43.8%(254명), 신입작가 33.1%(192명)으로 구성)

    방송작가 유니온이 지난 3월 1일부터 4월 27일까지 KBS 구성작가협의회 구인·구직 게시판에 올라온 317건의 구인 글을 전수 조사한 결과 비상근 재택근무는 20건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구인 공고는 '상근'을 명시하고 있었다.

    방송작가 유니온은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들이 대다수의 방송작가를 프리랜서로 고용하고 있지만 업무 실질은 상근인 위장된 프리랜서가 상당수임을 말해주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10월 18일부터 12월 7일까지 2018년 방송 프로그램 제작 참여 경험이 있는 작가, 연출 등 제작 스태프 408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2018 방송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양 작가(98.7%), 예능 작가(98.2%)의 비정규직(계약직, 시간제, 프리랜서)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1월부터 조사시점까지 서면계약을 경험한 제작인력의 비율을 산출한 결과 드라마 작가 95.2%, 교양 작가 23.1%, 예능 작가 36.8%로 집계되어 작가 직군 내 장르별 편차가 크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서면계약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대부분이 구두계약을 통해 일하고 있다 보니 고용불안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다음은 '2018 방송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 심층면접 내용 중 일부다.

    "같이 일하는 PD나, 제작사에 대한 신용 하나로 일하는 거죠. 일을 같이 했을 때, 돈을 재깍재깍 줬는지 그렇지 않은지로 판단하고, 이 회사는 돈을 주지, 이 PD는 믿을 만하지 하는 생각으로 일을 하는 거죠."(작가A/교양/16년차)

    "프로그램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이 찍혀 있으니까 돈은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 외에는 계약서를 대체할 만한 근거는 아무것도 없어요. 불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계약서를 써야하지 않겠냐고 말을 하면, 돌아오는 건 팀장이나 메인작가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것 뿐이에요. 반동분자 취급을 하는 느낌이에요."(작가D/교양/7년차)

    (사진=방송작가 유니온 제공)

     

    ◇ 방송작가 62.9%가 주 40시간 이상 노동…과노동 벗어나기 힘든 상황

    방송작가들은 낮은 고용안정성뿐만 아니라 과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송작가 유니온이 방송작가들의 노동시간을 조사한 결과 △주 40시간에서 52시간 사이 28.6%(166명) △52시간에서 68시간 사이 26.4%(153명) △15시간에서 40시간 사이 25.7%(149명)로 나타났다. 68시간 이상 일한다는 응답자도 7.9%(46명)로 집계됐다. 반면에 퇴직금과 주휴수당, 4대 보험 등 노동법 적용의 예외가 인정되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기 노동자는 11.4%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방송작가의 과도한 노동은 다른 조사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법적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방송작가에게 법이 정한 주 52시간 근무는 해당 사항이 없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진행한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작가의 대다수는 노동시간을 특정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메신저 등 여러 수단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구분 없이 업무에 노출되어 있다는 응답이 주를 이뤘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관련 실태조사에서도 그렇고 노동시간을 자꾸 적어내라고 하는데 이게 제일 어려워요. 상황에 따라 너무 천차만별이라서 몇 시간이라고 딱 적을 수가 없어요."(작가A/교양/16년차)

    "방송사에서 기자들이 퇴근하면, 남은 업무들은 작가들 몫이에요. 근로시간 52시간 제도가 방송사 소속 직원들이 빨리 퇴근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덜게 해주는 장치로만 활용되는 것 같아요. 현시점에서는…"(작가E/교양/16년차)

    "주 평균 노동일수는 집에서 일하는 것까지 다 합치면 6일 정도 되겠다는 계산이 가능한데,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특정하기 어려워요. 일상 속에서 계속 일을 하는 거라서…. 그리고 출근은 10시, 11시에 한다고 답할 수 있지만, 퇴근 시간을 묻는다면 답하기가 어려워요. 출근 시간이 일반 직장인보다 늦어서 부러워들 하는데 그럼 뭐해요.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데요."(작가D/교양/7년차)

    (사진=방송작가 유니온 제공)

     

    ◇ 4대 보험 가입자 3.1%에 불과해…사실상 노동법 사각지대에 방치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노동자가 의무적으로 적용받아야 하는 사회보험제도 역시 방송작가에게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근로기준법상 주 15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는 4대 보험과 주휴수당, 퇴직금을 받는 대상이 되지만 대부분 적용 대상이 아니다.

    방송작가 유니온 조사 결과 4대 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3.1%에 그쳤고 시간 외 수당을 받는 사례는 2.8%, 퇴직금을 받은 사례는 1.8%에 불과했다. 연월차 휴가(8.5%)도 교통비(6.8%)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월차 휴가를 쓰지 못한 방송작가들은 "병가를 쓸 수 없어서 아픈데도 참고 일했다" "119가 올 때까지 일을 했고 응급실에서 자막을 뽑았다" "상을 당했지만 방송 때문에 휴가를 쓰지 못해서 상복을 입은 채로 장례식장에서 대본을 썼다"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18 방송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업무 관련 부상이나 질병 발생 시 어떤 방법으로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한 내용이 나온다. 그 결과 드라마 연출을 제외하고 모든 제작인력 집단에서 '전액 개인비용으로 처리'라는 응답 비율이 높았으며, 특히 작가 집단에서 높게 나타났다.

    (사진=언론노조 제공)

     

    ◇ '관행'이 만든 과노동과 임금체불 등 열악한 노동환경

    방송작가들은 장시간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관행'이라고 꼽았다.

    실제로 방송작가 유니온 조사에에서도 '작가들의 장시간 노동과 밤샘 등이 개선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를 묻는 질문에(복수 응답 가능) △장시간·밤샘 노동을 당연시하는 업계 분위기 76.9% △빠듯한 제작 일정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량 65.2% △근로기준법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고용 형태 60.5%로 나타났다. '문제 제기를 하면 잘리니까' '연예인 스케줄에 맞추느라' '방송사들이 작가 문제를 외면해서' 등의 의견도 나왔다.

    일했지만 돈을 받지 못한 경험이 있는 방송작가도 2명 중 1명꼴로 조사됐다. 방송작가 유니온 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2.8%가 임금체불을 경험했다. 기획료(39.2%), 원고료(34.6%), 불방료(14.1%), 재방료(12.1%) 등 받지 못한 임금의 종류도 다양하다. 떼인 돈을 받기 위해 대응했지만 결국 받지 못한 작가도 10명 중 7명에 달한다. "노동청에 전화했지만 프리랜서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답을 얻었다"라는 답변도 나왔다.

    돈을 받지 못한 이유도 방송작가의 고용형태에서 기인한다. 방송제작업에 종사하는 지인이나 동료를 통해 방송제작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 노동환경도 이유 중 하나다. '구두 계약 관행으로 인한 계약서 미작성'(33.7%), '불이익이 우려돼 문제 삼지 않음'(27.6%)의 결과에서 보듯이 방송작가들이 모두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 사각지대에 놓였기 때문이다.

    방송작가들은 '연·월차 휴가, 시간 외 수당 보장'(42.2%)이 가장 시급한 노동인권 보호 장치라고 이야기했다. '실업급여, 퇴직금 등 4대 보험 혜택'(41.9%)과 '52시간 근무제 적용' '나와 함께 싸워주는 노동조합' '고용 안정' 등에 대한 요구도 여전히 높았다.

    방송작가 유니온은 앞으로 방송작가 구인 글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체제를 구축하고 기획료와 불방료 등 방송계에 만연한 임금 체불 문제 해결에 힘쓸 계획이다.

    이미지 지부장은 이번 실태 조사 결과에 대해 "허울 좋은 프리랜서로 위장돼 온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업무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 지부장은 "'상근'을 요구받고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 방송작가들을 정부와 방송사들이 더 이상 노동권 사각지대에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방송사들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고용 형태가 아닌 근로 실질을 따져 방송작가들의 경우도 시간 외 수당, 52시간 근무제, 퇴직금, 4대 보험 적용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는 노조 차원이 아닌 고용노동부가 직접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방치돼 온 방송작가들의 노동 실태 조사에 나서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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