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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 불'은 어떻게 10층 아파트를 태웠나

법조

    '라이터 불'은 어떻게 10층 아파트를 태웠나

    부주의·부실시공·허위감리·제도미비 합쳐진 '종합 참사'
    "소방헬기로 인한 화재 재발화 영향도 없지 않아"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피고인에 대해서만 전적으로 (화재 확산) 책임을 귀속시키기는 어렵다."

    2015년 1월,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구속기소된 건축주와 시공감리자 등에 대해 2심 재판부는 형량을 절반 가까이 줄여줬다. 단순한 실수로 생긴 불이 5명이 사망하고 129명이 다치는 대형사고로 번진 것은 한 두 사람의 책임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6부(오석준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이 사건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선고하면서 "법령 등 제도상의 미비점이나 구조과정에서의 문제점 등도 피해 확산에 영향을 미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부실·편법 시공된 건물에 대해 행정관청 역시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취지도 밝혔다.

    불은 실수로 시작됐다. 한 겨울 꽁꽁 언 오토바이에서 키가 뽑히지 않자 A씨는 라이터로 키박스 부위를 가열했다. 그리고 키를 뽑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 사이 키박스 내부에서 생긴 불꽃이 오토바이 연료통으로 옮겨 붙었고 오토바이가 주차된 대봉그린아파트 1층 주차장 천장과 주변 차량으로 번졌다.

    1층 주차장에서 난 불이 10층까지 순식간에 번진 것은 건축법상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방화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건축주인 B씨는 종합건설업면허가 없는 상태에서 대봉그린아파트 건설을 총괄했다. 이에 면허가 있는 한 시공사의 명의를 사실상 빌려서 계약을 체결했다. 건축물에 대한 설계와 감리 계약도 해당 시공사가 아닌 B씨가 직접 진행했다.

    B씨는 해당 시공사에는 골조공사만 맡기고 나머지 소방설비·창호·드라이비트(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단열재)·문짝 등의 공사는 각각 다른 하청업체에 도급을 줬다. B씨가 시공사에 공사대금을 주면 시공사가 이들에게 결제해 주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분절된 공사 과정에서 계단과 복도 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도어클로저는 설치되지 않았다. 각 층에 필요한 배관과 전기선이 지나는 EPS(Electrical Piping Shaft)실은 화재 위험이 크기 때문에 법에서 별도의 방화구획으로 설계하도록 돼 있지만 오히려 '채광창'이 설치됐다. 계단에 빛이 잘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EPS실 문도 방화문이 아닌 단순 철재문으로 시공됐다.

    아침 9시 14분경 주차장에서 발생한 불은 1층 EPS실부터 매 층 EPS실을 타고 50여분 만에 9층까지 올라갔다. 건축법에서는 EPS실의 비차열(연기 및 화염 차단) 성능이 1시간 이상 확보되도록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방화시설이 제대로 설치됐다면) 적어도 1시간은 EPS실 외부로 화재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애초에 B씨와 설계·감리 계약을 한 C씨는 EPS실 주변을 벽돌로 막고 방화문을 다는 등 법대로 설계했다. 그러나 면허도 없는 B씨가 공사를 총괄하면서 도어클로저를 설치하지 않고 EPS실 방화구획도 마음대로 변경한 것을 보고도 감리 과정에서 지적하지 않았다. 공사감리자로서의 의무를 져버리고 오히려 방화구획 부분에서도 '적합'이라고 허위 기재해 준공 승인을 받아줬다.

    다시 한 번 허술한 건축물을 거를 기회는 있었다. 의정부시에서 위탁을 받아 건축물 '사용승인 조사 및 검사 대행'업무를 하는 D씨가 대봉그린아파트를 방문했을 때였다. 그러나 D씨 역시 방화구획란에 '적합'이라고 허위 기재했다. D씨는 39개 항목을 6시간 안에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철저한 검사는 사실상 어렵다고 토로했고 재판부는 이를 '제도상 미비점'이라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B·C·D 피고인들 각각의 주의의무 위반 외에 화재가 확산된 다른 요인들도 검토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1층을 주차장으로 쓰는 '필로티 구조'의 건물에서 법상 1층과 2층 계단실은 방화문 설치 의무가 없었다. 이에 오토바이 불이 아파트로 번진 '초기' 책임을 피고인들에게만 묻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아파트 외벽이 가연성이 큰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시공된 점도 화재 확산의 요인으로 꼽았다. 2017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지난해 1월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도 비슷한 사유로 대형 인명피해를 냈다. 지난달 30일에야 정부는 3층 이상 건축물에 드라이비트 등 가연성 마감재를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을 손봤다.

    이외에도 화재 이후 소방헬기가 두 차례 건물 위에서 정지회전을 하면서 햐향풍을 일으킨 것 역시 아파트 내 불이 재발화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러한 하향풍이 있었더라도 방화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면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피고인들의 책임이 크게 감경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실화자 A씨의 형량은 1년 6개월로 그대로 유지됐고 건축주 B씨와 설계·감리자 C씨 형량은 각각 2년 6개월, 2년으로 줄었다. 1심에서는 4년 6개월, 4년이었다.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처분을 받았던 D씨에 대해서는 벌금 1500만원으로 낮췄다.

    재판부는 "B씨의 경우 500만원 이하 소액임차인 26세대에 보증금을 전액 환불하고 사망한 피해자들의 유족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등 당심에서 피해자 77명 중 41명과 원만히 합의한 점도 양형에서 고려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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