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랜드 이대헌.
"그렇게 뛸 거라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2018-2019시즌 프로농구가 4월21일 막을 내렸다. 현대모비스의 통합 우승. 하지만 전자랜드도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면서 현대모비스 못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이대헌(27)은 전자랜드의 포스트시즌 히트 상품이었다.
이대헌은 상무 전역 후 4강 플레이오프부터 합류했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프로 두 시즌 동안 평균 2.4점 1.1리바운드를 기록한 빅맨이었기 때문.
하지만 이대헌은 신 스틸러였다. LG와 4강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10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고, 현대모비스와 챔피언결정전에서도 10.4점 2.2리바운드를 찍었다. LG 제임스 메이스, 현대모비스 함지훈과 힘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우승은 현대모비스가 차지했지만, 최고 스타는 이대헌이었다.
포스트시즌 히트 상품 이대헌을 1일 만났다.
이대헌은 "3월20일에 전역해서 4월4일 첫 경기를 했다. 감독님께서 내 매치가 누가 될지 예상하고, 어떻게 수비할지 연구해서 나오라고 하셨다. 상무에서 TV로 경기를 챙겨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면서 "그렇게 뛸 거라 전혀 생각도 못했다. 만약 뛰게 되면 1분 1초를 뛰어도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하다보니까 출전 시간이 늘어서 행복했다. 프로에 와서 이렇게 많이 뛴 게 처음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알린 포스트시즌을 돌아봤다.
계속해서 "처음 겪어본 것이라 1차전에서 긴장이나 부담은 전혀 없었다. 1차전을 한 다음 더 재미있고, 신나게 플레이 할 수 있었다. 2차전은 더 자신있게 할 수 있었고, 다들 좋게 봐주셔서 자신감도 많이 얻었다"면서 "솔직히 많이 아쉽다. 우승했으면 진짜 좋았을 텐데, 그래도 준우승을 했으니 다음에는 꼭 우승을 하겠다. 성장해가는 과정이니 더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키가 크지 않길 바랐던 소년, 농구와 만나다이대헌은 중학교 때 성장통을 겪었다. 키가 1년에 8~9cm씩 자랐다. 밤마다 아픈 무릎을 잡고 울었다. "더 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다. 부모님은 이대헌의 키가 더 커질까봐 키가 자라지 않는다는 한약을 먹이기도 했다.
각고의 노력에도 이대헌의 키는 쑥쑥 자랐다. 결국 이대헌은 중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 농구공을 잡았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시작이었다. 1년을 유급한 뒤 양정고등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농구를 늦게 시작해서 아쉬움은 없었냐"는 말에는 손사래를 쳤다.
이대헌은 "그렇게 생각하면 키가 조금 더 컸으면 하는 아쉬움도 생긴다. 그저 내가 더 노력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헌은 그렇게 끝까지 살아남았다. 농구를 시작할 때 함께 유급한 선수는 4명. 그 중 이대헌과 류영환(SK)만 현역으로 활약 중이다. 동국대에서도 마찬가지. 동기 8명 가운데 졸업할 때 단 2명만 남았다. 이대헌과 서민수(상무)다.
힘든 시기도 있었다. 대학 2학년 때 농구를 그만 둘 생각도 했다. 특히 드래프트를 앞둔 대학교 4학년 때는 부상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대헌은 "2학년 때 운동한 것을 후회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조금 괜찮아졌다. 아버지께서 계속 살아오신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 때 많이 느꼈다. 또 숙소 위 정원 같은 곳에 혼자 가서 울고 그랬다. 한 번씩 울고 나면 많이 풀렸다"면서 "3학년때까지는 몸이 괜찮아 자신감이 있었다. 3학년 말에 오른쪽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 그 때부터 슬럼프였다. 4학년 때 중요한 시합이 있어서 뛰었는데 반대로 삐었다. 그 때부터 힘든 시기였다"고 돌아봤다.
프로에서도 힘든 시간은 계속 됐다. 2016년 1라운드 7순위로 SK에 입단했지만, 김민수와 최부경(전역 후 합류) 등이 버티고 있었다.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이라 적응에 애를 먹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전자랜드로 트레이드됐다. 역시 적응이 문제였다.
이대헌은 "그 포지션에 잘하는 형들이 많았다. 천천히 적응하는 스타일이라 많이 어려웠다. 적응하려는 찰나에 트레이드가 됐다. 솔직히 서운했다. 내 꿈이 한 팀에서 시작해 한 팀에서 끝내는 것이었다"면서 "다독여야 잘하는 스타일인데 유도훈 감독님은 정반대 스타일이다. 적응하는데 좀 오려 걸렸고, 많이 무서웠다. 물론 운동이 끝나면 굉장히 잘해주신다. 다만 처음에 적응이 잘 안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 상무에서도 떨어졌다. "머리 속이 하얗게 됐다. 다시 운동하려고 하는데 마음이 안 잡혔다"는 게 당시 심정. 다행히 추가 합격자가 발표되면서 상무에 입대할 수 있었다. 이대헌은 "어떻게 보면 터닝포인트였다. 운이 좋았다"고 웃었다.
전자랜드 이대헌. (사진=KBL 제공)
◇터닝포인트가 된 상무힘겹게 들어간 상무. 이대헌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이대헌은 "상무에서 정말 많이 느꼈다. 착하게만 플레이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운동 선수가 때로는 이기적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늘 남을 먼저 생각했다. 멘탈적으로 많이 배웠다"면서 "같은 포지션에서만 배우려는 게 아니라 다른 포지션도 어떻게 하는지 보면서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많이 배웠다"고 설명했다.
상무 입대 전 유도훈 감독은 이대헌에게 특별 지령을 내렸다. 바로 성격 고치기와 3점슛 장착이다. 일단은 임무 완수다.
이대헌은 "사실 성격을 고치기 쉽지 않다. 어떤 큰 계기가 있어야 고쳐진다. 아직 다 고쳐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하는 걸 바꾸려고 했다"면서 "내 포지션에서 키가 작은 편이다. (임)동섭이 형과 운동을 많이 했다. 연습을 꾸준히 했는데 프로에서 필요성을 느꼈다. 살아남으려면 3점을 장착해야 했다. 동섭이 형이 전문이니까 따라다니면서 배웠다"고 말했다.
이대헌은 챔피언결정전에서 평균 27분45초를 뛰었다. 함지훈을 전담 마크했고, 때로는 라건아와 부딪혔다. 정효근의 입대로 다음 시즌 이대헌의 비중이 커질 전망.
이대헌은 "대부분 외국인 선수에게 국내 선수가 1대1로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실패하더라도 자신있게 하려 한다. 사람들에게 외국인 선수에게도 자신감 있게 하는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면서 "롤모델은 오세근, 함지훈 선수다. 몸(상체)은 오세근 선수, 플레이 스타일은 함지훈 선수를 닮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마지막에 좋게 봐주셨으니 그것에 자만하지 않고, 또 부담을 갖지 않고 즐기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아직 못 보여드린 게 굉장히 많다. 너무나 많기에 비 시즌에 더 노력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