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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단톡방' 이후 우리는 언론을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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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단톡방' 이후 우리는 언론을 믿을 수 있을까

    기자들이 만든 익명 카톡방에서 '버닝썬 영상' 등 불법촬영물 공유·유포
    성폭력·성희롱 발언도 서슴없이 올려
    성매매 업소 추천도 이뤄져
    희박한 성인지 감수성·기자 윤리의식 드러내
    사회 비판·고발해야 할 기자들의 '범죄행위'에 "신뢰할 수 없다"

    기자 등 언론인들이 만든 익명의 단톡방 내용 중 일부. 보라색 배경과 붉은색 배경은 서로 다른 단톡방이다. (사진=제보자 제공)

     

    사회를 비판하고 범죄를 고발해야 하는 기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취재 중 획득한 성범죄 관련 자료를 유포하고 공유했다면, 과연 시민들은 기자를 신뢰할 수 있을까. 범죄 행위와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기자들의 민낯을 보며 시민들은 그런 기자들이 쓴 기사를 믿을 수 있을까. 문제는 '익명성'이다. 어느 언론사의 어느 기자가 이 같은 범죄 행위를 저질렀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의심과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자들이 익명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이하 단톡방)에서 불법 촬영물이나 성매매 업소 정보를 유포 및 공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들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연일 높아지고 있다. '익명'으로 다수의 언론인이 참여한 단톡방의 실체가 알려지며 더 이상 언론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기자 단톡방의 내용이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디지털 성범죄 근절 운동단체인 '디지털 성범죄 아웃(DSO)'의 폭로와 미디어오늘 보도를 통해서다.

    단톡방 안에서는 '클럽 버닝썬 영상', 성폭력 피해자 등의 신상 정보, 성관계 영상 등이 유포 및 공유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동영상이 보도된 이후에는 해당 영상을 공유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성희롱 발언은 물론 단톡방에 참여한 기자들은 성매매 업소를 서로 추천해주기도 했다.

    기자 등 언론인들이 만든 익명의 단톡방 내용 중 일부. (사진=제보자 제공)

     

    ◇ '익명'의 단톡방…어느 언론사·기자일지 모른다는 사실에 불안감 확산

    문제는 해당 단톡방에 참여한 이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기자'라는 이름으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성'에 숨겨진 단톡방 참여자들이 이 순간에도 '클럽 버닝썬', '정준영 단톡방', '김학의 사건' 등을 취재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시민들이 기자와 언론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까지 제기되고 있다.

    닻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충격적이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닻별 활동가는 "일단 이 사건에서 가장 문제로 보이는 지점은 최초 보도 이후에도 지금까지 언론사 내부에서 자정작용이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라고 꼬집으며 "기자에게 피해자들이 성폭력에 대한 다양한 자료 등을 제보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부당한 사건을 공론화하기 위한 방식의 일환으로 기자에게 제보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내부 고발자가 문제적인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게 어려워 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이버 상의 성폭력, 단톡방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은 일상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그러나 일상적이라서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일상적'이라고 말할 만큼 사이버 성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을 못 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기자들의 커뮤니티와 결합한 것을 두고 단순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성들의 문화 중 하나로만 볼 수 없다.

    닻별 활동가는 "기자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만들어진 커뮤니티와 결합해서 사건이 심각해졌다"라며 "익명성이라는 이유로 잘 가려졌고, 익명성을 무기로 실명을 걸고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계속한다든지, 취재 자료를 나누자는 상황들은 결국 언론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게 된다. 이는 다른 기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닻별 활동가는 "익명성이 무서운 게 내 주변에 누가 이런 사고를 가졌는지 알 수 없게 되어서 불신이 더 쌓이는 계기가 된다. 명확하게 정체가 밝혀지지 않으니 더 불안하게 되고 어느 언론사, 어느 기자가 안전할지 몰라 혼란스러울 수 있다"라며 "언론에 제보했을 때 나도 이런 식으로 취급되지 않을까 불안에 휩싸이며 내부 고발이 어려워지는 상황까지 올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 앞에서는 범죄 보도 뒤에서는 범죄행위…기사 신뢰도 하락 우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제작한 '상담소가 친절하게 알려주는 기자들에 의한 집단 사이버성폭력사건 A to Z'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단톡방 속 기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기사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은 거듭 제기됐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 교수도 "가장 성인지 감수성이 예민해야 할 사람들이 기자다. 기사를 통해 2차 가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어서 가장 민감하게 봐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을 벌였다"라며 "일반인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고 주의해서 사안을 바라봐야 하는 기자들이 뒤에서는 이용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인 것은 정말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런 사람들이 쓰는 기사가 진정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범죄 행위가 나쁘다는 기사를 쓰면서 속으로는 불법촬영물을 찾아보고 즐기고 유포하는 범죄행위를 계속 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걸 보면 기자들이 제대로 기사를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진실성 있는 기사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성 관련 문제를 쓸 때 피해자의 입장에서 기사를 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서 상당히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이건 기자윤리에도 완전히 어긋난다. 정말 기자 자격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4월 30일 한국여성변호사회도 성명을 내고 "미투운동을 계기로 전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에 대한 경각심이 극에 달해 있을 때에도 취재 등을 이유로 얻게 된 피해자들의 신상정보와 영상을 공유하는 등 기자로서의 직업윤리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였다"라며 "이 사건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더불어 그 결과에 따른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지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이 사건을 계기로 참된 언론인으로서의 직업윤리를 다시금 상기하고 궁극적으로 여성에 대한 그릇된 성(性)인식이 바로잡히기를 바라는 바"라고 강조했다.

    ◇ 기자 개인 일탈 아닌 전체 문제…언론사, 기자에 대한 교육 이뤄져야

    이처럼 '기자 단톡방' 사태는 단순히 기자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다. 전반적으로 기자들의 미흡한 성인지 감수성과 부족한 기자 윤리 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다. 또한 기자 개인의 문제로만 좁혀봐서는 안 된다. 기자들을 관리하고 교육해야 할 언론사 역시 책임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언론이 존중받으려면 스스로 잘못에 대해 비판하고 바로 잡으려는 시도를 보여야 한다. 언론사는 기자를 관리하고 교육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기자의 행동은 언론사와 연관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라며 "성인지 감수성, 피해자 중심 보도, 인터뷰 과정에서 2차 가해를 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닻별 활동가도 "개개인의 일탈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성폭력 가해자가 이상한 일탈적 존재가 아니라 당신 주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처럼 이번 사건도 비슷하다"라며 "결코 그냥 몇몇 이상한 사람들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자각하고 언론사에서도 관련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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