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가습기 메이트'를 판매한 애경산업에 유해성 검증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묻기 위한 검찰 수사가 발목을 잡혔다. 안용찬(60) 전 애경산업 대표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두 번이나 기각되면서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5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30일 안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 유형에 따른 독성 및 위해성 차이, 그로 인한 형사책임 유무 및 정도에 관한 다툼 여지' 등을 이유로 꼽았다.
법원 판단은 제조자·판매자 책임을 묻기 전에 가습기 메이트 원료 물질인 CMIT·MIT의 위해성이나 피해 사건과의 인과관계 여부를 현재 단계에서 확정하기 곤란하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가습기 메이트 제품에 관여한 SK케미칼이나 애경산업 등 각 업체가 맡은 역할, 업무, 관여 정도 등에 다툼의 여지가 있어 추가적인 수사나 증인신문이나 증거조사 등 재판 절차를 통해 확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검찰은 애경산업이 가습기 메이트 제품 유해 가능성을 알고도 '인체에 무해'하다고 표시·광고하면서 판매한 행위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의 주요 근거로 봤다.
SK케미칼이 제조한 가습기 메이트 제품을 단순히 판매만 했고 유해 성분인지 몰랐다는 애경 측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할 단서도 확보했다.
검찰은 애경이 가습기 메이트가 출시된 2002년 9월 이전에 SK케미칼로부터 서울대 이영순 교수팀의 '가습기살균제의 흡입독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 보고서는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가습기살균제를 개발할 당시인 1994년 서울대 연구팀에 의뢰해 진행한 유해성 실험 결과 보고서다.
보고서에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인해 (실험용 쥐의) 백혈구 수가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유해성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연구팀 의견이 담겼다.
하지만 유공은 추가 연구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1994년 11월 가습기 메이트를 시장에 내놨고 유공의 가습기살균제 사업을 인수한 SK케미칼이 2001년 애경산업과 판매 계약을 맺었다.
안용찬 애경 전 대표(사진=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SK케미칼이 TF(태스크포스)를 꾸려 서울대 실험보고서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애경산업도 이 보고서를 갖고 있었지만, 2016년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인멸한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은 지난 안 전 대표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이런 정황을 집중 부각했지만, 법원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애경산업이 SK케미칼과 가습기살균제 물품 공급계약을 맺은 뒤 별도의 제조물책임(PL·Product Liability) 계약을 맺은 점도 유해성을 사전에 인지한 정황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맺은 계약은 "SK케미칼이 제공한 상품 원액의 결함으로 제3자의 생명, 신체, 재산에 손해를 준 사고가 발생하면, SK케미칼이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며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SK케미칼이 일방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이례적인 계약 체결 배경에 서울대 보고서 등을 확인한 애경 측이 유해 가능성을 사전에 알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 전 대표도 이 과정에서 사업 담당자 등을 통해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안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가 또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특별한 사정변경이 없다면 다시 청구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두 차례나 안 전 대표의 신병 확보에 실패한 검찰은 법원이 내놓은 기각 취지를 검토하면서 보완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