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신하균을 만났다. (사진=NEW 제공)
배우 신하균의 별명은 '하균신(神)'이다. 단순히 이름과 성 순서를 바꾼 것 같지만, 그의 연기를 찬미하는 의미로 쓰인다. 어떤 작품에 참여하더라도, 그의 연기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만큼 믿고 본다는 의미다.
그러나 신하균은 언제나 연기를 '어렵고 조심스럽게' 대했다. 수많은 후배의 '롤모델'로 꼽힐 만큼 자기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음에도, 부담감과 두려움은 여전하단다. 이번 '나의 특별한 형제'(감독 육상효)를 하면서는 같이한 동료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신하균을 만났다.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지체장애를 가진 세하 역을 맡은 그는, 본인의 연기는 단점만 보였다고 하면서도 다른 배우들 칭찬은 아끼지 않았다. 진짜 형제보다 더 애틋하고 각별한 형제 사이를 연기한 동구 역 이광수를 두고는 칭찬을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고 할 정도였다.
◇ 연기 부담감을 떨치는 신하균의 방법신하균은 '나의 특별한 형제'에 첫 번째로 캐스팅됐다. 육상효 감독은 연기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해 신하균을 캐스팅했고, 역시나 좋은 연기를 펼쳤으며 극의 중심을 잡아줬다고 밝힌 바 있다. 누군가에게 깊은 신뢰를 받는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론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신하균은 "부담감이나,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항상 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전체적인 느낌이 좋고 맡은 캐릭터에 애정이 간다면, 그런 걸(두려움을) 생각 안 한다. 막상 할 때가 되면 그때부터 두려워지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라고 답했다.
영화가 '함께 만드는 작업'이어서 좋다고 한 만큼, 신하균은 타인에게 의지하며 불안과 두려움을 줄여나간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이광수를 비롯한 동료 배우와 육상효 감독에게 의지했다고 전했다.
그는 "혼자 아무리 해도 상대방하고 호흡이 안 맞으면 절대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다. 제가 잘 모르는 방향에 대해서 감독님이 항상 디렉션을 주셔서, 도움 많이 받으면서 했다"고 부연했다.
워낙 연기로 정평이 나 있다 보니, 연기를 잘하는 게 '기본값'처럼 여겨지는 데에 두려움은 없을까. 신하균은 "지나간 건 잘 생각 안 하는 편이다. 그렇게 계속 조심조심하면 못 한다. 저도 아무것도 모르고 연기를 시작했다. 제가 능력이 있는지도 모른 채로"라고 말했다.
신하균은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머리 좀 쓰는 형' 세하 역을 맡았다. (사진=명필름, 조이래빗 제공)
이어, "그냥 저 일이 재밌을 것 같고, 제가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했다. 시나리오 보고 너무 느낌이 좋고, 하고 싶은 이야기와 역할이면 무조건 일단 저지르고 본다. 그다음부터 고민이 시작되는 거다. '어떻게 하지?', '괜히 한다고 했나?'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동료들한테 의지하기도 하고…의 반복이다"라고 전했다.
"어쨌든 이야기 안에서 제가 할 몫은 그거예요. 제 걸 정확하게 하고 상대 배우들이 잘해준다면 좋은 이야기가 나올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광수 씨는 재능도 있고, 칭찬도 워낙 많이 들었고요. 광수 씨의 눈을 보면서 동구의 느낌을 받아서 믿고 했죠. 아니나 다를까 초반 촬영부터 동구의 느낌이 확 있어서 저는 '내가 잘해야겠다'는 게 있었어요. (웃음)"
◇ "나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까닭'내가 잘해야겠다', '나만 잘하면 되겠다'고 한 건 농담도, 수사도 아니었다. 신하균은 정말로 인터뷰 중 이 표현을 자주 했다. '나의 특별한 형제'에 출연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했고, 오히려 본인이 기대에 못 미칠까 봐 걱정했단다.
우선 이광수에 관해서는 "(칭찬을)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 저한테는 배우 이광수로서 완전히 각인됐다"라며 "일단 집중력. 굉장히 몰입도가 강하다. 준비성이 있는 성실한 친구고, 아주 표현을 잘한다. 배우로서 너무너무 좋은 걸 가진 친구"라고 치켜세웠다.
"사적인 취향도 겹쳤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를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잖아요? 현장에서의 모습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사적으로 친해진 면이 있고요. 광수 씨가 그렇게 잘해줬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저보다는 광수 씨의 감정 상태가 굉장히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자칫하면 선을 잘못 탈 수 있고 그럼 위험해지는데, (광수 씨가) 표현을 적당히 잘해 주면서 감정에 충실해서 갔기 때문에 마지막에 사람들이 보시고 눈물도 흘렸다고 봐요. 그런 모습이 현장에서도 보이니까 상대 배우로서 너무 좋은 거죠. 저도 긴장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신하균 나이 때 신하균 같이 살면 좋겠다고 한 이광수의 말에는 어떤 대답을 돌려줄지 궁금했다. 그러자 신하균은 "(광수 씨가) 더 잘 될 거다. 저한테 뭐가 있나"라며 웃었다.
신하균은 "저는 사실 어릴 때부터 선배들하고만 연기해 와서 후배들하고 연기한 게 얼마 안 됐다. 연극 때부터 항상 막내였고, 어린 나이에 영화 하게 돼서 항상 선배들하고 얘기했고 작품 대하는 태도나 행동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하균은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머리 좀 쓰는 형' 세하 역을 맡아 '몸 좀 쓰는 동생' 동구 역의 이광수와 형제로 연기했다. (사진=명필름, 조이래빗 제공)
동구의 수영 코치이자 세하-동구의 친구가 되는 미현 역의 이솜을 두고는 "아주 매력적인 친구다. 굉장히 똑똑하고"라고 말했다. 신하균은 "미현의 입장이 관객의 시선일 수도 있다. 그만큼 거리감을 적당히 유지하면서 점점 다가오는 지점을 정확하게 아는 배우다. 그래서 똑똑하다고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내추럴하면서도 관객의 시각에 맞추는 연기를 했다는 게 놀랍다. 이솜 씨가 했기 때문에 그런 연기가 가능했다고 본다. 전 '소공녀'도 재밌게 봤다. 앞으로의 행보도 굉장히 궁금해지는 배우"라고 전했다.
영화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세하의 활동보조인 육선생 역의 김경남은 어땠는지 묻자, 신하균은 "사실 저는 전혀 모르는 배우였는데 그 친구 연기하는 걸 보고 다들 놀랐다"고 답했다.
그는 "어떻게 할까 궁금했는데 힘을 전혀 안 주더라. 배우는 작은 역을 해도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역이면 욕심을 내게 되는데, 욕심 안 내고 힘을 다 빼고 했다. '잘하는데? 내가 잘해야겠구나' 했다"고 말해 폭소를 유발했다.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웃음과 따뜻함을 담당한 박신부 역의 권해효와 송주사 역의 박철민에 대한 얘기도 들려줬다. 신하균은 "두 분 다 처음인데 해효 선배님하고는 못 만나서 너무 아쉽다. 연극 할 때부터 뵀는데 (작품에서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같이 한 번 꼭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철민 선배님은 워낙 재밌으시다. 보고만 있어도. 근데 절대 상대 역할에 침범하지 않으신다. 본인 대사 안에서 자유롭게 재밌게 하셔가지고. 시사회 때 봐도 선배님 부분에서 빵빵 터지더라"라고 전했다.
어린 세하 역을 맡은 안지호를 언급하자, 신하균은 "어떻게 했나 궁금해서 화면으로 어린 시절 편집본을 봤다. 너무 예쁘게 잘했더라. 안심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나만 잘하면 되겠다', '내가 잘해야겠구나' 생각했다"라고 해 다시금 웃음을 자아냈다.
◇ 날개를 단 듯 자유로워진 행보, 계획한 건 아무것도 없어
신하균은 함께한 동료 배우, 육상효 감독과 작업한 소감도 자세히 들려줬다. 아래 사진 왼쪽부터 배우 이광수, 이솜, 신하균, 육상효 감독 (사진=명필름, 조이래빗 제공/이한형 기자)
신하균은 최근 3년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장르도 가리지 않았다. 액션('악녀'), 코미디/스릴러('7호실'), 코미디('바람 바람 바람')에 나왔다. 영국 드라마 '루터'를 원작으로 한 MBC '나쁜형사'는 범죄 액션물이었다.
주연 못지않은 조연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흥행 영화 2위를 차지한 '극한직업'에서는 강렬한 존재감의 조연 이무배 역을 맡아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신하균은 "뭔가 계획해서 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한 거다. 제가 기획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하다 보니까 주연으로서의 책임감과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저도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있다.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으니까"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뭐가 제 앞에 올지 모르겠다. 안 올 수도 있고"라고 답했다.
배역의 크기에 따라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진 않았다. 주연일 때와 조연일 때 할 몫이 크다 작다 하는 차이만 있었다. 신하균은 "처음 연기 시작할 때부터 전체 이야기 안에서 내가 해야 할 몫이 무엇인가부터 배웠기 때문에, 이야기가 먼저고 그다음에 캐릭터가 들어간다고 항상 생각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내가 할 몫을 정확히 해내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해 왔다. 캐릭터보다는 이야기가 먼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이 이야기에서 내가 어떤 포지션이고 뭘 해야 하나를 본다. 저뿐만이 아니고 다 그렇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캐릭터보다는 이야기가 먼저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탐나는 역할이 있는지 궁금했다. 신하균은 "뭐가 됐든 이야기가 먼저라 뭘 할지도 아직 모르겠다. 저한테는 다 새롭다. 제가 하는 역할은 다 새롭다. 똑같은 역할은 없는 것 같다"면서 "좋은 이야기 만나서 새로운 도전을 해 보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밝혔다.
"저는 저 자신을 잘 모르겠는데… (웃음) 잘 모르겠어요. 배우로서 저 자신을 돌아보거나 하지 않아서요. 다만 제가 할 역할에 접근할 때 방법이 있다면, 그냥 아무것도 없이는 못 해요. 제 안에 있는 것 중 캐릭터와 맞는 부분을 접합시키면서 하는 거죠."
배우 신하균 (사진=NEW 제공)
1998년 영화 '기막힌 사내들'로 데뷔해 올해 데뷔 21주년을 맞은 신하균. 그는 연기에서만큼은 '관성'이 생기지 않도록 경계하는 듯 보였다. 어떤 역할을 해도 이전과 같거나 쉽다고 여기지 않았고, 제 몫을 다해내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기색을 자주 노출했다. 만만치 않은 일을 쭉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연기란 어떤 의미인지도.
"관객들을 만났을 때 그 시간이 너무 즐겁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너무 행복해요. 현장에서 연기할 때 두렵고 무섭기도 한데, 다양한 감정이 공존해요. 기대감, 설렘도 있죠. 어렵기도 하지만 질리지도 않아요. 제 삶의 활력이에요. '아, 내가 살아있구나'라는 느낌도 받고요. 평소엔 무기력하게 놔 버리는 편이라서요. (현장에 가야) 에너지도 생기고 긴장감도 생기고 의욕도 생기고. 결과물이 좋게 나오면 막 즐겁고요. (웃음)" <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