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강기정 청와대 청무수석이 지난 9일 국회를 찾아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신임 원내대표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축하 난을 전달했다.(사진=윤창원 기자)
지난 8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비주류' 이인영 의원의 당선이 놀랍다기보다는 이인영 의원과 2위를 차지한 김태년 의원의 표 차이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1차 투표에서 이인영 의원이 54표, 2위인 김태년 의원은 37표에 그치자, 의원총회장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원내대표 선거 열기가 막 달아오를 때까지만 해도 김태년 의원의 우세가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곧바로 이어진 2차 결선투표에서는 이인영 의원 76표, 김태년 의원은 49표. 표 차이가 더 벌어졌습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으로 당내에서 줄곧 비주류로 분류돼 온 이 의원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선거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을 유권자로하는, 그래서 가장 어려운 선거라는 원대대표 선거에서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에도 그는 별다르게 '친문 마케팅'에 열을 올리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이인영 의원의 당선에는 김태년 의원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갈렸던 점이나 이해찬 대표의 최측근인 김 의원을 견제하는 심리 등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이 의원의 변신도 눈여겨볼만한 요소입니다.
이 의원은 이번 원내대표 선거 과정에서 희어진 머리카락까지 검게 염색하면서 연신 변신을 약속했습니다.
그는 선거 직전 정견 발표에서도 "말 잘 듣는 남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원내대표에 출마한다니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너부터 바꿔라'고 하셔서, 머리부터 바꿨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부 의원들은 '전대협 출신의 까칠한 이인영 의원이 정말 바뀔까?'라며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선거에 뒤늦게 뛰어든 이 의원이 절박하게 변하려는 모습이 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화답하듯 이 의원은 9일 원내대표 자격으로 처음 정책조정회의를 개최한 자리에서 "민생을 살릴 수만 있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야당이 주도하는 것도 좋다는 마음"이라고 밝혔습니다.
'선명함'과 '까칠함'의 대명사였던 이 의원이 협상과 대화에 방점을 두고, 민생에서 성과를 낼 수만 있다면 야당에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발언은 그의 변화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사진=박종민 기자)
이 의원의 변신과 압도적인 민주당 의원들의 지지는 집권 2년차로 접어든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도 주는 메시지가 큽니다.
유난히 낙제 평가가 많은 경제분야만 해도 그렇습니다.
정권 초기 소득주도 성장이란 명목으로 2017년 최저임금을 16.4% 인상(6470원->7530원)해,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반발을 일으키면서 '을(乙) 대 을(乙)'의 싸움이 생겼습니다.
부랴부랴 '혁신성장'으로 경제 이슈를 옮겼지만 인터넷전문은행 규제완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K뱅크 특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고, 공정거래를 위한 법률 개정은 패스트트랙 논란으로 마비된 국회에서 좀처럼 진척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서민.민생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한 문재인 정부에서 빈부 격차가 커진 상황은 뼈아픕니다.
지난해 4분기 빈부격차는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벌어졌습니다. 저소득층 소득은 큰 폭으로 줄어들고, 고소득층 소득은 오히려 늘어난 결과입니다.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때로는 야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선명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공식입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언제까지나 결국 성과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포용국가'를 목표로 소득주도.혁신성장을 외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성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정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실용적인 접근과 유연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면 새로운 방법과 인물이 보일 것입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중국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차용해 "올해를 황금돼지해라고 부르는데, 저는 검은 돼지든 흰 돼지든 무게만 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 역시 지금의 시점에서 되새겨볼 만합니다.
이인영 의원의 변신이 비주류 꼬리표를 달고도 원내 사령탑에 올랐듯, 문재인 정부의 변신도 자영업자와 20대 남성 등 문 대통령에 등돌렸던 민심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