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내 혐오 차별 등 언어 행태 사례 (사진=함정훈 변호사 제공)
# 사례"니 같은 X XXX새X는 나가 쳐XX야지. XX""ㅋㅋ. 왜 그러냐 또.""어데 X같이 XXX처 털고 있노 XX새X가.""왜 내가 욕을 들어야하지?""XX하고 욕이나 가만히 쳐들어라 XXX아. 왜라니. 그걸 모르니까 욕을 쳐 들어야 되는 거다."
'일상다반사', 차 마시는 일이나 밥 먹는 일과 같이 일상적이고 예사로운 일이라는 뜻처럼 게임 내 '욕설'은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다. 욕설뿐 아니라 '패드립'('패륜'과 '애드리브'의 합성어로, 부모님이나 조상과 같은 윗사람을 욕하거나 개그 소재로 삼아 놀릴 때 쓰는 말)과 여성혐오나 차별까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같은 온라인상의 패드립이나 혐오, 차별의 언어가 쌓이다가 결국 '현피'(현실과 PK(player kill)의 합성어로, 온라인상에서 시비가 붙은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 물리적 충돌을 벌이는 일)라는 '현실' 속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 사이버상의 폭력이 현실로 나타난 건 어쩌면 우리 사회가 갖는 '게임'에 대한 혐오에 가까운 차별적 시선이 낳은 결과물일 것이다. 이에 지금이라도 이에 대처할 교육과 법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언론인권센터 주최로 지난 9일 열린 '미디어 속 혐오와 차별 이대로 괜찮을까?' 마지막 강의는 '온라인·모바일 게임 안에서의 언어-혐오표현'을 주제로 열렸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액토즈소프트 이사인 함정훈 변호사는 게임 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법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글 싣는 순서 |
① 언론은 왜 혐오와 갈등 기사를 쓰는가 ② 미디어 속 혐오-예방과 규제라는 두 개의 날개 ③ 온라인 모바일 게임 안에서의 언어-혐오표현 |
언론인권센터 주최로 지난 9일 열린 '미디어 속 혐오와 차별 이대로 괜찮을까?' 마지막 강의강연자로 나선 액토즈소프트 이사인 함정훈 변호사가 '온라인·모바일 게임 안에서의 언어-혐오표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최영주 기자)
◇ 욕설은 기본에 '패드립'·'여필패'까지…게임 속 만연한 혐오와 차별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함정훈 변호사는 '게임'이란 장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크게 온라인와 모바일로 나눠 채팅이 활발한 게임 장르에 대한 개념부터 설명했다. 다음은 함 변호사가 설명한 내용이다.
# 온라인 및 모바일 게임▶ RPG(Role Playing Game) : 롤플레잉 게임. 게임 마스터의 주관 아래 플레이어들이 각 캐릭터를 맡아 연기하면서 즐기는 게임.▶ MORPG(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온라인 게임 중에서 적은 수의 유저가 이들만을 위한 전용 공간을 만들어 스테이지를 돌파하는 방식의 롤플레잉 게임.▶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같은 필드 내에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유저가 동시에 접속하는 롤플레잉 게임. 넓은 의미로 수천 명 이상의 유저가 인터넷을 통해 모두 같은 게임, 같은 서버에 접속하여 각자의 역할을 플레이하는 RPG를 말함.▶ FPS(First-Person Shooter) : 1인칭 슈팅 게임. 배틀존에서 각 캐릭터를 맡아 대전을 하면서 즐기는 게임.함 변호사는 "유독 MMORPG나 FPS 등 대전(싸움)하는 게임에서 욕설, 성희롱이 강하게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라며 "숫자 '18'로 시작하는 욕설은 너무 다반사여서 흔한 일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욕설은 1020대 젊은 층뿐 아니라 3040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
위에 예시로 든 사례는 그나마 '약한' 편에 속할 정도로 심각한 욕설이 게임 내 채팅창을 통해 오간다. 욕설, 패드립을 통해 일이 커지면서 '현피'(온라인상에서 시비가 붙은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 물리적 충돌을 벌이는 일)까지 종종 벌어진다.
함 변호사는 "정말 삭제하고 싶은 게 많다"라며 "심지어 '현피'라는 단어를 필터링함에도 요즘에 (채팅창에) '현피'가 뜨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필터링을 해도 끊임없이 새로운 욕설과 패드립이 등장하고, 필터링을 피해가기 위해 '초성욕설'까지 등장했다. 사이버 세계에 한해 허술한 법망을 빠져나갈 방법도 퍼지고 있다.
게임 내 혐오 차별 등 언어 행태 사례 (사진=함정훈 변호사 제공)
욕설과 패드립만큼 게임 속에서 난무하는 게 여성 혐오와 차별에 대한 언어다. 대표적인 예가 '여필패', 즉 '여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한다'라는 말이다. '여필패'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편견, 비하를 함축하고 있다. 심지어는 게임 안에서 한 길드(게임 마니아 집단으로 '클랜'이라고도 한다. 인터넷상에서 하나의 공통주제를 갖고 뭉친 일종의 동호회를 커뮤니티라고 부르며, 길드와 클랜은 게임 커뮤니티를 특별히 지칭하는 말)가 '김여사를 찾아라'라는 이벤트를 해서 유저가 신고한 적이 있다.
함 변호사는 "여자일 거 같은 아이디, 유저가 여자일 거 같을 때 혹은 여성 게이머라고 밝힌 분들에게 성적 모욕감을 주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한다. 남자 게이머임에도 게임을 못 하면 '너 여자지?'라는 말도 한다"라며 "한 명이 하면 거기서 그치고 신고도 하면 좋은데, 집단으로 놀리고 모욕감을 주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난다"라고 말했다.
여성 게이머에 대한 비하와 차별은 게임과 무관한 현실의 일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게임 '클로저스'의 성우 김자연 씨의 교체 논란이 단적인 예다. 김자연 씨는 2016년 넥슨이 서비스하려던 '클로저스'의 '티나' 역을 맡았는데, 당시 김자연 씨가 자신의 SNS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여자는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적힌 흰색 티셔츠를 인증하면서 게이머들이 김 씨의 교체를 요구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넥슨이 성우를 교체했고, 이후 웹툰 작가를 비롯해 게임 해설가, 예술 창작가 등이 넥슨의 조치를 비판하고 나섰다.
게임 속 여성에 대한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언어뿐 아니라 여성 게임 캐릭터 자체가 가진 선정성 등 '성상품화'에 대한 논란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 중 하나다.
성우 김자연 씨는 자신의 SNS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여자는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적힌 흰색 티셔츠를 인증한 후 게이머들이 김 씨의 교체를 요구하며 넥슨이 서비스하려던 '클로저스'에서 하차했다. (사진=당시 성우 김자연 씨 SNS)
◇ 게임 내 차별과 혐오 표현 발생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그렇다면 이처럼 게임 내 욕설, 패드립, 여성차별과 혐오의 언어 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함정훈 변호사는 크게 네 가지로 분석했다. '경쟁', '동일시', '재구성된 사회', 그리고 '익명성'이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원인으로 지목되는 요소는 모두 맞물려 있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경쟁'의 속성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온라인 FPS 게임 '오버워치'는 다수의 게임 캐릭터 중 1명을 선택하여 6대6 팀 슈팅 게임으로 다른 팀을 제압하고 승리한다. 또 다른 모바일 서바이벌 슈터 게임 '배틀 그라운드'는 100명이 제한된 공간에서 전투를 해 살아 남는 팀(개인)이 살아남는 방식이다.
게임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려고 들어왔던 사람이 패하거나 하면 열 받아서 욕을 하고, 욕만 해서 기분이 다 안 풀리는지 패드립하고, 게이머가 여자인 거 같다면 성적 모멸감 주는 이야기를 한다. 이게 나아가서 '현피'까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게임 속 캐릭터와 나 자신의 자아를 '동일시'하는 데 있다. 게임 캐릭터와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 문제는 단순히 게임에 대한 몰입만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게임 캐릭터, 스킬 강화 및 아이템 구매를 위해 사용한 돈 액수의 차이, 레벨, 닉네임 생성 등(경제적 가치)이 더해진다.
게임 내 길드(Guild) 시스템과 같이 커뮤니티를 이루어 활동하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 사회활동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함 변호사는 "게임 사회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행동 양식들,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맺는 방법이 오프라인과 다르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그런데 우리는 게임과 현실을 과감하게 나눠서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게 문제"라며 "게임 내의 규칙에 따른 생활을 가상세계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경시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라고 설명했다.
게임 내 혐오와 차별이 가능하고 그 수위가 높아진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익명성'이다.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에서라면 타인에게 쉽게 하지 못할 이야기를 쉽게 건네게끔 만든다.
게임 내에서의 활동은 아이디 및 닉네임으로 활동한다. 대부분 고정 아이디를 가지고 있고, 이는 인터넷 사이트에서의 악플을 다는 유저들과 동일하게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익명성' 때문에 사이버모욕죄에서 아이디나 닉네임으로 대상을 특정하기 어려워 모욕죄 처벌을 하지 못한 사례들이 많다.
미국 게임사 연합 '페어플레이 얼라이언스(Fair Play Alliance·FPA)' 로고 (사진=페어 플레이 얼라이언스 공식 홈페이지)
◇ 게임 내 문화 개선 등 다양한 자체규제 시도'사이버 명예훼손죄' 등 법적인 규제 방안도 있지만 온라인게임 관련 사건에서는 오프라인과는 다르다. 피해자가 특정되는지 특정된다고 보기 어려운지 판단하는 작업이 쉽지 않기에, '게임' 분야에서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고 볼 수 있다.
함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아이디가 특정한 사람이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아이디'란 곧 사이버 공간에서의 '나의 명찰'이라고 보고 실제 입법화되고, 구성요건이 바뀌어 가고 있다"라며 "사이버 공간인 게임에 대한 이해와 사이버 인격권 침해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범죄구성요건과 적용범위 명시한 법률의 입법이 필요하다. 기존 오프라인 혹은 온라인에서 적용되던 기존 법리를 아무런 재고 없이 온라인 게임의 사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자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각종 욕설과 혐오가 난무하자 게임 회사들도 자체적으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욕설 등의 단어를 '필터링'하기도 하며, 올바른 게임 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도 벌인다. 일부 회사에서는 라이엇게임즈코리아 LOL '명예로운 소환사 시스템'과 '게임 배심원단' 등과 같이 '명예로운 유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칭찬과 소통을 통해 게이머 스스로 게임 생태계를 변화하도록 하려는 시스템이다.
미국은 지난해 블리자드, 라이엇게임즈, 에픽게임즈, 슈퍼셀 등 유명 게임사부터 유니티, Xbox, 트위치 등 다양한 플랫폼 업체 30여 곳이 참여한 게임사 연합 '페어플레이 얼라이언스(Fair Play Alliance·FPA)'를 출범했다. FPA에서 게임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유저들의 행동 등을 분석하고 사례를 공유하는 등 올바른 게임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함 변호사는 "게임은 '문화'다. 유저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게임이 재구성된다"라며 "문화를 바꿔야 혐오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FPA 같은 것을 도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건전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해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게이머들 스스로가 서로의 플레이어를 칭찬하는 라이엇 게임즈의 '명예로운 소환사' 시스템(Honor System). (사진=라이엇 게임즈 제공)
◇ 현실에 맞는 법 개정 필요…가장 중요한 건 게임에 대한 '인식 개선'법률의 재정비를 가로막고, 게임 캠페인과 연구가 나올 수 없는 한국의 '게임혐오' 환경은 근본적인 문제로 꼽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에 '게임이용장애'를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가장 많은 '게임 장애(중독)' 관련 논문을 발표한 국가는 한국으로, 총 91편의 논문이 나왔다. 이 중에서도 정신의학 논문은 절반 이상인 59.3%에 달한다. 그만큼 게임에 대한 국내외 여론과 인식은 좋지 않다.
함 변호사는 무엇보다도 '게임'이 하나의 문화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 사회가 '게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등 게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게임이 부정적인 기능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위치 기반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 고(Go)'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당시, 해외에서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포켓몬 고'를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는 등 사회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도 있었다.
게임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은 현실과 사이버 상의 부조화를 낳았고, 혐오와 차별의 근본적인 원인이 됐다. 그렇기에 '교육'에서부터 인식 개선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함 변호사는 "온라인 문화 속에서 내 사상, 감정,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와 공존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와 세대에 맞게 교육도 변화해야 한다"라며 "현재는 게임을 '금기어'처럼 다루며 많은 사람이 게임을 한다는 것을 외면하려고 한다. 그러나 교육의 장에서 가상세계를 배제하지 말고 또는 기술적인 교육의 대상으로만 삼지 않고 문화와 가치, 사회 교육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함 변호사는 "교육과 인식을 바꿔야 문화가 바뀐다. 정부와 교육기관에서 먼저 시작해야 한다"라며 "게임에 대해서 영화를 이해하는 것처럼, 만화를 이해하는 것처럼 되어야 게임 내 만연한 혐오와 차별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