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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들' 문소리가 짊어진 '여성 판사' 역할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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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심원들' 문소리가 짊어진 '여성 판사' 역할의 무게

    [노컷 인터뷰] '배심원들' 김준겸 역 문소리 ①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심원들' 김준겸 역 배우 문소리를 만났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배심원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은 여러모로 독특하고 신선한 구석을 지녔다. 으레 법정물의 주인공은 검사, 변호사, 판사 등 법조인이거나 법정에 서는 피해자나 가해자인데, 그 공식부터 깼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나이, 성별, 생활 수준, 성격이 제각각인 배심원들이 극을 주도한다.

    재판부도 물론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비열하고 나쁘거나 투철한 정의감만 과시하거나 하는 식의 전형성은 피해간다. 무엇보다 판사가 '여성'이다. '배심원들' 말고 여성 판사가 주연으로 나온 다른 영화를 떠올릴 수 있는가? 그만큼 여성 판사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였다.

    그 쉽지 않은 자리가 왜 문소리에게 갔을까. 어쩌면 질문의 시작이 잘못됐는지도 모른다. 홍승완 감독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문소리니까"라는 아주 직관적인 답을 줬기 때문이다. 또한 홍 감독은 그렇게 얘기했을 때 그 설명에 수긍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개봉 일주일 전이었던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심원들' 김준겸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를 만났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머리 길이, 목소리 톤까지 어느 것이 가장 적합할지 고민하고 궁리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자꾸만 캐묻고 싶을 만큼 흥미로웠다.

    문소리는 일단 '주연인 여성 판사 캐릭터'가 나왔으니 기쁘다면서도, '잘 소화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꽤 신경이 쓰였다고 밝혔다. '역시 재판장 역할은 남자가 했어야지. 그래야 극에 힘이 실리지' 식의 평은 듣고 싶지 않았기에.

    ◇ '나, 문소리'에서 출발한 김준겸

    문소리는 '배심원들'을 준비하면서 여성 판사들을 여러 명 만났다. 그 또한 판사가 보통 사람들과 거리가 있어보이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왠지 어렵게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재판 참관 때 본, 캐릭터 준비를 위해 직접 만난 판사들은 어떤 틀 지워진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문소리는 "첫 번째로 느낀 건 다 각양각색이시구나 하는 거였다. 판사님들도 사람 따라 그 스타일도 다르고, 여느 직장여성들과 다르지 않고 비슷했다"며 웃었다.

    이어, "머리 긴 분도 있고 짧은 분도 있고, 화장도 강하게 하는 분이 있고 연하게 하는 분도 있고 다 다르더라"라며 "나는 나에서 출발해도 되겠더라. 문소리가 그냥 김준겸으로 가도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소리가 맡은 김준겸은 강한 신념을 갖고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하는 판사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문소리가 맡은 김준겸은 임관 후 18년간 쭉 형사부에만 있었을 정도로, 소위 '출세욕'과는 거리가 먼 판사다. 신속·정확한 판결을 내리고자 노력하는 원칙주의자였기에, 겉모습으로도 믿음직한 이미지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극중 짧은 머리도 그 고민 끝에 나온 결과다.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어떤 스타일이 신뢰감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선택한 게 지금의 스타일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어서 목소리 톤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문소리는 중요한 재판을 선고하는 입장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

    "아마 실제 법정에 가서도, 만약에 우리가 피고나 배심원이라면 판사가 선고한 목소리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거예요. 나라의 큰 재판 같은 경우에도 (선고한) 그 목소리가 오래오래 남잖아요. 영화이긴 하지만, 제 선고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으려면 신뢰감을 줘야 했죠. 이건 영화의 클라이맥스니 감동도 있어야 하고요. (웃음) 그 톤이나 템포, 감정 수위가 어때야 할까 고민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프리 프로덕션 때 한창 고민하다 문득 떠올린 사람이 바로 음악감독 박칼린이었다. 남편(장준환 감독)과 같은 하숙집 인연으로 문소리와도 친분이 있었단다. 그동안 여러 배우 목소리를 들었고 예민한 귀를 가진 박칼린에게 문소리는 본인이 준비한 버전을 들려줬다.

    문소리는 여러 개의 판결문을 가져가서 다양한 버전으로 읽었다. 그는 "언니(박칼린)가 굉장히 예민하게 듣고 어떤 느낌인지 말해줬다. 제가 가끔 흉성 쓸 때가 있는데 그때 훨씬 더 신뢰감을 준다고 하더라. 근데 흉성 많이 쓰면 템포가 느려져서 조율했다. 제가 가진 목소리 중 찾은 것"이라고 밝혔다. 박칼린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는 문소리는, 당시 연습 흔적이 남아있는 녹음 파일을 아직도 갖고 있다.

    ◇ 폭력이 아니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김준겸의 새로움은 여성이라는 성별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그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 문소리도 바로 그 점을 김준겸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또 다른 주인공인 배심원 8명도 이렇다 할 몸싸움 없이 대화를 통해 한 발짝씩 나아간다.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죠. 보기 드문… (웃음) 보기 드물어요.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라도 한 대 칠 만한데 제가 손을 걷어붙였지만 건드리지 않았잖아요? (웃음) 중간에 치고 안 들어왔으면 멱살 잡았을까, 안 잡았을까 그런 생각은 했어요. 그래도 손은 올라가지 않았겠죠? 중간에서 말리니까.

    배우 문소리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근데 이렇게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그럼 영화가 재밌을 수 있겠어? (웃음) 그런 얘기가 나올 정도로… (영화 속에서처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우리가 다 다르지만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대화를 하다 보면 결론을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단 생각에서요. 다 불법과 폭력과 자극적인 것들로 (웃음) 해결하는 영화도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게 오히려 새롭게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김준겸 캐릭터도 결국엔 그들(배심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잖아요. 들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본인 판단도 있었겠죠. 마지막 판결문을 쓰다가도 다시 사건기록을 뒤져보잖아요. 그때 생각했겠죠. 추락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자살 가능성인데, 수사 허점들도 찾아볼 수 있고… 배심원 일곱 명도 유죄라고 했고 우리(재판부)도 그랬고, 유죄의 증거들도 꽤 있지만 아닐 가능성도 다시 한번 생각했겠죠. 그렇지만 결론을 내렸고요.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배심원들의 이야기에 '인제 와서 왜 이래?'라고 하지 않고, 그걸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잖아요. 그 '들을 수 있다는 능력'은 굉장히 중요한 지점인 것 같아요."

    홍승완 감독은 수많은 판결문을 읽고 법조인들의 도움을 받아, 이를 바탕으로 법리적 오류가 없는 영화 속 상황을 만들었다. 재판장 역할인 문소리도 국민참여재판 참관을 하면서 법정에서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지켜봤다.

    문소리는 이날 어떻게 재판 참관 신청을 할 수 있는지 일러주기도 했다. 재판 체험과 강의가 포함된 프로그램도 있다고 귀띔했다. 재판 참관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단다.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전체 재판의 2%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소리는 "계속 1%대라고 알고 있다. 굉장히 적게 이뤄지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변호인 측에서 이거로 하고 싶다고 신청하고, 재판부가 받아들여 줘야 한다"며 "배심원 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았고 도입된 지도 10년이 넘었는데 (수치로만 보면) 잘 자리 잡았다고 보긴 어렵다. 평결이 판사의 선고에 법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도 있다. 참고사항이니까"라고 전했다.

    김준겸이 남성으로 설정된 시절도 있었지만, 문소리는 이처럼 열심히 준비해 김준겸이 되었다. 여성 판사 설정이 신선하다는 말에 그는 "그러니까 이게 신선하게 와 닿았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나왔으니 좀 기쁘기도 하다"면서 웃었다.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여성 판사' 역할을 연기한 문소리는 '여자가 해서 별로다'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가 진짜 시대와 많이 영향을 주고 받는 매체이다 보니, 그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또 우리가 최근에 인상적인 여성 법관을 많이 봤잖아요. 그런 것도 다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관객도 (여성 판사가) 오랜만이라고 느낄 테고, 그런 만큼 제가 이 캐릭터를 잘 소화해 내야겠다 싶었죠.

    '그 재판장 역은 남자가 해야 극에 힘이 실리지. 아무래도 그렇더라' 이런 소리 들으면 (제가) 한국영화사에 역사의 오점이 되는 거잖아요. (웃음) '여자가 해서 별로다' 이런 말은 안 나오게 하려니 부담스럽기도 했죠.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는 개인적으로 부담감이 있었지만, 감독님은 여성 재판장이기 때문에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그런 말은 안 하셨어요. 인간-개인 김준겸의 미묘한 지점을 어떻게 표현할 건지를 씬으로 나열할 수는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게 했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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