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캠은 학교에서 치킨집 사업 배운다던데', '문과들이 그렇게 잘 논다며? 졸업하고', '들어올 땐 1등급, 나갈 땐 9급'
지난 20일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 걸린 현수막 문구다. 학생회가 주최하는 운동회를 앞두고 이공계열 학생들이 인문계열 학생들을 조롱하는 이 같은 내용의 현수막을 캠퍼스 내에 내걸어 논란이 됐다.
현수막은 총학생회가 인문사회과학캠퍼스와 운동회를 앞두고 학생들로부터 문구 공모를 받아 20일 게시했다. 학생들의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 학생은 "취업 준비생이나 9급 공무원, 자영업자들을 유머 소재로 사용하는 건 잘못된 일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학생도 "학문의 장인 대학이 편협한 인식과 우월 의식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드러낸 셈"이라고 꼬집었다.
논란이 커지자 총학생회 측은 다음날 현수막을 모두 철거했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운동회 기간 선의의 경쟁을 위해 문구를 공모했는데, 기획 의도와 달리 특정 문구가 많은 분께 폐를 끼쳐 불찰이라 생각한다"며 "총학생회 차원의 사과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3일 대학가에 따르면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을 향한 이런 비하의 시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졸 구직자들의 취업난 속에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낮은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을 향한 조롱과 편견이 더 확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말 한국교육개발원이 2016년도 2학기·2017년도 1학기 고등교육기관 졸업자들의 취업 현황을 조사해 펴낸 '2017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계열별 취업현황'에 따르면 인문계열(언어·문학·인문과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56%, 사회계열(경영·경제·법률·사회과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62.6%로 전체 졸업자 평균인 66.2%에 못 미쳤다. 반면 공학계열 졸업자 취업률은 70.1%, 의약계열은 82.8%로 평균을 웃돌았다.
이런 현실은 '문(과라서 죄)송합니다'같은 자조 섞인 유행어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문레기(문과+쓰레기)' 등으로 비하 의미가 짙어지고 있다.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전모(25) 씨는 "얼마 전 공대에 다니는 지인이 '문구논'(문과의 90%는 논다)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기분이 상했다"며 "문과생을 공부나 노력을 덜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게 장난으로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경희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박모(26) 씨도 "1∼2학년 때만 해도 문과를 희화화하는 유행어를 듣고 웃어넘겼지만 취업준비생이 되어 보니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며 "이공계열은 상대적으로 취업 걱정이 덜한 것 같아 위화감이 든다"고 했다.
서울시립대에서 공학을 전공하는 이모(24)씨는 "이과가 문과보다 취업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긴 하지만, 둘 다 어려운 건 매한가지"라며 "그걸 가지고 조롱하거나 깎아내려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대학가에서 문과생들을 웃음거리로 여기는 풍조의 배경에는 청년 취업난에서 오는 불안을 특정 대상에 대한 공격으로 해소하려는 심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문계와 이공계를 막론하고 많은 대학생이 취업난으로 인한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나서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집단을 공격해 안도감을 느끼려는 심리"라고 분석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교육부와 대학, 학생 모두 정규직 취업을 지상 목표로 삼다 보니 같은 대학 안에서도 취업률을 매개로 한 차별과 배제가 일상화되고, 오히려 유머 코드로 소비되고 있다"고 진단했다.